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2020년에 우리 군의 장비가 전투복과 전투헬멧을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바뀔 전망이다.
지난 5일(금)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최경환 지경부 장관은 오전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양부처 고위관계자 및 섬유산업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새로운 국방섬유 개발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우리 군의 장비는 전력우위를 바탕으로 오래전부터 첨단화를 걸었지만 장병들이 입는 군복은 상대적인 낙후성을 면치 못했다. 이를 위해 국방부와 지경부가 나서서 우리 장병들의 전투복을 비롯한 헬멧, 특수복 등에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 미래의 전장환경을 위한 '국방섬유 개선 로드맵'을 세운 것.
이날 양해각서 체결 식에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우리 장병들이 착용하는 피복/장구류에도 첨단기술이 활용될 경우, 전투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최경환 지경부 장관도 “우리 군의 현대화에 필요한 모든 민간 첨단기술이 국방 분야에도 즉시 적용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계획이 실행되면 우리 군인들의 모습은 스텔스섬유(위장), 숨 쉬는 섬유/투습방수(방한복, 전투화), 특수보호 작업복 등으로 무장한 디지털 첨단 전사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고대의 로마군에서 중세의 십자군 그리고 18세기 유럽의 군대에 이르기까지 방어를 위해 화려함으로 무장했던 군복은 화포의 발달로 은폐 및 엄폐 전술이 활용되면서 국방색 등의 위장군복으로 바뀌었다. 또 21세기 정밀 유도 무기가 도입되는 미래의 전장 환경을 위해 첨단 전투복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술적 변화가 군복의 기능을 바꾼다
1815년 6월 18일 지금의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Brussels)’ 남쪽으로 15km 떨어진 워털루 평원에서 나폴레옹의 7만 2,000명의 병력과 영국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동맹군 6만 8,000명이 최후의 일전을 위해 대치했다.
그러나 실상 드넓은 워털루 평원은 폭풍전야의 긴장감과 함께 양 쪽을 합친 14만 명의 군인들이 만들어내는 원색으로 빛났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감청색 상의의 군복을 입고, 영국군은 전통적으로 빨간색 상의의 군복을 입었다. 영국의 동맹군인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은 검정색 상의 군복으로 워털루 벌판은 온갖 화려한 색깔의 군복 물결이 파도치는 패션의 현장과도 비슷했다.
18세기의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사용한 소총은 전장식 활강 소총. 병사들이 총구에 흑색화약과 탄환을 한 발씩 긴 꼬챙이로 밀어 넣어 발사해야 했기 때문에 적에게 자기 자신을 노출시킬 수밖에 없었지만 명중률이 매우 낮아서 병사들의 위치노출은 큰 부담이 아니었으며, 대포 역시 전략용이라기 보단 위협용으로 살상 율이 매우 낮았다. 따라서 화포보단 병력 수로 상대를 압도해야 하는 18세기 군대에서 화려한 군복 색깔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본격적으로 군복의 실용화가 이뤄진 시기는 보어전쟁(Boer War). 탄환을 뒤에서 삽입하는 후장식 소총이 보어전쟁에 등장하면서 전술의 변화는 물론, 복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연발사격의 가능, 명중률의 개선 등으로 전장 상황은 그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군대는 화려한 군복 색깔로 수적 우세를 강조하기 보단 적의 화력으로부터 병사들을 보호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
은폐와 엄폐를 이용한 포복과 기습 공격이 주효한 전략 전술로 등장했고, 영국군은 전통적인 빨간색에서 남아프리카 지형과 일치하는 황토색 이른바 카키색 군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기습공격을 위한 위장 색으로 사용됐다. 세계를 주도하는 군대의 군복은 빠르게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이후 국방색은 다양한 지형지물에 맞게 카키색과 진초록 색깔이 혼용됐다. 현대식 군복 색깔인 위장무늬는 자동화기의 등장으로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부터 착용됐다.
2차 대전 초에 이탈리아 군대는 수풀 속에 섞여서 자신을 가릴 수 있는 위장무늬를 군복 색깔로 채택했다. 이어 독일군이 모방, 유럽전선에서 큰 성과를 내자 미국과 소련이 이를 도입했고, 최근까지도 전 세계 군대에서 모방 채택했다. 우리나라 군인들은 1990년 개정된 얼룩무늬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신체를 직접적으로 보호하고, 오감을 만족시킬 만한 전투복은 오랫동안 나오지 못했다.
첨단 전투복 재료, 무쇠인가, 깃털인가?
21세기 들어 전쟁의 개념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래의 전쟁은 최첨단 무기들이 판을 치는 전장 환경이 펼쳐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적이 나를 알아볼 수 없는 ‘스텔스(Stealth)’ 기능, 산, 바다, 혹은 지하 깊숙이 숨어있는 적이라도 추적할 수 있는 레이더 기능, 적에게 정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레이저 유도 무기의 등장으로 인해 과거의 위장복은 새롭게 전개되는 전장 환경에서 임무 수행은커녕, 생존조차 어렵게 만든다는 것.
또 전투복의 경우, 기후, 질병, 탄환 및, 파편에 의한 관통, 화학적, 생물학적 공격, 핵폭발에 의한 방사능, 화염, 음향, 충격 등에 의한 위험으로부터 완전한 방호와 혹독한 전장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병사들을 보호할뿐더러 자유로운 활동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는 미래의 군복이 전장에선 무쇠와 같은 단단함과 일상에선 솜털과 같은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춰야 하는 딜레마를 해결하고, 아울러 위생적인 측면과 보온적인 차원에서, 발한 시 투습이나 발수 등으로부터 피복의 재료와 재질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함을 의미한다.
미래의 전장이 새로운 전투복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소재의 혁명을 통한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 기술적 난제에 도전하고 있다.
일례로, 2004년 3월초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위치한 MIT 공과대학의 연구진은 ‘자기 유동학적 유체(magnetorheological fluids)’란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학교 ‘개리트 매킨리(Gareth H. Mckinley)’ 박사는 “자기 유동학적 유체란? 인체에 흐르는 혈액 세포보다 작고, 나노 입자 크기의 철 입자 사이에 채워지는 오일과 같은 유체”라고 설명했다.
이 오일은 철 나노 입자들 사이에서 이동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강도를 가진다. 반면에 일단 이들 유체에 자기장이 걸리게 되면, 이 유체의 성질이 변한다는 것. 자기장이 걸리면, 미세한 철 입자들은 자기장의 방향으로 배열하고, 각각의 윗부분에 수북이 쌓여 강도를 갖게 된다.
이렇게 쌓인 입자들은 약간의 강도를 갖는 고체의 성질로 바뀌게 된다. 아울러 자기장을 제거했을 경우, 고체는 다시 액체의 상체로 복원된다. 특히, 이런 변화가 약 0.001초의 주기로 일어나기 때문에 이는 미군을 위한 전투복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다는 것이 연구진의 판단.
맥킨리 교수는 “우리는 자기장을 계속해서 유지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멸시킬 수 있다”며 “이 소재는 유체의 상태로부터 고체 상태로 변환될 수 있으며, 이는 역 방향으로, 또는 정 방향으로 변환될 수 있는 가역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 직물을 자기 유동학적 유체에 담갔을 경우, 자기장의 강도에 따라 최대 경도가 최대 50배까지 변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스마트 의류의 개발은 나노과학을 발판으로 빠르게 종래의 전투복을 대체해 나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전장에서 활동할 병사들은 단순한 옷이 아닌 최첨단 과학기술을 입고 싸우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조행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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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0-03-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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