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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기자
2011-02-17

1킬로그램은 이제 1킬로그램이 아니다? 국제 표준원기 무게가 50마이크로그램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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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느강이 프랑스 파리를 빠져나온 곳에 위치한 작은 도시 세브르(Sèvres). 프랑스 왕실에서 사용하던 고급 도자기로 유명한 세브르는 터키의 옛 모습인 오스만제국에게 1차대전의 책임을 물었던 조약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세브르의 유명세에 또 하나를 더한다면 전 세계 질량의 표준이 되는 ‘킬로그램 국제 원기(原器)’가 있다.

국제 원기는 백금과 이리듐의 합금으로 만들어진 직경과 높이 39밀리터의 원기둥으로, ‘1킬로그램(kg)’이라는 질량을 규정하는 기준이자 절대적인 표준이다.

보관은 국제도량형국(BIPM, International Bureau of Weights and Measures)이 맡고 있는데, 국제도량형위원회(CIPM)와 국립문서보존소 등 3개 조직의 수장이 각각의 열쇠를 동시에 꽂아야 열 수 있는 특수 금고에 보관되어 있다.

킬로그램 국제 표준원기는 1878년 제조 이후 지금까지 123년 동안 금고 밖으로 나온 적이 3번밖에 없다. 외부요인에 의해 질량에 변화가 있을까봐 우려해서다. 그런데 원기의 무게가 줄어든 것으로 최근 밝혀져 분위기가 어지럽다. 표준이 달라진다면 학계뿐만 아니라 최첨단 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질량계의 이데아, 킬로그램 국제 표준원기

질량의 표준은 1795년에 처음으로 정해졌다. 당시에는 ‘섭씨 0도의 물 1세제곱센티미터(c㎥)의 질량을 1그램으로 한다’고 정의했으나, 더 큰 단위가 필요해짐에 따라 1그램의 1천배(kilo)에 달하는 1킬로그램이 생겨났다. 1798년에는 ‘4℃의 물 1세제곱데시미터(d㎥) 질량을 1킬로그램으로 한다’고 재정의했으며 이에 따라 백금으로 표준원기를 만들었다.

이후 질량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더욱 정밀도를 높여 새로운 원기를 제작하기로 결정되었고, 1878년 영국의 존슨매티(Johnson Matthey and Co.)사에서 백금 89.9퍼센트와 이리듐 10.09퍼센트 합금으로 현재의 원기를 완성했다. 이것이 1889년 제1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서 비준받았다.

현재 1킬로그램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킬로그램은 질량의 단위이며, 국제 킬로그램 원기의 질량과 같다” 말하자면 국제 킬로그램 표준원기가 세계 모든 질량 측정의 표준이 되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떠오른다. 플라톤은 저서 ‘국가론’에서 “현실의 모든 것은 이데아의 모방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표준원기가 ‘질량계의 이데아’라 불리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현재 100여개 국가에서 표준원기의 복제품으로 질량을 측정한다. 우리나라는 72번의 국제고유번호가 붙은 표준원기 복제품을 소유하고 있으며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 보관 중이다. 이들 복제품은 정기적으로 세브르 소재 국제도량형국으로 보내진다. 표준원기와의 질량 차이가 생기지 않았는지 검사하기 위해서다.

원기를 운반하는 일도 쉽지 않다. 특수 제작된 밀봉 배낭에 1킬로그램짜리 백금-이리듐 합금을 담은 채 공항을 통과하는 일만 해도 지루하고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표준원기 무게 줄어들어 새 정의 필요해

만약 표준원기의 무게가 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재의 정의에 따르면 무게를 잴 때는 무조건 표준원기의 질량를 기준으로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표준원기에 맞춰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측정에서 킬로그램 국제 표준원기의 무게가 50마이크로그램 줄어든 것으로 밝혀졌다. 1마이크로그램은 100만분의 1그램이므로, 50마이크로그램은 눈으로 보기도 힘들 정도로 작은 모래알만큼의 무게도 되지 않는다. 일부 과학자들은 “컵에 묻은 지문 1개의 무게”라 표현할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표준 그 자체가 변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래서 각국 과학자들은 새로운 킬로그램 정의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 대안도 나라마다 각각 다르다. 독일을 주축으로 한 연구진은 무게 변화가 거의 없는 재료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쪽이고, 미국은 양자물리학 개념을 도입하자는 쪽이다.

독일을 주축으로 일본, 이탈리아, 호주가 힘을 합친 국제 공동연구진은 “실리콘 1킬로그램으로 완벽한 구를 만들어 그 분자의 개수를 표준으로 삼자”고 주장하는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아보가드로(Avogadro)는 ‘같은 온도와 같은 압력에서 같은 부피 속에 존재하는 기체 분자의 수는 물질에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개념을 제안한 이탈리아의 화학자로, 그가 밝힌 ‘아보가드로 수’는 1몰 6.022 곱하기 10의 23제곱이다. 이만큼의 분자 수를 가진 물질을 1몰(mol)이라고 정의한다. 독일팀은 아보가드로 수를 가장 정확한 수준으로 밝혀내서 우위에 서 있다.

이에 대항하는 것이 미국을 주축으로 프랑스, 스위스, 캐나다 등이 참가한 ‘와트(Watt) 저울’ 팀이다. 전류가 흐르는 코일을 저울 한 쪽에 올린 뒤 다른 쪽에는 이 전기력과 동일한 중력을 가지는 물체를 올려서 질량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양자물리학의 플랑크 상수(Planck's caonstant)를 이용해서 질량을 정의한다. 플랑크 상수는 ‘6.62606896 곱하기 10의 -34제곱 J·s’로 언제나 일정하다. 그러므로 질량의 표준을 만드는 데에는 더 유리하다. 다만 측정기의 구조가 복잡해서 실용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작은 오차도 허용할 수 없는 치열한 노력

현재 각국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국제표준단위계(SI, Système International d'Units)는 7개가 있다. 길이는 미터(m), 시간은 초(s), 전류는 암페어(A), 온도는 켈빈(K), 물질량은 몰(mol), 광도는 칸델라(cd)가 표준단위다. 무게의 표준은 킬로그램(kg)이다.

미터(m)에 대한 정의는 1983년에 확정되었다. 기존에는 “지구자오선 길이의 4천만분의 1을 1미터로 규정한다”고 했다가 이제는 “진공 상태에서 빛이 299,792,458분의 1초 동안에 이동한 거리”를 1미터로 한다. 이렇듯 대부분의 표준단위들은 물리량을 기준으로 계산하는데, 오로지 킬로그램만이 인공물을 기준으로 삼는다. 표준단위계의 수치라 불릴 만큼 구식인 것이다.

때문에 오는 10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제24회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서는 킬로그램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토론할 예정이다. 아직 어느 과학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질지 예측할 수 없지만, 극히 세밀한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다.
임동욱 기자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1-02-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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