“에어프라이어(air fryer)는 튀김 요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조리기이죠. 글로벌 가전업체인 필립스社가 개발했지만, 경제성있는 제품으로 탄생하게 된 데에는 네덜란드의 한 조그만 스타트업이 제공한 기술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쓸모없는 제품으로 여겨졌던 이 조리기가 이제 전 세계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데에는 두 기업이 실천한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 구현의 핵심동력으로 지식재산의 중요성이 논의되고 있는 심포지엄 현장. 프랑스 네오마 경영대학원의 ‘빔 반하버베케(Wim Vanhaverbeke)’ 교수는 개방형 혁신의 파급 효과를 강조하며 이 같이 말했다.
특허청 주최로 지난 10일 JW메리어트호텔에서 개최된 ‘2019 국제 지식재산 심포지엄’은 신규 시장 창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스타트업의 지식재산 사례를 세계적 전문가들과 함께 공유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스타트업의 지식재산을 활용하여 탄생한 에어프라이어
‘지식재산 혁신과 스타트업’에 대해 주제발표를 한 반하버베케 교수는 본격적인 발표에 앞서 에어프라이가 상용화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필립스의 에어프라이어는 2010년에 첫 선을 보였다. 실제로는 2006년에 개발을 마쳤지만 설계가 너무 복잡하고 비싸서 상용화되지 못했다”라고 밝히며 “이 같은 문제는 네덜란드의 스타트업인 APDS社가 보유하고 있던 지식재산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반하버베케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필립스는 스타트업이 보유한 레피드에어(Rapid Air) 기술을 활용하여 200유로 이하의 조리기를 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립스는 스타트업의 지식재산을 자사 제품에 적용하면서, 조리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에어프라이어를 상용화할 수 있었다.
이처럼 혁신적인 조리기가 탄생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개방형 혁신’을 꼽은 반하버베케 교수는 “기업들이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아이디어와 R&D 자원을 함께 활용하여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개방형 혁신의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개방형 혁신’은 미 버클리대의 ‘헨리 체스브로(Henry Chesbrough)’ 교수가 그의 저서를 통해 발표한 혁신 이론이다. 이 이론이 발표된 후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도입을 서둘렀는데, 대표적으로는 IBM의 혁신 사례가 거론된다.
IBM은 과거 ‘폐쇄형 혁신(Closed Innovation)’의 대명사였다. 사내 인력에서 경영자를 뽑았고, 운영체제도 자사가 개발한 시스템을 통해서만 작동되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모든 혁신은 사내 자원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폐쇄적 형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이노베이션 잼(Innovation Jam)’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내부는 물론 외부의 집단지성을 활용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핵심 기술 분야에도 개방형 혁신 이론을 통해 적용 범위를 넓혀 나가고 있다.
전통산업인 침구 분야도 지식재산으로 혁신 성장
에어프라이어가 현존하는 기술을 융합하여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만든 사례라면, QOD(Quilts of Denmark)社의 침구 제품은 고객을 위한 가치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한 개방형 혁신 사례다.
QOD社는 자동적으로 온도 및 습도를 조절하는 수면 제품을 생산하는 덴마크의 침구류 전문 기업이다. 회사가 설립되기 전만 하더라도 침구 산업은 혁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전통적인 산업에 불과했다.
반하버베케 교수는 “당시의 침구 산업은 오로지 가격만이 시장을 지배하는 요인이었다”라고 밝히며 “QOD社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건강한 수면’을 사업 목표로 삼았다.
QOD社 연구진이 사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찾은 해답은 ‘상변화(phase change)’ 물질이었다. 상변화란 어떤 물질이 온도와 압력에 의해 고체나 액체, 또는 기체로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같은 물질을 활용하여 미 항공우주국(NASA)는 아웃라스트(Outlast)라는 온도조절 신소재를 개발했다. 우주 탐사시 우주인이 예측할 수 없는 외부 온도의 변화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 소재다.
반하버베케 교수는 “아웃라스트 소재의 특성인 온도 항상성 유지를 통해 QOD社의 연구진은 덮고만 있어도 쾌적함을 제공하는 침구류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라고 전하며 “이들 침구류를 사용하면 자는 동안 뒤척일 필요가 없어서 고객은 숙면을 취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필립스의 에어프라이어와 QOD의 신소재로 만든 침구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기존 기술의 활용 능력’과 ‘고객의 가치’를 제시했다. 조리기나 침구류는 첨단 산업이 아니지만, 기존의 지식재산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반하버베케 교수는 “두 사례에서 보듯 지식재산을 활용한 혁신 성장은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이 아닌 ‘포지티브섬게임(Positive-sum game)’이다”라고 주장했다.
한팀은 이기고 다른 팀은 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제로섬이 아니라, 경기에 임하는 양측이 모두 승자가 되는 윈인(win-win) 전략, 즉 포지티브섬이 지식재산을 활용한 혁신 성장의 장점이라는 것이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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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06-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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