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 전체 서열 비교분석으로 진화연구의 새 창이 열렸다.
16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에 따르면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박영훈) 바이오시스템연구본부의 김지현 박사팀 주도로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의 렌스키(Richard E. Lenski) 교수, 프랑스 조셉푸리에대학교의 슈나이더(Dominique Schneider) 교수의 공동연구로 이 같은 연구결과를 얻었다. 이는 4만 세대 동안 실험실에서 진화된 생명체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비교분석하여 생명체 진화 과정을 추적하였을 뿐 아니라 환경적응도와의 상관관계를 규명한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저널인 ‘네이처(Nature)'지 10월 18일자(한국시각 10월 19일 02시) 온라인판에 발표됐다.
생명체의 진화는 그 과정을 직접 관찰하는 게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빠른 속도로 증식하는 미생물인 대장균(Escherichia coli)을 사용하면 여러 세대에 거쳐 일어나는 진화 과정의 실시간 추적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동결보존해둔 조상 균주와 후손 균주의 직접적인 경쟁을 통해 동일한 환경에 대한 적응도를 정량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유전체 변이 양상…수만 세대 추적
4만 세대까지 배양한 대장균을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는 렌스키 연구팀과 슈나이더 교수팀이 공동으로 장기간 배양에 의한 진화 실험과 세대별 적응도(fitness) 분석을 수행했다. 김지현 박사팀은 대용량 유전체 염기서열 해독을 통한 돌연변이 서열의 분석 연구를 담당했다. 교과부에 따르면 진화 과정 중에 있는 생명체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고정밀도로 해독하여 약 20년에 걸친 장기간의 진화실험에 따른 유전체 변이의 양상을 수만 세대 동안이나 추적한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다.
이번 연구로 환경 조건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조건이라 하더라도 유전체의 변이 속도와 적응도 간의 관계는 일정하지 않음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단백질로 만들어지는 부위에 발생한 돌연변이는 모두 아미노산 서열이 바뀌는 종류의 것이고, 대부분의 돌연변이가 개체에 유익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2천, 5천, 1만, 1만5천, 2만, 및 4만 세대 째의 클론을 분리하여 차세대 염기서열 해독 기법인 님블젠(NimbleGen)과 일루미나(Illumina) 방법을 이용, 기반 균주인 REL606의 유전체 서열과 비교하여 염기서열 상에 발생한 차이를 확인했다.
4만 세대에서 돌연변이 발생 폭증
그 결과 2만 세대까지 시간에 비례하여 돌연변이 수가 일정하게 증가하였으나, 환경에 대한 적응도는 진화초기인 약 2천 세대까지만 기반균주의 1.5배 수준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가 이후에는 증가폭이 점차 감소하면서 2만 세대에서는 추가적으로 0.34배 정도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4만 세대에서는 돌연변이의 발생이 폭증했다.(전체 유전체의 약 1.2%가 결손) 이는 25,600 세대 경에 특정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염기서열 복제의 오류가 정상세포보다 크게 증대된 데에 기인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김지현 박사는 “10년 가까이 중점적으로 진행해 온 연구가 다윈 탄생 200주년 및 <종의 기원> 출판 150주년이 되는 올해를 맞아 생명체의 진화 메커니즘을 밝히려는 노력에 기여하게 됨을 뜻 깊게 생각한다”면서 “진화 개념을 응용하면 산업적으로 바이오합성 균주의 시스템 최적화 등을 도모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미생물유전체프론티어 사업단장으로서 이번 연구 성과의 공동저자이기도 한 오태광 박사는 “미생물 및 유전체 이용 기술은 바이오 경제를 이끌어갈 주역”이라면서 “이번 연구는 생명현상에 근본적인 안정성을 예측하는 수만 세대 이후 유전 진화현상을 근본적으로 밝힌 기초적인 연구 성과이지만, 이런 현상을 이용하면 획기적인 생산 방법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용어설명 ▶ 대장균(Escherichia coli) :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학명이 붙여진 세균으로서 항온동물의 대장에서 정상 균총을 이루는 미생물 중 하나로 대부분은 무해할 뿐만 아니라 비타민 K를 생산하고 병원균이 정착하는 것을 막아서 기주에 유익하기도 하지만, 개중에는 O157:H7과 같이 식중독을 일으키는 병원성 균주와 이질균(Shigella)도 있음. 대장균은 키우기 쉽고 다루기가 용이하여 인류가 가장 많이 연구하고 활용해온 모델 생명체 중에 하나로서 K-12나 B와 같은 균주들은 미생물학, 분자생물학, 분자유전학적 연구뿐만 아니라 세포공장으로써 각종 재조합 단백질이나 유용물질 등을 생산하기 위해 생명공학에 널리 이용되고 있음. BL21(DE3)와 REL606 균주는 B 계열의 대장균으로서, BL21(DE3)는 의약용 또는 산업용 재조합 단백질을 대량으로 발현하는 단백질공장(protein factory)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고 REL606는 조건 환경에서의 유전체 진화 양상과 표현형으로 나타나는 환경 적응과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이용돼 왔음. ▶ 실험진화(experimental evolution) : 생물체를 실험실 조건에서 여러 세대 동안 유지하면서 진화의 가설과 이론을 검정하는 연구 기법으로 1893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의 Harry L. Russel이 세대수가 짧은 미생물을 제어 가능한 환경에서 장기간 계대배양하면서 진화의 실제를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이 최초임. 대장균과 같은 세균을 사용하면 오랜 세대에 거쳐 일어나는 진화 과정의 실시간 추적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동결보존해둔 조상 균주와 후손 균주의 직접적인 경쟁을 통해 동일한 환경에 대한 적응도를 정량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가능함. 1980년대에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의 Richard E. Lenski 교수가 저농도의 포도당을 함유한 최소 배지에 대장균을 매일 계대배양하면서 시간에 따른 적응도 변화와 집단 간의 평행적 진화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을 필두로 하여 진화 연구의 주요 연구 기법으로 확립되었으며, 최근에는 대용량 시퀀싱 및 오믹스(omics) 분석 기법과 접목되어 유전체 수준의 분자 진화 기작을 해명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 ▶ 적응도(fitness) : 특정 유전자형을 지닌 개체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정도로서, 일반적으로는 성공적인 생식을 거쳐 다음 세대에서 그 유전자를 갖게 되는 개체의 비율로써 표현함. 유전자는 환경과 직접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노출되는 표현형의 형태로 반영되며, 자연 선택의 과정을 거쳐 주어진 환경에 대한 적응도가 가장 높은 개체가 생존하게 되고 따라서 해당 유전자의 빈도는 다음 세대에 더욱 높아지게 됨. |
- 김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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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9-10-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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