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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객원기자
2011-10-17

머리가 목 위에 붙어 있는 까닭 순서 정해주는 유전자 ‘시계장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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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곤충, 새, 코끼리, 고래, 인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살아 있는 생명체이면서 반드시 배아(embryo) 단계를 거쳐 생겨난다는 점이다. ‘배아’는 정자와 난자가 합쳐진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시작한 것으로, 모든 동물은 배아가 자람에 따라 머리, 가슴, 몸통, 다리, 꼬리 등의 체절이 생긴다.

▲ 혹스(Hox) 유전자 덕분에 인간은 머리-목-가슴-허리-엉덩이-다리의 순서대로 신체가 구성된다. ⓒMicrosoft
사람은 머리 아래 목이 있고 그 아래 가슴, 허리, 다리가 있다. 그러나 오징어나 문어 등의 두족류는 몸통 아래 머리가 있고 그 아래 다리가 있다. 머리가 배에 붙은 인간이나 다리가 몸통 위에 붙은 두족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몸의 각 부분이 엄연한 순서에 따라 붙어 있는 것일까.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이 질문의 해답을 스위스 과학자들이 찾아냈다. 사이언스(Science) 최근호에는 스위스 로잔공과대학교(EPFL)와 제네바대학교(Unige)의 공동연구진이 작성한 ‘혹스 유전자 덩어리의 동적구조(The Dynamic Architecture of Hox Gene Clusters)’라는 논문이 소개됐다. 유전자 내의 시계장치가 순서대로 작동하면서 배아가 단계적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신체 각 부위를 담당하는 ‘혹스 유전자’

1980년 가을, 네이처(Nature)지에 “초파리의 몸이 머리, 가슴, 배의 순서로 구성되는 것은 2만여 개의 유전자 중 15개가 특별히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논문이 소개된다. 독일의 생물학자 뉘슬라인폴하르트(Christiane Nüsslein-Volhard)와 미국의 발달생물학자 비샤우스(Eric Wieschaus)의 연구 결과다.

이를 토대로 초파리 실험을 진행한 미국의 유전학자 루이스(Edward Lewis)는 “신체 각 부위를 담당하는 유전자들은 이미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혹스 유전자(hox gene)’가 발견된 것이다. 이들은 199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다.

▲ 초파리의 몸이 머리-가슴-배 순서대로 구성되는 이유는 '혹스 유전자'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색깔별로 구분된 것이 각 신체 부위와 연결된 혹스 유전자다. ⓒWikipedia
이어 1983년 스위스의 하펜(Ernst Hafen), 레빈(Michael Levine), 맥기니스(William McGinnis)와 미국의 스코트(Matthew Scott)는 초파리에서 발견된 8개의 혹스 유전자가 모든 동물에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체절 즉 신체 구획을 가지는 생물은 혹스 유전자 덕분에 일정한 순서에 따라 몸이 구성되는 것이다.

‘혹스’는 호메오박스(homeobox)의 줄임말로, ‘닮았다’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호모스(homos)에서 유래했다. 호메오박스는 180개의 염기쌍이 상자 모양으로 뭉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유전정보를 지닌 DNA를 원본으로 RNA가 만들어지는 전사 과정에서 특정 순서와 형태로 신체가 발달하도록 작용한다.

배아세포 내의 DNA에는 신체 각 부위를 담당하는 혹스 유전자가 순서에 따라 결합되어 있다. 초파리는 머리, 가슴, 배의 순서대로 8개의 혹스 유전자가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38개의 혹스 유전자가 머리, 목, 가슴, 허리, 엉덩이 순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 체절이 48시간 즉 이틀에 걸쳐 완성되는데, 그동안 각 신체 부위는 서로 섞이지 않고 분명하게 구분된 채 자라난다.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나도 머리와 다리, 목과 허리의 순서가 뒤바뀔 수 있다. 그러나 배아의 한쪽 끝부터 다른 쪽까지 연결된 체절은 순서를 어기지 않고 차례대로 생겨난다. 혹스 유전자의 정교한 ‘시계장치’ 덕분이다.

90분에 한 체절씩 이틀에 걸쳐 시계장치 작동

시계는 90분 즉 한시간 반마다 알람이 울리는 방식이다. 배아세포 내에는 DNA 가닥이 털실처럼 감긴 채 잠들어 있는데, 머리 부위가 처음으로 생겨난 이후 매 90분마다 각 체절에 필요한 유전자가 순서대로 활성화되며 척추를 형성한다. 머리 다음에는 목 부위의 경추, 가슴 부위의 흉추, 허리 부위의 요추 등 30개의 척추뼈가 차례대로 이어지는 식이다.

그러므로 신체 각 부위가 엉망으로 뒤섞이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특정 화학성분에 반응하는 복합적인 방식이 아니라 순서에 따라 활성화되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내에서 기계적인 방식의 시계장치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배아세포 내에 엉켜 있는 DNA 가닥이 차례대로 활성화되며 30개의 척추뼈가 생겨나는 과정. 머리 부위 뒤에 빨간색 유전자가 활성화되어 붙고, 그 뒤에 두 번째로 파란색 유전자가 순서대로 연결되는 식이다. ⓒEPFL

로잔공대와 제네바대를 오가며 연구를 이끈 드니 뒤불(Denis Duboule) 교수는 몇 년 전 뱀을 연구하다가 혹스 유전자 내 시계장치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뱀이 목, 허리, 꼬리의 특별한 구분 없이 기다란 척추뼈를 가진 이유는 혹스 유전자에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머리 다음에 목을 만드는 과정에서 혹스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에너지가 다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목뼈만을 만들어내는 바람에 다리도 없이 기다란 몸체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쥐의 배아세포를 이용해 몇 년 동안 실험을 진행하며 수천 개의 유전자를 분석하다 마침내 혹스 유전자의 시계장치를 발견했다. 스위스 생물정보학연구소(SIB)가 보유한 ‘고해상도 염색체 입체구조 분석법’ 덕분에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염색체의 구조를 3차원으로 재구성할 수 있었다.

뒤불 교수는 로잔공대의 발표자료에서 “배아가 성장하는 동안 아주 작은 순서상 오차가 발생해도 전혀 다른 생물종이 생겨날 수 있다”며 “혹스 유전자의 시계장치는 예상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정확한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밝혔다.

임동욱 객원기자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1-10-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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