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 왔다. 만물을 구성하는 원소의 종류는 시대와 문명별로 다양하게 지목돼 왔으며, 각 원소 간의 관계를 밝히려는 노력도 계속돼 왔다. 이 의문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화상대화를 하며 우주에 진출한 오늘날에도 계속 진행 중이다.
모든 물질을 쪼개고 또 쪼개면
만물은 네 가지(물, 불, 흙, 공기)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은 서로 변환이 가능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 변환설은 중세 유럽에 연금술을 흥행시킨 계기가 됐고, 연금술은 현대 화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돌턴의 원자설을 시작으로 원자, 분자 등의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해 현재의 주기율표가 그 모습을 갖춰갔으며, 오늘날에도 새로운 원소들이 발견되거나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는 원자설 시대의 사람들처럼 ‘원자’가 가장 작은 물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이루는 원자핵, 그리고 전자로 이뤄져 있음이 밝혀졌으며 그마저도 더 작은 입자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대의 입자물리학에서는 우주가 쿼크와 렙톤이라는 입자들과 이들의 반입자(구성은 같지만 전하가 반대인 입자, 입자와 만나면 에너지를 방출하며 쌍소멸 한다)로 구성됐다고 설명한다.
우주를 설명하는 네 가지 상호작용과 통일장이론물질의 근원을 설명하는 것은 끝없이 잘게 쪼갠다고만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작은 입자들이 어떤 원리로 상호작용하며 어떻게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밝혀내야 한다.
현대 물리학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는 ‘표준이론(혹은 표준모형)’은 이것을 네 가지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중력과 전자기력,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들 간에 작용하는 강한 핵력과 약한 핵력이 그 것들이다.
강한 핵력은 원자핵 내의 입자 간에 작용하는 힘으로 네 개의 힘 중 가장 강한 힘이다. 단, 두 개의 소립자가 약 10-15m 이내의 거리에 있을 때에 작용한다. 약력은 원자핵의 붕괴에 의해 작용하는 힘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과 현상들은 이 네 가지 상호작용과 앞서 언급한 입자들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 표준이론이다.
상호작용하는 물질의 규모나 상황에 따라서 이 네 가지의 상호작용을 적용하게 되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하나로 통합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에 각 상호작용들 간에 관계를 설명하고 이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연구는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현대 물리학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통일장이론(unified theory of field)’이라 불리는 이 이론은 인류 최고의 천재로 손꼽히는 아인슈타인도 도전했던 과제다. 하지만 그 끝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 뒤로도 연구는 계속 됐지만 아직 궁극적인 하나의 개념으로 통일시키지는 못했다.
애초에 전기력과 자기력으로 나뉘어있던 두 가지 상호작용은 이미 전자기력으로 통합됐으며 약력과 전자기력도 이 이론을 통해 통합됐다. 또한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강한 핵력까지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남은 것은 중력. 하지만 중력만은 통합에 있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이유는 나머지 세 가지의 힘과 작용하는 규모면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구분하자면 강력과 약력, 전자기력은 작은 입자세계에서 나타나며 이는 양자론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중력의 경우엔 이보다는 확연히 거대한 규모의 세계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어려운 것.
하지만 중력마저 통합시킬 수 있는 이론이 존재한다. 바로 ‘초끈이론’이 그것. 초끈이론에선 쿼크나 렙톤마저도 가장 작은 입자로 보지 않는다. 1차원 끈 형태의 물질이 진동을 하면서 쿼크 같은 입자를 만들고 있다는 가설이다.
미시세계를 설명하는 양자론의 특징은 불연속성이며 거시세계를 설명하는 상대성이론의 특징은 연속성이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현대물리학의 가장 큰 과제다. 하지만 초끈이론은 이들 간의 상호관계까지 설명 가능하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우주 생성 재현해 만물 근원 알아낼까하지만 이렇게 점점 궁극적인 이론으로 넘어갈수록 밝혀지지 않은 것, 밝혀내야 하는 것들 또한 많아지기 때문에 이론의 완전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각 이론들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들이 계속 진행되는 이유도 그것들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실험이 바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강입자충돌기 실험이다. 일명 빅뱅 실험이라고도 불린 이 실험은 자기장에서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킨 입자들을 충돌시키는 실험이다.
고에너지를 가진 두 입자가 충돌하면서 물질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입자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강입자충돌기 실험은 이를 분석하는 것이다. 가속기를 이용하면 그 에너지가 빅뱅 당시 수준으로 추정되는 충돌을 일으킬 수 있기에 ‘미니 빅뱅 실험’이라 불린다. 이는 우주의 모든 것이 빅뱅으로부터 발생했으며 네 가지 상호작용들도 이로부터 발생했다는 이론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 실험의 또 다른 목표는 존재가 예상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힉스입자를 발견하는 것이다. 질량의 근원을 설명할 수 있는 힉스입자가 발견되면 중력을 더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 통일장이론 완성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미국 페르미 연구소, 충돌실험서 새로운 현상 발견
한편 최근 우주의 근원을 밝히려는 실험 중 흥미로운 결과가 발견되면서 세계 물리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CERN의 LHC가 가동되기 전에는 세계 최대의 원형입자가속기였던 미국 페르미 연구소의 입자가속기 ‘테바트론’이 그 주인공이다. 테바트론에서 진행된 양성자-반양성자(양성자의 반입자)의 충돌 실험에서 특이한 현상이 발견됐다. 실험을 진행한 페르미 연구소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테바트론을 이용한 충돌실험에서 표준모형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관찰됐다”고 보고했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그동안 고대해 왔던 힉스입자의 흔적일 수 있으며, 전혀 새로운 입자의 흔적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페르미 연구소 대변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힘 외에 새로운 힘이 있을 수 있다”며 새로운 발견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표준모형이 설명하는 네 가지 상호작용 외에 새로운 입자가 매개하는 다섯 번째 상호작용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현대 물리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기 때문에 관련 학자들이 흥분하고 있음은 물론 결과에 대한 논란도 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연구진이 밝힌 내용은 실험 데이터가 60%밖에 분석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성급한 발표라는 의견도 있다. 연구진은 본 실험에서 발견한 새로운 현상이 통계적인 오류에서 기인했을 확률은 0.04%이하라고 밝혔지만 이는 입자물리학의 입장에서는 비교적 오류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테라트론보다 거대하고 성능이 좋은 LHC에선 본 실험에 비해 더욱 높은 에너지로 실험을 진행했음에도 아직까지 이와 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성에서 의심을 받고 있다. 이에 세계 물리학계는 이번 발견에 흥미를 보이면서도 큰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 아직 ‘새로운 발견’이라 하기에는 정확한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테라트론은 올해 9월 가동을 중지할 예정이다. 반면 LHC는 앞으로 빅뱅 당시의 에너지와 맞먹는 규모의 충돌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능력으로는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난해함 때문에 통일장이론은 종종 ‘신의 영역’에 비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밝혀내려는 인류의 노력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 조재형 객원기자
- alphard15@nate.com
- 저작권자 2011-04-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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