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서양음악(양악)이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은 ‘국악’ 또는 ‘향악’으로 불렸다. 우리나라에 양악이 들어온 후, 양악이 보편화되고 음악문화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음악=서양음악”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 후 국악은 갈 곳 잃은 손님처럼 대접 받았다. 그럼 고대에 음악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가야금은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랜 역사를 지내면서, 음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고대 이집트는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을 ‘히(hy)’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는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음악, 시(詩) 및 학문까지 두루 포괄하는 고대 그리스의 ‘무시케(mousike)’는 단지 음악만을 의미하는 오늘날의 ‘뮤직(music)’으로 변천했다. 음악은 오랜 시간속에 다양한 의미로 설명되었지만, 동양과 서양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했던 것은 신비로움이다.
옛 사람들은 “음악이 음향과 음도 사이의 신비로움을 갖고 있다”고 여겨 음악 속에서 규칙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한 예로 고대 중국인들은 악기를 만드는데 기장의 개수를 세어서 그 길이로 피리의 표준을 삼는 등 엄격한 수의 비율을 적용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수가 세상의 척도이고, 추상적인 수를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음악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예로 12현의 현악기로 ‘가야국의 고’에서 가얏고라고 불리는 가야금을 연주한 우륵은 “동양 음악이 추구했던 음악의 도(道)와 수학적 엄밀성의 조화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인물”이라고 평가된다.
<삼국사기>에 “가야금은 중국의 쟁이라는 악기를 본받아 만든 것으로, 줄을 높이 뜯으니 소리가 쟁쟁하다. 가야금의 위가 둥근 것은 하늘을, 가운데가 빈 것은 세계의 공허함을, 줄기둥은 12월을 본뜬 것이다.”라고 쓰여진 것처럼, 가야금은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는 악기였다. 이처럼 <삼국사기>에 가야국의 가실왕이 중국 당(唐)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다고 실려 있으나, 중국의 문헌인《삼국지》중 <위지 동이전>에 “삼한시대에 이미 고유의 현악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삼한시대의 음악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체계가 잡혔는지는 더욱더 연구가 필요하다.
그럼 가야금은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야금은 법금(풍류)가야금과 산조가야금으로 나눈다. 두 가지는 구조가 서로 다르다. 법금 가야금은 오동나무 판의 뒤를 파서 만들고, 부들을 고정시키는 공명동 하단에 T자 모양의 양이두(羊耳頭)가 있는 반면, 산조가야금은 거문고처럼 오동나무 앞판에 밤나무로 뒤판을 붙여 만들고, 양이두 대신 봉미(鳳尾)를 붙였다. 가야금은 일반적으로 오동나무로 제작되는데, 이는 오동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울림의 속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가장 선호하는 재목이다. 직사각형 형태의 몸체는 음의 지속을 담당하는 ‘울림통’의 역할을 한다.
법금가야금은 현과 현 사이가 넓어서 느린 음악을 연주할 때 적당하고, 산조가야금은 현과 현 사이가 좁아서 빠른 음악을 연주할 때 알맞다. 가야금줄은 명주 생사로 만드는데, 음높이에 따라 줄의 굵기가 달라져, 낮은 음은 굵고, 높은 음은 가늘다. 제1현(가야금을 무릎에 대놓고 바라보는 측면에서 가장 윗줄, 혹은 가장 앞줄)에서 끝줄로 갈수록 줄이 가늘어진다. 이것은 안족이 음의 높낮이를 담당하지만 줄의 굵기도 음의 높낮이와 울림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줄을 튕겼을 때, 줄이 굵을수록 심하게 흔들리고, 그 울림이 안족과 몸통 전체에 전해져 그 음이 오랫동안 지속된다. 반면, 줄이 가늘수록 그 울림이 약해져 상대적으로 가벼운 소리가 나지만, 그 음이 맑다. 창작국악에 쓰이는 개량 가야금은 대체적으로 거의 25현 굶기의 줄을 사용한다. 요즈음 ‘고음 가야금’ ‘중음 가야금’ ‘저음 가야금’의 등장하는데, 이것은 ‘줄의 굵기 따른 울림과 음정성질’을 고려해 개량한 것이다.
