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옹의 연인 ‘마틸다(나탈리 포트만)’에게 83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블랙스완’은 순수하고 우아한 ‘백조’가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흑조’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뉴욕 발레단의 니나는 백조 연기로는 단연 최고로 꼽히는 발레리나이다. 그는 ‘백조의 호수’ 공연을 앞두고 감독으로부터 ‘백조’와 ‘흑조’라는 1인 2역의 주역으로 발탁된다.
하지만 니나는 완벽한 백조와는 달리 도발적인 흑조 연기에는 자신이 없다. 발레단에 새롭게 입단한 또 다른 발레리나 릴리의 카리스마와 관능적인 매력에 그녀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급기야 자신의 성공을 지지하던 엄마마저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니나는 내면의 어두운 면을 표출해 서서히 흑조가 돼간다.
발레리나 속 다중인격, 블랙스완
블랙스완에서 흑조는 백조와 또 다른 캐릭터가 아니라 백조의 다른 자아로 묘사된다. 니나라는 한 명의 주인공이 내면의 서로 다른 자아를 각기 다른 순수한 백조와 관능적인 흑조라는 서로 다른 형태로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니나와 같이 한 사람의 자아 속에 또 다른 자아가 존재하는 것을 이른바 ‘다중인격’이라고 부른다. 다중인격은 의학적으로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라고 일컫는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해리성 장애의 하나로 한 사람 안에 둘 또는 그 이상의 각기 구별되는 정체감이나 인격 상태가 존재한다.
건장한 백인 청년 윌리엄 스탠리 밀리건(빌리 26세), 영국인 아서(22), 행동주의자 레이건(23), 협잡꾼 앨런(18), 예술가 타미(16), 레즈비언 에이들라나(19), 겁 많은 소년 대니(14), 영국 소녀 크리스틴(3), 데이비드 필립, 크리스토퍼, 케빈, 월터, 에이프릴, 사무엘, 마크, 스티븐, 리, 제이슨, 로버트, 숀 마틴, 티모시, ‘선생’
이상의 24명은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서로 다르지만 모두 한 명의 사람이다. 바로 윌리엄 밀리건이다. 밀리건 이외의 나머지 23명은 밀리건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다중인격체이다. 이들은 밀리건이 처한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교대로 등장해 마치 밀리건인냥 현실 세계를 활보한다. 23명의 또 다른 밀리건들은 본인들이 밀리건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1977년 10월 밀리건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연쇄 성폭행사건 용의자로 체포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밀리건은 강간혐의로 기소됐지만 세계 최초로 다중인격장애(해리성 정체 장애)를 인정받아 무죄를 선고받았다.
자신의 행위들을 기억하지 못했으며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인 그에게 다중인격장애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밀리건은 이후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1991년 더 이상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을 받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밀리건, 다중인격으로 무죄 선고
대니얼 키스는 논픽션 ‘24개 인격… 누구 책임인가’에서 밀리건의 삶과 법정 공방, 치유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하면서 ‘한 사람으로서의 밀리건의 권리와 범죄자로서 그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의 관용’에 대한 물음을 제기했다.
사실 다중인격 자체가 생소한 소재는 아니다. 보물섬의 저자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헨리 지킬 박사는 인간은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본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 두 개의 본능을 분리하는 실험에 착수한다.
화학약품을 이용해 지킬 박사는 자신과 정반대 성질을 지닌 무서운 본능의 하이드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지킬 박사는 하이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영화 ‘사이코’에서 다중인격을 그만의 독창적인 스릴러 시각으로 묘사했다. 노먼 베이츠는 10년 전 어머니와 애인을 살해하고 어머니의 시체와 함께 생활한다. 노먼은 노먼의 캐릭터와 죽은 어머니의 캐릭터 등 2개의 자아로 정신이 분열돼 있다.
