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지구상의 생물이 수십억년 동안 자연선택과 돌연변이에 의해 변화를 거듭한 끝에 탄생한 최후의 동물이다.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의 진화는 없는 것일까.
미국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했던 진화생물학자, 고 스티븐 제이 굴드(Steven Jay Gould)는 1972년 ‘단속평형이론’을 주장했다. 생태계의 평형상태가 유지되다가도 빙하기나 운석충돌 등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 급격한 유전자 변화가 일어나 진화가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이 굴드 교수의 말은 서로 다른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이 지금처럼 안정된 환경에서 계속 살아간다면 더 이상의 진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나 자연재해 등 자연환경이 급변하면 진화가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
인간의 진화에 대한 논쟁이 생물학자와 고고학자들 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과학자들은 고산지대에 적응한 티베트인들이 중국 한족과 다른 유전자를 지녔다며, 이것이 인간의 진화를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연대 추정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섰다. 미국 뉴욕타임즈가 지난 1일 ‘과학자들이 가장 빠른 인간 진화의 사례 찾아냈다(Scientists Cite Fastest Case of Human Evolution)’는 기사를 통해 관련 연구를 조명했다.
고산지대 적응 위해 산소 관련 유전자가 변화해
해발 4천미터 지역은 공기 중 산소 비율이 해수면보다 40퍼센트나 적다. 그러나 티베트 사람들은 웬만해서 고산병에 시달리지 않는다. 중국 베이징 게놈연구소(BGI)는 그 이유를 ‘진화’에서 찾았다.
이신(Yi Xin)과 왕지엔(Jian Wang) 박사가 이끄는 베이징 연구팀은 최근 티베트 사람들의 유전자를 중국의 한족과 비교했다. 그 결과 고지대 생활에 적응하는 동안 적어도 30개의 유전자가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팀은 티베트족이 한족에서 분리된 시기를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으로 잡았는데, 이것은 인간의 진화가 발견된 사례 중에 가장 최근의 자료인 셈이다.
지금까지는 7천500년 전에 북유럽에 퍼지기 시작한 유당(lactose) 소화능력이 가장 최근의 사례였다. 어린아이들은 모유를 소화시키기 위해 유당을 분해하는 락타아제(lactase)를 활발하게 분비하지만, 성인이 되면서는 효소가 줄어들면서 우유를 마시면 구토와 설사를 하는 유당분해효소 결핍증(lactose intolerance)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성인들도 우유를 섭취할 기회가 늘어났고, 덕분에 소화 효소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유당을 분해시키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고지대에서는 ‘산소’와 관련된 변화가 일어났다. 저지대에 살던 사람들이 고지대로 이주하게 되면 낮은 산소 수치에 몸이 적응하면서 더 많은 적혈구를 만들어내 혈액이 걸쭉한 상태가 된다. 이러한 적혈구 과생산으로 인해 만성적인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고 임신 가능성이 낮아진다. 현재에도 티베트에 거주하는 한족들은 티베트 사람들에 비해 영아 사망률이 3배나 높다.
베이징 연구팀은 해발 4천200미터에 거주하는 50명의 티베트인들과 해발 50미터인 베이징에 거주하는 40명의 한족을 선발했다. 그런데 3퍼센트의 유전자만을 분석했는데도 많은 유전자들이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족에게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유전자가 티베트인들에게는 흔하게 나타난 것이다. 심하게는 한족의 9퍼센트에게서만 발견되는 일부 유전자가 티베트인의 87퍼센트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문제의 유전자는 저산소증으로 인해 생겨난 HIF-2α(hypoxia-inducible factor 2-alpha)라는 이름의 변이체로, 이를 보유한 티베트인들은 혈중 적혈구 수가 적어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게 나타난다. 보통 사람들은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에 도착했을 때 산소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헤모글로빈이 증가해 고산병에 시달리게 되지만, 티베트인들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서 고산병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진화 시기에 대해서는 논쟁 분분해
티베트족의 특이한 유전자를 연구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 5월 사이언스(Science)지에는 미국 유타대학교의 테이텀 시몬슨(Tatum Simonson) 교수와 중국 칭하이대학교의 꺼 를리(Ri-Li Ge) 교수의 공동 연구결과가 실렸다. 티베트인 31명의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적혈구 생산에 관여하는 HIF-2α와 기타 유전자들이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교 인류학과의 신시아 빌(Cynthea Beall) 교수와 중국 쿤밍 동물학연구소의 쩡용탕(Yong-Tang Zheng) 박사도 지난달 22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공동 논문을 게재했다. 그들은 티베트인들에게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 HIF-2α 유전자가 생겨났으며, 이것이 혈액 중 헤모글로빈 수치를 낮추는 데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위의 3가지 논문은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 덕분에 고산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데 동의한 셈이다. 티베트족이 고산지대에 적합한 유전자를 가지게 되면서 더 많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게 되었고, 결국에는 자연선택에 의해 변형 유전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점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티베트인들이 왜 고산병에 걸리지 않는지는 밝혀졌지만, 적혈구 숫자가 많지 않은데도 어떻게 산소 부족을 해결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연대 추정에 따른 논쟁도 심화됐다. 베이징 연구팀은 한족에서 티베트족이 분리된 시기를 3천년 전으로 잡았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티베트 고지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인 최소 7천년에서 최대 2만1천년 전이라며 “게놈연구소의 연대 추정이 잘못됐다”고 반박한다.
