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인

감염병이 일깨우는 삶의 역동성

[TePRI Report] 뉴턴의 “기적의 해” 1666년, 그리고 우리의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창궐에 얇은 마스크 한 장으로 저항하며 버틴 한 해가 저문다.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예측은 어렵다. 특히 미래에 대한 예측이 그러하다.”라고 말했다는데, 요새 이 말을 씁쓸하게 곱씹는 사람들 중 하나는 박식하고 인기 있는 저술가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아닐까 싶다. 겨우 3년 전인 2017년에 나온 저서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히브리어 원서는 2015년 출판)에서 하라리는 인류가 과거 수천 년 동안 극복하지 못했던 난제들로 기아, 역병, 전쟁을 언급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이 난제들은 극복되기 시작했고 20세기에는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제한되었으며, 이제 21세기는 소수의 상류층이 그 인류 보편의 성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대미문의 신(神)적인 지위에 오르려 애쓰는 것을 목격하게 되리라고 하라리는 예측했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인류가 과거 수천 년 동안 극복하지 못했던 난제들로 기아, 역병, 전쟁을 언급했다. ⓒ위키미디어

물론 21세기가 아직 많이 남긴 했지만, 지금 상류층과 하류층을 막론한 인류는 노화와 죽음 자체를 극복하기 위한 신적인 사업에 몰두하기는커녕 코로나바이러스를 상대로 지루한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인류가 감염병을 너끈히 관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자신감 넘치는 선언은 그저 선언에 불과했던 것 같다. 우리는 다스릴 수 없는 감염병 앞에서 오히려 우리의 일상을 관리하는 중이다.

배우려는 마음가짐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자문해보자. 마스크로 덮인 한 해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 무엇보다도 우리는 일상의 허술함과 강인함을 새삼 깨닫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보호벽은 황당할 정도로 허술했다. 많은 젊은이가 일생의 꽃과도 같은 대학교 신입생 시절을 빼앗겼고, 피땀으로 올림픽을 준비해온 스포츠 선수들이 무력감에 빠졌으며,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생계의 위기에 처했다. 흡사 전쟁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새로운 비대면 문화를 옹호하고 권장했지만, 우리가 몸과 몸으로 만나 꾸려가던 일상을 화상회의로 대체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다른 한편, 일상은 놀랄 만큼 강인했다. 젊은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짝을 찾아 클럽에 드나들었고, 프로 스포츠는 관중석에 인형을 앉혀 놓고라도 경기를 열었으며, 아이들은 성장하고 노인들은 더 늙었으며, 새로운 국회의원들이 등장했고, 세금고지서는 어김없이 날아왔다.

마치 객석에서 무대를 보듯 멀찌감치 떨어져 살펴보면, 우리의 일상은 늘 기아, 역병, 전쟁을 비롯한 난제들을 품은 채로 전개되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하리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할 듯하다. 마스크로 덮이든 말든, 우리의 일상은 허술하면서도 강인하게 이어진다. 이를 삶의 역동성이라고 부르자. 2020년의 감염병은 우리에게 삶의 역동성을 깨우쳐주었다.

혹시 과학사에서도 감염병의 유행으로 유명한 해가 있을까? 가장 먼저 1666년이 떠오른다. 아이작 뉴턴은 1642년에 태어나 1661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1665년, 그가 아직 학생일 때 케임브리지에 페스트가 퍼졌다. 대학교는 거의 2년 동안 폐교되었고, 뉴턴은 고향인 울스토르프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뉴턴이 한적한 고향에서 맞이한 1666년을 많은 과학사 저자들은 “기적의 해”로 부른다. 주로 뉴턴의 평전을 쓴 그들은, 그해에 뉴턴이 중력을 발견했고, 미적분학을 발명했으며, 빛과 색에 관한 이론을 개발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지하게 과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견해는 더 미묘하다. 생각해보면, 1666년 한해에 그 많은 업적들이 한꺼번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진실이기에는 너무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뉴턴이 한적한 고향에서 맞이한 1666년을 많은 과학사 저자들은 “기적의 해”로 부른다. 주로 뉴턴의 평전을 쓴 그들은, 그해에 뉴턴이 중력을 발견했고, 미적분학을 발명했으며, 빛과 색에 관한 이론을 개발했다고 주장한다. ⓒ위키미디어

역사를 영웅담으로 서술하는 전통은 아주 오래되었으며 특히 과학사에서 더 심한 듯하다. 우리는 한 명의 영웅이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과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식의 이야기에 익숙하다. 영웅담은 발전의 과정도 짧은 기간으로 압축하기를 좋아한다. 1666년이 뉴턴의 기적의 해라면, 1905년은 또 다른 영웅 아인슈타인의 기적의 해다. 이 해에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를 설명하는 논문, 브라운 운동을 설명하는 논문, 특수상대성이론을 소개하는 논문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 획기적인 논문들이 실물로 있다는 점에서 1905년은 1666년보다 더 내실 있는 “기적의 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어떻게 아인슈타인이 그 한해에 그 모든 연구를 해냈겠는가? 무릇 결실은 오랜 과정의 산물이다. 영웅담이라는 역사 서술 방식은 대중적으로 인기 있을지언정 실상과 동떨어지기 십상이다.

1666년 낙향할 당시에 뉴턴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자였으며 과학에 관하여 누구 못지않게 박식했다. 그는 이미 중력의 개념에 도달했으며 달에 미치는 중력의 효과를 대략적으로 계산한 바 있었다. 프리즘을 이용한 광학 연구도 착수한 상태였고, 그 유명한 미적분한 연구도 상당히 진척되어 있었다. 더구나 1666년에 그가 이뤄낸 업적들은 흔한 영웅담들이 주는 인상과 달리 완벽하지 않았다. 그 연구들은 뉴턴이 1667년에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후에 더 발전했으며 그의 일생 내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역사를 영웅담으로 서술하는 전통은 아주 오래되었으며 특히 과학사에서 더 심한 듯하다. 우리는 한 명의 영웅이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과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식의 이야기에 익숙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컨대 뉴턴의 “기적의 해” 1666년은 알고 보면 충분히 평범했다. 한편으로 허술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강인했다. 우리가 2020년에 꾸린 일상과 다를 바 없다. 뉴턴에게 고향 울스토르프의 가족 농장은 안락하고 쾌적한 곳이 결코 아니었다. 그를 유복자로 낳은 어머니는 세 살 난 그를 조부모에게 맡기고 재혼하여 고향을 떠났다가 그가 열 살 때 또 다시 과부가 되어 씨 다른 동생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짐작하건대 다정하기 어려운 가족이었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농사에 재주가 없었던 뉴턴에게 유일한 활로는 공부였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진학이었다. 그런 그가 마침내 도달한 케임브리지에서 페스트를 피해 어쩔 수 없이 돌아온 울스토르프, 그 침울한 유년기의 삶터에서 맞은 1666년은 충분히 막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뉴턴도 일상이 얼마나 허술한지 실감하며 한숨을 내쉬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한에서 계속했다. 그리고 작은 성과들을 착실히 거뒀다. 2020년의 우리와 다를 바 없다. 기적도 없고, 영웅도 없다. 우리 모두의 역동적인 삶이 있을 뿐이다. 1666년이 기적의 해가 아니었던 것처럼, 2020년도 재난의 해일 리 없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발간하는 ‘TePRI Report’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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