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가 다가온다. 발렌타인데이 때 초콜릿 선물을 받았던 남자들이 이제 답례로 선물할 차례다. 여자들의 마음은 기대에 부풀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소개팅을 하거나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눈 사이라면, 그가 조만간 연락을 해올지 선물을 줄지 신경이 쓰일 것이다.요즘은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나쁜 남자’들이 인기다.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이나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이라는 별명은 비난이 아닌 호감의 표시로 쓰이는 시대다.
독일 저널리스트 로만 마리아 코이들(Roman Maria Koidl)은 저서 ‘나쁜 남자들(Scheisskerle)’에서 똑똑한 남자들이 불친절하고 괴팍한 남자들에게 빠져드는 이유를 ‘연민’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정신적 고뇌나 감정적 상처를 가진 남자를 보면 가엾게 여겨져서 도와줘야겠다는 모성애가 발동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 학술지에 나쁜 남자의 비결을 밝힌 논문이 실려 화제다. 미국 버지니아대의 에린 윗처치(Erin Whitchurch)와 티머시 윌슨(Timothy Wilson), 그리고 하버드대의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가 공동으로 연구한 논문의 제목은 ‘날 사랑할까 아닐까... 불확실성이 애정 관심 증가시켜(“He Loves Me, He Loves Me Not ...” Uncertainty Can Increase Romantic Attraction)’이다.
페이스북으로 온라인 소개팅 한다며 실험해
연구진은 나쁜 남자를 연구하게 된 배경으로 ‘호혜성의 원리(reciprocity principle)’를 꼽았다. ‘네가 나에게 잘해주었으니 나도 너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식으로 서로 호의를 베푸는 태도를 가리키는 용어로, 심리학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본원리로 자주 인용된다. 이에 따라 여자들은 감감무소식인 남자와 먼저 연락을 해서 호감을 보이는 남자에게 더 큰 점수를 부여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속설이다.속설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진은 버지니아대의 여학생 47명을 피실험자로 모집했다. 그리고 ‘온라인 소개팅’을 할 계획이니 인기 SNS 사이트인 페이스북(Facebook)에 자신의 프로필을 작성해 게시하도록 했다. 또한 미시건대와 UCLA 등 다른 대학 남학생들이 이 프로필을 검토할 것이고 각자 점수를 매겨 가장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고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남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짓말이었다. 실험에는 오로지 여대생들만 참여했으며 남학생들이 점수를 매긴다는 것은 심리적인 반응을 살피기 위한 설정에 불과했다. 연구진은 이 사실을 모르는 여대생들을 3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다.
제1그룹은 ‘상대 남학생들이 당신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다’는 귀띔을 받은 여학생들로 이루어졌다. 제2그룹은 ‘상대 남학생들이 당신에게 보통 점수를 주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제3그룹은 ‘상대 남학생들이 당신에게 몇 점을 주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이야기만을 들었을 뿐 정확한 정보를 받지 못했다.
연구진은 3개 그룹의 여학생들 모두에게 남학생 4명의 프로필을 동일하게 나누어 주었다. 모두 호감이 갈 만한 인상을 지닌 남학생들이었다. 그리고 4개의 질문에 따라 점수를 매기게 했다. 첫째는 ‘얼마나 호감을 느끼는가’, 둘째는 ‘특정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싶은가’, 셋째는 ‘편한 친구로 지낸다면 어떨까’, 넷째로 ‘애인이 될 가능성은 얼마일까’ 등이다. 매겨진 점수는 애정과 관심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환산했다.
‘호혜성의 원리’ 뛰어넘는 ‘불확실성의 즐거움’ 존재해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제1그룹 여학생들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 남자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고, 제2그룹 여학생들은 자신에게 보통 점수를 준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보통 점수를 주었다. ‘호혜성의 원리’가 적용됐다는 의미다.그런데 상대 남학생들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제3그룹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상대방의 애정 여부가 불확실한데도 불구하고 여학생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제1그룹 여학생들보다 훨씬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 호혜성을 뛰어넘는 원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불확실성의 즐거움(pleasure of uncertainty)’이라 이름 붙였다. 상대방의 마음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는 궁금증이 생기면서 머릿속에 상대방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고 이로 인해 호감이 커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진이 피실험자들에게 얼마나 자주 상대방을 생각했냐고 질문하자, 불확실성을 겪은 제3그룹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다른 그룹에 비해 행복하고 들뜬 기분을 느꼈다.
요약하자면 자신의 마음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를 고수할수록 상대방이 궁금증을 느끼면서 자꾸 생각하게 되고, 그로 인해 호감과 애정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호혜성에 기반을 둔 채 솔직하게 애정을 보이는 ‘쉬운 남자’보다도 속마음을 감춘 채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는 ‘나쁜 남자’들이 더 큰 점수를 받는 셈이다.
‘불확실성의 즐거움’이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또 있다. 크리스마스 전날 부모들은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실까 안 주실까? 어떤 선물을 주실까?” 하며 아이들의 마음을 잔뜩 부풀린 뒤 잠자리에 들게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호기심과 기대에 들뜬 나머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잠이 든다. 산타 할아버지 핑계를 대는 것이 부모가 직접 선물을 사들고 들어오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만족감을 준다.
“자꾸 생각나는 걸 보니 그를 좋아하나 봐”
여러번 반복적으로 생각한다고 애정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진은 논문에서 “중요한 결과를 앞두고 정보가 부족해서 긍정적인 사건이 발생할지 확신이 없다면 해당 사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다른 사안을 생각할 여유가 사라진다”고 밝혔다. 기대하는 사건을 머릿속에 자꾸 떠올리다 보면 ‘자기 지각 효과(self-perception effect)’가 발생한다.
코널대 심리학 교수인 대릴 벰(Daryl Bem)이 1965년에 처음 발표한 이 개념은 ‘자신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자신의 심리상태를 유추한다’는 의미다. “그 남자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걸 보니 내가 그를 좋아하나 보다”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마음에 드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자신에 대해 무조건 많이 그리고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들면서도 관심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상대에게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그보다는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편이 낫다. 그러나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평소처럼 행동하면 상대방이 궁금증을 느끼면서 자꾸 생각하게 되고, 결국에는 큰 애정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 임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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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3-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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