티베트 전문가인 마크 올던더퍼(Mark Aldenderfer)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는 “3천년 전에 한족과 티베트인들이 분리됐다는 증거는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등 어떠한 증거로도 찾아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올던더퍼 박사는 그 전에도 티베트 고원으로 이주한 사례가 많을 것으로 추측한다. 예를 들어 6천년 전에는 북북동 지역의 유목민들이 티베트 고원에 유입되기도 했다. 그는 “예전의 연구에서는 티베트인들이 남쪽의 한족보다는 북쪽의 한족과 더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일부는 중앙아시아에서 유래된 유전자도 섞여 있었다”고 밝혔다.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유전학자들은 고고학자들보다 연대를 더 넓게 잡는 편이다. 일부는 “한족과 티베트족이 3천년 전에 분리되었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지만, 유전학적 증거를 살펴보면 6천년 안쪽으로 추정된다”며 최근의 인간 진화 사례로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인구수를 추산하는 데에도 고고학자들과 유전학자들 간의 의견이 어긋난다. 베이징 연구팀은 민족이 분리되던 당시에 한족 거주인구를 288명, 티베트족은 2만2천642명이라고 계산했는데, 고고학자들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중국 남부에서 쌀농사가 시작된 것이 1만년 전이므로 3천년 전 당시에는 광대한 문명권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베이징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진행한 라스무스 닐센(Rasmus Nielsen) 미국 UC 버클리대학교 교수는 베이징 연구팀의 결과를 통계적으로 계산한 후 “288명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한족 인구가 아주 적었던 ‘인구 병목현상’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라고 옹호했다. 시기가 언제이든 병목현상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연대 추정에 대해서도 “3천년과 6천년 중에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확신할 수 없다”며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는 “중요한 것은 이번 연구결과에 정치적인 의미가 담기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라고 강조하며, 한족과 티베트인들의 유전자 차이로 인해 티베트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미묘한 사안이 불거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또한 “덴마크와 스웨덴은 지금 서로 다른 두 나라로 분리되어 있지만 유전자 차이는 그리 큰 편이 아니”라며, 역사, 문화, 언어가 아닌 ‘유전자’로 민족을 구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학자와 고고학자는 유전자와 화석유물이라는 자료가 다를 뿐, 인류의 역사를 읽어낸다는 면에 있어서는 공통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들의 논쟁이 학문적 결실을 맺어 인간 진화의 비밀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제이 굴드 교수의 말은 서로 다른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이 지금처럼 안정된 환경에서 계속 살아간다면 더 이상의 진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나 자연재해 등 자연환경이 급변하면 진화가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
인간의 진화에 대한 논쟁이 생물학자와 고고학자들 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과학자들은 고산지대에 적응한 티베트인들이 중국 한족과 다른 유전자를 지녔다며, 이것이 인간의 진화를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연대 추정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섰다. 미국 뉴욕타임즈가 지난 1일 ‘과학자들이 가장 빠른 인간 진화의 사례 찾아냈다(Scientists Cite Fastest Case of Human Evolution)’는 기사를 통해 관련 연구를 조명했다.
고산지대 적응 위해 산소 관련 유전자가 변화해
해발 4천미터 지역은 공기 중 산소 비율이 해수면보다 40퍼센트나 적다. 그러나 티베트 사람들은 웬만해서 고산병에 시달리지 않는다. 중국 베이징 게놈연구소(BGI)는 그 이유를 ‘진화’에서 찾았다.
이신(Yi Xin)과 왕지엔(Jian Wang) 박사가 이끄는 베이징 연구팀은 최근 티베트 사람들의 유전자를 중국의 한족과 비교했다. 그 결과 고지대 생활에 적응하는 동안 적어도 30개의 유전자가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팀은 티베트족이 한족에서 분리된 시기를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으로 잡았는데, 이것은 인간의 진화가 발견된 사례 중에 가장 최근의 자료인 셈이다.
