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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이한음 과학칼럼니스트
2010-06-07

‘산만함’, 과연 나쁘기만 할까? 인간의 뇌도 다중작업 가능한지 세계적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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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0일 지식경제부에서 스마트폰 도청 시연회를 열었다고 한다. 장관의 스마트폰에 이메일로 악성코드를 넣어 도청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런데 그 스마트폰이 아이폰이라는 기사가 나자, 애플코리아 측과 보안 전문가들은 의아하게 여겼다. 아이폰은 멀티태스킹(다중 작업)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청은 다른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와중에 악성코드도 실행되고 있어야 이루어지는데, 아이폰은 보안 위협을 생각하여 다중 작업이 안 되도록 한 스마트폰이었다. 이 점에서 아이폰은 스마트폰답지 않은 스마트폰인 셈이다.

그 외의 스마트폰들과 새로 나올 아이폰은 다중 작업이 지원된다고 한다. 즉 PC처럼 전자우편을 보내면서 문서 작업도 할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다. 모름지기 현대인의 능력 수준에 맞추려면 그래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요즘 젊은이를 보라. 컴퓨터를 하면서 텔레비전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휴대전화로 메시지도 보낸다. 동시에 이것저것 다 하면서도 별 탈이 없는 듯하다. 그들에게 다중 작업이 가능한 첨단 기기들은 수요에 부응하는 아주 좋은 도구인 듯하다.

하지만 컴퓨터도 다중 작업을 많이 하면 무리가 가는 법. 일 처리 속도가 느려지고 때로는 과중한 부하가 걸려서 멈추기도 한다. 다중 작업 기기를 흉내내려는 사람, 즉 자신이 그런 기계에 못지않은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기계가 자신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오만한 생각도 가끔 하는 사람이 있는데, 혹시 그들의 뇌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지나 않을까?

다중 작업은 안 좋아

실제로 전통적인 심리 실험들은 한결같이 그렇다고 말해 왔다. 즉 주의를 집중하지 않고 이것저것 산만하게 하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꼴이 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신문 기사를 읽도록 했더니, 이해하는 능력뿐 아니라 기억을 떠올리는 능력에도 해로운 효과가 나타났다는 실험 결과도 있었다. 한 마디로 백해무익하다는 것이었다.

학습이든 훈련이든 어떤 일을 꾸준히 하면, 그 일을 담당하는 뇌 신경 회로가 튼튼해진다고 한다. 그러면 나중에 그 일을 할 때 뇌가 더 수월하고 빠르게 처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일 저 일 동시에 산만하게 하면 그런 회로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다. 따라서 다중 작업은 학습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다중 작업이 대세?

하지만 미국의 카이저패밀리 재단이 미국 전역의 8~18세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는 다양한 매체를 동시에 활용하는 다중 작업이 대세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재단은 1999년, 2004년, 2000년 5년마다 청소년이 텔레비전, 컴퓨터 등 각종 대중 매체를 접하는 시간을 조사했다. 1999년 조사에서는 하루에 각종 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이 6시간 19분이었다. 2004년에는 6시간 21분이었다.

5년 사이에 1시간 17분이 늘었다. 이 사이에 컴퓨터와 인터넷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그에 따라 실제 미디어를 활용하면서 다중 작업을 하는 시간도 늘었다. 한 번에 둘 이상의 미디어를 사용하는 시간이 16퍼센트에서 26퍼센트로 늘었다. 그것을 감안하면, 미디어 사용 시간은 7시간 29분에서 8시간 33분으로 약 1시간 늘어난 셈이다.

2009년 조사에서는 미디어 이용 시간이 하루에 평균 7시간 38분으로 더 늘었다. 여러 미디어를 동시에 접하는 다중 작업을 감안하면 이용 시간은 10시간 45분으로 늘어났다. 이 기간에 휴대전화와 MP3 플레이어 같은 휴대용 기기 소유자는 39퍼센트에서 66퍼센트로 늘었다. 그들은 그런 기기로 음악 감상, 게임, 비디오 시청 등을 하면서 메시지도 보내고 통화도 한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첨단 기기들이 늘어날수록 이런 추세도 더 심해질 것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때부터 그런 기기를 갖고 노는 아이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진정한 다중 작업 세대가 될지 모른다. 멀티태스킹 기기를 마음껏 활용한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뇌가 그 방향으로 맞추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우리 뇌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한다

