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영화 ‘우주전쟁’엔 인류를 압도하는 과학 기술력을 가진 외계인들이 등장한다. 인류는 이 외계인들의 계획된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지구는 그들에게 정복당할 위기에 처하고 만다.
하지만 영화 막바지에 이르면 어찌된 일인지 외계인들이 하나 둘 픽픽 쓰러지기 시작한다. 어느 새 외계인들은 모두 죽어버리고 인류는 다시 평화를 되찾는다.
결과적으로 우주전쟁은 다소 황당한 결말덕분에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영화가 됐다. “어이없고 이해 안 되는 결말”이라며 실망스럽다는 의견도 많지만, 그 어떤 외계인 등장 영화보다 현실적이고 일어날 수 있을 법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동시에 받는다. 외계인들을 갑작스레 쓰러지게 한 원인은 바로 지구에 존재하는 각종 미생물이다.
외계인들은 세균 및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에 감염돼 죽어버린 것이다. 첨단기술을 가진 외계인들마저 한방에 보내버리는 미생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인류가 그 바이러스들과 함께 모든 역사를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모두가 가진 특수보호막, 면역체계
이 영화의 결말은 ‘면역성’이라는 말로 해석된다. 인류의 몸엔 각종 미생물의 침투로부터 신체를 지켜줄 수 있는 면역체계가 있다. 물론 생명을 앗아갈 만큼 무서운 질병을 일으키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미생물은 우리 몸에 들어오더라도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종종 ‘감기’라는 흔한 질병을 잠깐 일으킬 뿐이다.
이는 인류가 진화하는 동안 미생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능력 또한 함께 발달됐기 때문이다. 반면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은 생전 처음 접하는 미생물들을 막을 능력이 없었다. 우리에겐 감기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겐 생명을 빼앗아가는 치명적인 질병을 미생물들이 일으킨 것이다. 면역성은 이토록 중요한 시스템이다. 에이즈(AIDS)라 불리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이 인류 최악의 질병으로 손꼽히는 이유도 그것이다. 면역체계가 무너져 버리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외부 물질의 침입에도 쉽게 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역력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시대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요즘 아이들의 경우는 옛날에 비해 면역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애들은 나가놀아라’는 면역력 키워주는 말?
어린 아기는 산모의 뱃속에서 나오기 직전까지는 무균상태라고 알려져 있다. 세상에 나오면서 공기 중에 노출되고 많은 물질과 접촉하면서 각종 미생물들이 체내에 들어오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해로운 물질이 들어오면 그를 막기 위한 면역성도 함께 발달된다.
그 해로운 물질들이 다음에 또 신체에 들어오려 하면 면역체계라는 검문소에서 붙잡혀버리는 것. 예방주사의 원리도 그것이다. 비교적 접촉이 힘들어 면역체계가 활성화 돼 있지 않은 바이러스의 경우 인체에 해를 미치지 않는 방법으로 그것들을 체내에 주입해 면역체계를 만들게 하는 것. 그러고 나면 실제 해당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즉,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외부 환경에 적절한 노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애들은 나가놀아라’라는 어른들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바깥 공기에 포함된 각종 물질들은 체내에 들어와 면역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흙장난을 하면서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다양한 미생물과 접촉하면서 스스로 항체를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 건강해지기 힘든 요즘 아이들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럴 기회가 적다. 오히려 흙장난을 하는 아이에게 ‘더럽다’며 못하게 하는 부모들도 많다.
잔병에 걸린 아이에 대한 과도한 반응도 문제가 있다. 일반적인 감기처럼 며칠 쉬고 나면 낫는 질병도 실은 신체의 저항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열이 나고 기침을 한다고 병원으로 달려가 항생제를 비롯해 약을 먹이면서 그럴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과도한 청결도 오히려 질병을 불러올 수 있다. 종종 결벽증을 의심케 할 정도로 의복 및 침구류의 청결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조금이라도 오염의 여지가 있는 물건이나 장소엔 자신의 아이를 얼씬도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영유아기에 이처럼 과도한 청결을 추구하다보면 자칫 면역체계를 활성화시키는 자극이 부족해 여러 알레르기성 질환들을 앓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각종 환경에의 적절한 노출이 필요
수년전, 미국에서는 이와 관련한 재밌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면 면역력이 증가한다는 것. 미국 캘리포니아 패시픽병원 그레고리 트래나 박사와 캘리포니아 주립대, 스탠포드대의 공동연구진은 “애완동물을 키울수록 면역력이 증가해 악성 림프종의 하나인 비호지킨 림프종에 걸릴 위험이 30% 가량 낮아진다”고 밝혔다. 또한 트레나 박사는 “애완동물을 오래 키울수록 질병 저항력이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통계적 수치일 뿐 정확한 의학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형제가 많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일수록 질병에 잘 걸리지 않는 현상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형제가 많을수록 다양한 미생물에 대한 접촉 기회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혼자 자란 아이보다 면역력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레르기성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식습관의 변화나 대기오염 등이 이의 대표적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를 이겨낼 면역력의 저하 또한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음식이나 의약품 등의 섭취를 통해 면역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좋지만 집 밖으로 나가 직접 흙을 밟고 놀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 조재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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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5-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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