노먼의 2중인격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 노먼이 애인을 죽인 것도 또 자신의 여관을 찾아온 여자 손님을 죽인 것도 노먼이 여자와 가깝게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 노먼 속의 또 다른 자아인 어머니의 질투심이 유발한 살인행동이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드레스드 투 킬’에서 남성과 여성의 2중 캐릭터를 지닌 정신과 전문의 엘리어트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그렸다. 엘리어트는 남성 자아일 때는 뛰어난 의사이지만 엘리어트 속에서 여성 자아가 눈을 뜨면 무시무시한 살인자로 변모한다.
이외에도 에드워드 노튼이 다중인격자인 것처럼 꾸며 살인 혐의를 벗어나는 내용을 다룬 ‘프라이멀 피어’, 존 쿠삭이 10명의 자아를 지닌 다중인격 살인자로 등장하는 ‘아이덴터티’까지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영화는 수없이 많이 제작됐다.
이들 영화들은 대부분 다중인격을 엽기적인 살인마 정도로 취급하면서 영화적 재미를 위한 ‘반전’의 소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다중인격자는 살인을 일삼으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암적인 존재이기만 할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과학, 의학 저술가인 리타 카터는 ‘다중 인격의 심리학’에서 심리학과 뇌과학 등을 적용해 인간은 누구나 여러 인격을 지닌 다중인격자라는 시각을 제시했다. 카터는 하나의 진정한 자아는 없으며 다중성은 인간의 뇌가 복잡한 세상에서 그때그때 적응하고 융통성을 발휘해 살아남기 위해 발달시킨 자연스러운 생존전략이라고 주장했다.
건강한 다중인격, 자연스러운 생존전략
건강한 다중인격과 다중인격장애(해리성 정체 장애)로 불리는 병적인 다중인격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내면의 여러 인격 중에서 폭력적이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인격이 있다고 해서 그런 사람을 모두 다중인격장애 환자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건강한 다중인격은 내면의 여러 인격들이 서로 기억을 공유하지만 병적인 다중 인격은 그렇지 못한다. 카터는 한 사람 속의 다중 인격을 내면의 가족이라고 지칭했는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 속 가족은 대개 비슷한 구조를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탁 트인 정상적인 가족 공간에서 서로 기억을 공유한다.
이를테면 모든 사람에게는 보호자 역할을 하는 인격, 행동을 추진하고 조정하는 일을 하는 통제자 인격, 발전상황을 감시하는 인격, 사기를 북돋워주는 인격, 사기를 꺾어버리는 인격 등이 있다는 얘기다.
카터는 내면에 공존하는 여러 인격들의 특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그들의 상호 작용과 대립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인격 바퀴라는 도구를 통해 다중인격체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이러한 도구를 통해 자신과 타인의 숨은 면모를 뚜렷이 파악할 수 있으며 문제를 유발하는 인격은 쉽게 다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발레리나 속 다중인격, 블랙스완
블랙스완에서 흑조는 백조와 또 다른 캐릭터가 아니라 백조의 다른 자아로 묘사된다. 니나라는 한 명의 주인공이 내면의 서로 다른 자아를 각기 다른 순수한 백조와 관능적인 흑조라는 서로 다른 형태로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니나와 같이 한 사람의 자아 속에 또 다른 자아가 존재하는 것을 이른바 ‘다중인격’이라고 부른다. 다중인격은 의학적으로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라고 일컫는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해리성 장애의 하나로 한 사람 안에 둘 또는 그 이상의 각기 구별되는 정체감이나 인격 상태가 존재한다.
건장한 백인 청년 윌리엄 스탠리 밀리건(빌리 26세), 영국인 아서(22), 행동주의자 레이건(23), 협잡꾼 앨런(18), 예술가 타미(16), 레즈비언 에이들라나(19), 겁 많은 소년 대니(14), 영국 소녀 크리스틴(3), 데이비드 필립, 크리스토퍼, 케빈, 월터, 에이프릴, 사무엘, 마크, 스티븐, 리, 제이슨, 로버트, 숀 마틴, 티모시, ‘선생’
이상의 24명은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서로 다르지만 모두 한 명의 사람이다. 바로 윌리엄 밀리건이다. 밀리건 이외의 나머지 23명은 밀리건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다중인격체이다. 이들은 밀리건이 처한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교대로 등장해 마치 밀리건인냥 현실 세계를 활보한다. 23명의 또 다른 밀리건들은 본인들이 밀리건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1977년 10월 밀리건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연쇄 성폭행사건 용의자로 체포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밀리건은 강간혐의로 기소됐지만 세계 최초로 다중인격장애(해리성 정체 장애)를 인정받아 무죄를 선고받았다.