우리의 뇌는 지구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물이다. 뇌는 백억 개의 뉴런과 수백조 개의 시냅스 연결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뇌에도 한계가 있다. 바로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한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자우편이나 인스턴트 메시지를 읽고 답장한 뒤에 원래 하던 컴퓨터 코드 짜기나 서류 작성이라는 머리를 쓰는 업무로 돌아가는 데 평균 15분이 걸린다고 한다. 이것은 딴 일을 하다가 다른 일로 돌아가서 집중하기가 쉽지 않음을 뜻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고 생각하지만, 2009년 7월 <뉴런>에 발표된 한 논문은 그 생각이 착각이라고 말한다. 그저 훈련과 연습을 통해 일을 머릿속에서 처리하는 속도를 더 빠르게 함으로써 두 일 사이를 빠르게 오가기 때문에 동시에 하는 듯이 보일 뿐, 우리 뇌는 병렬 처리 컴퓨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우리 뇌는 실제로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연습하여 어떤 일이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한다면, 그 일을 하면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수백 번 들어 달달 외우고 있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문서를 작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뇌가 노래를 처리하는 능력이 빨라져서, 그 일과 문서 작성 업무 사이를 빠르게 오감으로써 두 일을 동시에 하는 양 보이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산만함과 주의력을 바라보는 주된 관점이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에얄 오피르 연구진도 다중 작업이 자기 통제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들은 다중 작업에 능한 부류와 그렇지 못한 부류를 대상을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전자는 후자에 비해 환경이나 최근에 기억한 별 관계없는 정보를 무시하라는 요청에 덜 반응했다.

이상한 점은 두 가지 과제 사이를 빠르게 오가는 일도 전자가 더 못했다는 것이다. 다중 작업에 능한 사람들이 오히려 두 과제 사이를 오가는 데 문제가 있었다. 다중 작업을 잘 한다는 말과 모순되는 것이 아닐까? 멀티태스킹은 여러 일 사이를 빠르게 오가면서 처리하는 것을 의미할 텐데?

연구진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상습적으로 다중 작업을 하는 사람은 별 관계없는 환경 자극과 기억에 방해를 받기 쉽다. 그래서 무관한 방해 요인을 걸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과제 전환 능력 검사에서 점수가 낮게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피르 연구진은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 연구진은 다중 작업에 몰두하는 이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정보 처리 전략이 근본적으로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즉 전자는 가용 정보를 다 찾아보기를 좋아하는 ‘넓게 보자’ 주의인 반면, 후자는 ‘집중해서 보자’ 주의이다.

전자는 탈중심적인 반면, 후자는 중앙집중적이다. 전자는 환경 변화가 심하고 어느 정보가 믿을 수 있는지 확신하기 어려울 때 유용할 것이다. 그럴 때는 다양한 정보를 얻는 편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예측 가능한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잡다한 정보를 무시하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정보에만 집중하는 편이 일을 더 빠르고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원인이고 결과일까?

오피르 연구진은 다중 작업을 선호하는 사람이 원래 집중을 못하고 산만해서 그 쪽을 선호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다양한 정보를 찾으려는 성향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한다. 어쨌든 연구진은 전자가 주의력 결함이 있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정보를 찾고 대하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심리 검사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즉 전통적인 심리 검사법은 주의력을 얼마나 집중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는 것이다. 그런 과제가 아닌 다른 과제를 준다면, 오히려 산만한 사람이 더 높은 점수를 받지 않을까?

다중 작업은 새로운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 가지에 집중하는 데 소홀하여 기억과 학습에 지장이 있긴 해도, 다중 작업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정보가 인터넷에 널려 있는데, 굳이 기억에 담으려 애쓸 필요가 뭐 있겠는가?

멀티태스킹 시대는 주의력을 여러 분야에 골고루 분산시킬 것을 요구하지 않을까?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지 않고, 계속 산만하게 딴 짓을 하는 태도가 개인과 사회에 나름대로 유익한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까지 그것을 안 좋은 습관이라고 치부해 왔지, 그쪽으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멀티태스킹 시대는 우리에게 다른 방향으로도 생각해볼 것을 요구한다.

멀티태스킹은 새로운 세대의 특징일까?

지난 4월 프랑스의 에티엔 케클렝 연구진은 실험 대상자에게 두 가지 과제를 주고서 뇌기능 영상을 찍어서 뇌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뇌는 양쪽 반구에 하나씩 일을 나누어 맡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뇌가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다는 기존 견해와 반대된다. 이 실험 결과가 정말로 실제 생활에서도 우리 뇌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는 의미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연구진은 동기가 충분하다면 두 과제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긴 해도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위험 부담이 있다. 휴대전화로 수다를 떠는 것처럼 한쪽 일이 잡생각을 불러일으킨다면, 자동차 운전이라는 나머지 과제에 소홀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긴 해도 혹시 다중 작업이 가능한 뇌가 새로운 세대의 특징은 아닐까? 2000년대 초반의 대학생과 지금의 대학생은 멀티태스킹의 수준이 다르다. 좀 비약을 하자면, 어쩌면 지금 대학생 중에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뇌를 지닌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일찍 멀티태스킹을 접하며 자란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학자들이 생각한 뇌의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전까지 사회가 필요로 한 것은 한 분야에 초점을 맞추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분야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는 분야도 늘어나고 있다. 그것이 대세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시시각각 주의를 사로잡아 산만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대단히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지금 그런 상황에 더 적응한 뇌가 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한음 과학칼럼니스트
저작권자 2010-06-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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