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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박소란 파퓰러사이언스 기자
2011-05-11

풀리지 않는 일상의 수수께끼 [파퓰러사이언스] 데자뷰를 둘러싼 논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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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처음 겪는 일인데도 언젠가 겪었던 상황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런 현상을 데자뷰(deja vu)라 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데자뷰를 가리켜 일각에서는 기억장애의 일종이라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이라 말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카레이싱대회의 관중석에 앉아있던 닉은 갑자기 불길한 전조를 보게 된다. 자동차들이 연쇄 충돌을 일으켜 건물이 무너지면서 자신과 친구들을 덮치는 끔찍한 환상이 과거의 기억처럼 생생히 스쳐간 것.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 닉이 친구들을 이끌고 경기장을 막 빠져 나오는 순간, 그의 환상은 이내 현실이 된다.

이는 인기 공포영화 ‘데스티네이션’의 한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 일종의 예지력을 발휘하는 주인공은 사고를 모면한 친구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해 보지만 안타깝게도 차례로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알 수 없는 기시감

영화 속 예지력과는 다소 다르지만 분명 처음 맞닥뜨린 상황과 처음 와본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듯한 익숙한 느낌을 받는 것을 데자뷰(Dejavu)라 부른다.

‘이미 봤다’는 의미의 프랑스어로서 우리말로는 기시감(旣視感)이라 표현한다. 이러한 데자뷰는 빙의, 예지, UFO 목격, 외계인 납치 등 과학적으로 증명키 어려운 대다수 미스터리들처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경험하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데자뷰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길을 가다가, 밥을 먹다가,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데자뷰가 찾아온다. 시쳇말로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음모론적 현상은 아니라는 얘기다. 대개의 사람들은 데자뷰를 겪을 때마다 꿈속에서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느낌이 너무나도 선명할 때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을 뿐 정말로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에 빠져든다.

과연 데자뷰는 왜, 무엇 때문에 나타나는 것일까. 데자뷰를 학술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사람은 1900년 프랑스의 의학자 플로랑스 아르노로 알려져 있다. 이후 초능력을 연구하던 심리학자 에밀 보아락이 1917년 자신의 저서 ‘초심리학의 장래’에서 데자뷰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보아락은 데자뷰가 뇌의 신경화학적 요인, 즉 뇌의 이상에 의해 유발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데자뷰의 실체가 명확히 증명된 바는 없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감각의 문제라는 점에서 실체 규명이 쉽지 않으며 실험을 통해 데자뷰를 인위적으로 재현할 수도 없다는 점이 과학적 연구를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가 됐다는 분석이다.

항간의 풍문으로는 데자뷰를 연구한 보아락도 오랫동안 데자뷰를 경험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이 현상의 원인이 기억과 관련된 것인지, 뇌의 비정상적 작용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혹자들의 주장처럼 초현실적 현상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다만 그에 대한 가설들은 매우 다양하다.

기억의 변조

데자뷰에 대한 가장 일반적 견해는 기억의 재현 혹은 변조로 보는 것이다. 뇌는 방대한 기억을 수용하며 잠깐 지나친 것도 잊어버리지 않고 뇌세포 속에 저장한다. 하지만 뇌는 경험을 기억하는 일에 자신의 능력을 모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경험의 전체가 아닌 핵심적 정보만 저장한다.

또한 모든 경험을 의식적 단계에 저장해 놓지도 않는다. 자주 꺼내 쓰는 중요한 기억들을 제외한 대다수 경험은 무의식에 넣어 둔다. 이 무의식적 기억은 그와 유사한 경험을 다시 하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깨우쳐지는 등 외부 자극에 의해 되살아난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학창시절 얘기를 하다보면 잊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데 이것이 무의식적 기억이 의식화되는 과정이다. 많은 학자들은 데자뷰 역시 이 같은 무의식적 기억의 하나로 본다. 특히 무의식적 기억으로 저장되는 과거의 정보는 실제 생활에서 직접 경험한 일뿐만이 아니라 책이나 TV 등에서 보고 들은 것도 포함될 수 있다.

이 점을 감안하면 매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이 단순한 생활패턴을 지녔던 옛날 사람들보다 훨씬 자주 데자뷰를 겪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와 관련 오스트리아 로젠휘겔신경과학연구소의 조셉 스팟 박사는 ‘패턴인식’ 가설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자극이 비슷하면 활성화되는 뉴런도 비슷하다. 따라서 신경 파장의 비슷한 발화 패턴이 조금 다른 경험을 데자뷰처럼 친숙한 경험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뇌의 기억저장 메커니즘과도 맞닿아 있다. 뇌는 경험을 간략화시켜 기억으로 저장하므로 주요 특징이 유사하면 동일한 경험처럼 오해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물론 여기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이 가설은 “이 사람은 누군가와 닮았는데?”, “여기 분위기가 어딘가와 비슷한데?”와 같이 우리의 또 다른 일상적 느낌과 데자뷰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가설 자체가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닮았다는 느낌과 데자뷰에는 작은 차이가 있을 뿐 뇌의 근본적 발화 패턴은 동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 스팟 박사는 데자뷰를 놓고 뇌의 신경세포가 전혀 다른 자극을 동일한 것인 양 잘못 반응하여 발화한 것, 다시 말해 기억의 오류라며 자신의 가설을 보완하기도 했다.

박소란 파퓰러사이언스 기자
저작권자 2011-05-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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