자신의 행위들을 기억하지 못했으며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인 그에게 다중인격장애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밀리건은 이후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1991년 더 이상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을 받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밀리건, 다중인격으로 무죄 선고
대니얼 키스는 논픽션 ‘24개 인격… 누구 책임인가’에서 밀리건의 삶과 법정 공방, 치유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하면서 ‘한 사람으로서의 밀리건의 권리와 범죄자로서 그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의 관용’에 대한 물음을 제기했다.
사실 다중인격 자체가 생소한 소재는 아니다. 보물섬의 저자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헨리 지킬 박사는 인간은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본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 두 개의 본능을 분리하는 실험에 착수한다.
화학약품을 이용해 지킬 박사는 자신과 정반대 성질을 지닌 무서운 본능의 하이드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지킬 박사는 하이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노먼의 2중인격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 노먼이 애인을 죽인 것도 또 자신의 여관을 찾아온 여자 손님을 죽인 것도 노먼이 여자와 가깝게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 노먼 속의 또 다른 자아인 어머니의 질투심이 유발한 살인행동이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드레스드 투 킬’에서 남성과 여성의 2중 캐릭터를 지닌 정신과 전문의 엘리어트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그렸다. 엘리어트는 남성 자아일 때는 뛰어난 의사이지만 엘리어트 속에서 여성 자아가 눈을 뜨면 무시무시한 살인자로 변모한다.
이외에도 에드워드 노튼이 다중인격자인 것처럼 꾸며 살인 혐의를 벗어나는 내용을 다룬 ‘프라이멀 피어’, 존 쿠삭이 10명의 자아를 지닌 다중인격 살인자로 등장하는 ‘아이덴터티’까지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영화는 수없이 많이 제작됐다.
이들 영화들은 대부분 다중인격을 엽기적인 살인마 정도로 취급하면서 영화적 재미를 위한 ‘반전’의 소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다중인격자는 살인을 일삼으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암적인 존재이기만 할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과학, 의학 저술가인 리타 카터는 ‘다중 인격의 심리학’에서 심리학과 뇌과학 등을 적용해 인간은 누구나 여러 인격을 지닌 다중인격자라는 시각을 제시했다. 카터는 하나의 진정한 자아는 없으며 다중성은 인간의 뇌가 복잡한 세상에서 그때그때 적응하고 융통성을 발휘해 살아남기 위해 발달시킨 자연스러운 생존전략이라고 주장했다.
건강한 다중인격, 자연스러운 생존전략
건강한 다중인격과 다중인격장애(해리성 정체 장애)로 불리는 병적인 다중인격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내면의 여러 인격 중에서 폭력적이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인격이 있다고 해서 그런 사람을 모두 다중인격장애 환자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건강한 다중인격은 내면의 여러 인격들이 서로 기억을 공유하지만 병적인 다중 인격은 그렇지 못한다. 카터는 한 사람 속의 다중 인격을 내면의 가족이라고 지칭했는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 속 가족은 대개 비슷한 구조를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탁 트인 정상적인 가족 공간에서 서로 기억을 공유한다.
이를테면 모든 사람에게는 보호자 역할을 하는 인격, 행동을 추진하고 조정하는 일을 하는 통제자 인격, 발전상황을 감시하는 인격, 사기를 북돋워주는 인격, 사기를 꺾어버리는 인격 등이 있다는 얘기다.
카터는 내면에 공존하는 여러 인격들의 특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그들의 상호 작용과 대립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인격 바퀴라는 도구를 통해 다중인격체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이러한 도구를 통해 자신과 타인의 숨은 면모를 뚜렷이 파악할 수 있으며 문제를 유발하는 인격은 쉽게 다스릴 수 있다”고 말했다.
-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 저작권자 2011-03-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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