우륵이 가야에 있을 때, 가실왕은 우륵한테 12편의 가야금 작곡을 명령했다. 각 지역의 특색과 전체적인 조화를 노래한 우륵의 작곡들은 ‘가야연맹 교향곡’이었다. 특히 우주 만물을 상징하는 12는 의미 있는 숫자였고, 12곡의 노래들은 가야국 형성을 축하하는 화합의 축가였다. 가야 연맹을 다스렸던 가실왕은 어느 정도 연맹의 체계가 완성되자 우륵과 같은 음악인을 통해 자신의 위업과 가야 연맹에 참여하고 있는 제국의 충성과 화합을 강조하기 위해 가야금 음악의 작곡을 명했다. 가야금 소리의 조화와 율조는 가야 연맹의 조화와 통일성 그리고 대가야의 존재를 더욱더 확고히 했다.
그러나 우륵은 가야가 멸망하기 전인 551년에 신라의 진흥왕한테 투항했다. 진흥왕은 우륵을 국원(國原), 지금의 충주에 머물도록 하고 사람들을 보내어 그의 음악을 배우게 했다. 진흥왕 역시 음악이 가지는 중요한 효과를 알고 있었다. 우륵은 ‘가야금을 위한 12곡의 가야 교향곡’을 신라에서 6곡으로 재편곡했다.
동양인들은 “음악의 선율과 음향의 비례가 하늘의 도를 정확히 설명하는 장치이다”고 여겨서 음악을 통해 하늘의 법도를 구현하려고 했다. 유교는 ‘경(經)’의 수준까지 고양시킬 만큼 음악을 중요시했다. 음악의 조화는 각 국가의 조화와 정치적 단결을 시도하려는 국가형성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립국악고등학교장과 국립국악원장 등을 엮임하고 지난 20년간 예술행정가의 길을 걸어온 윤미용씨가 17년 만에 연주회를 갖는다. 윤미용씨는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전수조교로 고 함동정월 선생의 제자로 37세의 나이에 국악고 교장으로 취임해서 국악 교육의 기틀을 마련했고, 국립국악원장 시절에 사료에 근거한 국악의 원형무대시리즈와 국악 발전의 기반을 넓히는데 기여했다.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펼쳐지는 ‘윤미용의 정악 가야금’에서 묵직한 정악곡들로 성악이 어우러진 `영산회상`과 60여분 길이의 대곡인 `가즌회상`이 선보인다. 특히 `영산회상`은 오늘날 악기로만 연주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성악곡 형태로 재현된다. 공연장에 울리는 가야금 소리와 함께 옛 선인들의 국악에 대한 의미와 숨결을 느껴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제 목 : 제428회 국립국악원 화요상설 윤미용의 가야금 정악발표회
테마명 : 영산회상 성악재현 (2004초연)
관람료 : 8,000원
주 최 : 국립국악원
날 짜 : 2004-09-21 오후 7:30 ~ 9:00
장 소 : 국립 국악원 우면당 (02) 580-3333
사이트 : http://www.ncktpa.go.kr
<프로그램>
-영산회상 성악재현 (2004초연)
영산회상의 성악재현은 현행 상령산 가락에 "영산회상불보살"의 일곱자 가사를 붙여서 옛날과 같이 불교가사를 가진 관현반주의 성악곡으로 처음 시도해 본 것이다.
작곡/이상규
성악/이동규 가야금/윤미용 2거문고/윤성혜 세피리/박희완 대금/김영헌 해금/고수영 단소/문응관 양금/정지영 장구/김광섭
<가즌회상>
영산회상은 그 음악의 속도가 빠르지가 않아, 음악을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지 않고 편안하게 안정시키는 힘을 갖고 있어 선비들은 이런 음악을 매우 좋아하였으며, 이런 음악을 통하여 마음을 수양하였던 것이다.
상령산/중령산/세령산 가락덜이/삼현도드리/하현도드리/염불도드리 타령/군악/천년만세/계면가락도드리/양청도드리/우조가락도드리
가야금/윤미용 대금/홍종진 장구/김정수
- 공채영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04-09-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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