지금까지는 7천500년 전에 북유럽에 퍼지기 시작한 유당(lactose) 소화능력이 가장 최근의 사례였다. 어린아이들은 모유를 소화시키기 위해 유당을 분해하는 락타아제(lactase)를 활발하게 분비하지만, 성인이 되면서는 효소가 줄어들면서 우유를 마시면 구토와 설사를 하는 유당분해효소 결핍증(lactose intolerance)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성인들도 우유를 섭취할 기회가 늘어났고, 덕분에 소화 효소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유당을 분해시키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베이징 연구팀은 해발 4천200미터에 거주하는 50명의 티베트인들과 해발 50미터인 베이징에 거주하는 40명의 한족을 선발했다. 그런데 3퍼센트의 유전자만을 분석했는데도 많은 유전자들이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족에게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유전자가 티베트인들에게는 흔하게 나타난 것이다. 심하게는 한족의 9퍼센트에게서만 발견되는 일부 유전자가 티베트인의 87퍼센트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문제의 유전자는 저산소증으로 인해 생겨난 HIF-2α(hypoxia-inducible factor 2-alpha)라는 이름의 변이체로, 이를 보유한 티베트인들은 혈중 적혈구 수가 적어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게 나타난다. 보통 사람들은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에 도착했을 때 산소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헤모글로빈이 증가해 고산병에 시달리게 되지만, 티베트인들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서 고산병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진화 시기에 대해서는 논쟁 분분해
티베트족의 특이한 유전자를 연구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 5월 사이언스(Science)지에는 미국 유타대학교의 테이텀 시몬슨(Tatum Simonson) 교수와 중국 칭하이대학교의 꺼 를리(Ri-Li Ge) 교수의 공동 연구결과가 실렸다. 티베트인 31명의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적혈구 생산에 관여하는 HIF-2α와 기타 유전자들이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교 인류학과의 신시아 빌(Cynthea Beall) 교수와 중국 쿤밍 동물학연구소의 쩡용탕(Yong-Tang Zheng) 박사도 지난달 22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공동 논문을 게재했다. 그들은 티베트인들에게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 HIF-2α 유전자가 생겨났으며, 이것이 혈액 중 헤모글로빈 수치를 낮추는 데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위의 3가지 논문은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 덕분에 고산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데 동의한 셈이다. 티베트족이 고산지대에 적합한 유전자를 가지게 되면서 더 많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게 되었고, 결국에는 자연선택에 의해 변형 유전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점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티베트인들이 왜 고산병에 걸리지 않는지는 밝혀졌지만, 적혈구 숫자가 많지 않은데도 어떻게 산소 부족을 해결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티베트 전문가인 마크 올던더퍼(Mark Aldenderfer)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는 “3천년 전에 한족과 티베트인들이 분리됐다는 증거는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등 어떠한 증거로도 찾아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올던더퍼 박사는 그 전에도 티베트 고원으로 이주한 사례가 많을 것으로 추측한다. 예를 들어 6천년 전에는 북북동 지역의 유목민들이 티베트 고원에 유입되기도 했다. 그는 “예전의 연구에서는 티베트인들이 남쪽의 한족보다는 북쪽의 한족과 더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일부는 중앙아시아에서 유래된 유전자도 섞여 있었다”고 밝혔다.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유전학자들은 고고학자들보다 연대를 더 넓게 잡는 편이다. 일부는 “한족과 티베트족이 3천년 전에 분리되었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지만, 유전학적 증거를 살펴보면 6천년 안쪽으로 추정된다”며 최근의 인간 진화 사례로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인구수를 추산하는 데에도 고고학자들과 유전학자들 간의 의견이 어긋난다. 베이징 연구팀은 민족이 분리되던 당시에 한족 거주인구를 288명, 티베트족은 2만2천642명이라고 계산했는데, 고고학자들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중국 남부에서 쌀농사가 시작된 것이 1만년 전이므로 3천년 전 당시에는 광대한 문명권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베이징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진행한 라스무스 닐센(Rasmus Nielsen) 미국 UC 버클리대학교 교수는 베이징 연구팀의 결과를 통계적으로 계산한 후 “288명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한족 인구가 아주 적었던 ‘인구 병목현상’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라고 옹호했다. 시기가 언제이든 병목현상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연대 추정에 대해서도 “3천년과 6천년 중에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확신할 수 없다”며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는 “중요한 것은 이번 연구결과에 정치적인 의미가 담기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라고 강조하며, 한족과 티베트인들의 유전자 차이로 인해 티베트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미묘한 사안이 불거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또한 “덴마크와 스웨덴은 지금 서로 다른 두 나라로 분리되어 있지만 유전자 차이는 그리 큰 편이 아니”라며, 역사, 문화, 언어가 아닌 ‘유전자’로 민족을 구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학자와 고고학자는 유전자와 화석유물이라는 자료가 다를 뿐, 인류의 역사를 읽어낸다는 면에 있어서는 공통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들의 논쟁이 학문적 결실을 맺어 인간 진화의 비밀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임동욱 기자
- duim@kofac.or.kr
- 저작권자 2010-07-09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