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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조행만 기자
2009-09-15

빗발치는 총탄세례...그러나 숨을 곳은? 창과 방패의 질긴 숙명 그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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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화) 육군군수사령부가 주최한 ‘전쟁지속능력 확충 콘퍼런스’의 사전 행사로 사령부 대강당 앞에서 열린 방탄복 전시회에는 방탄능력을 확충한 신형 방탄복들이 전시돼 참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전시된 신형 방탄복들은 적의 화력으로부터 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방탄장비가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탄장비들은 역사상 전개된 수많은 전쟁에서 얻은 피의 교훈과 첨단 공학기술이 흘린 땀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방탄복의 개발 역사는 전쟁으로 얼룩진 인류의 지난한 역사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총의 탄생이 불균형 초래

창과 칼로 싸운 고대 시대에는 지금의 방탄복을 방패와 갑옷이 대신했다. 대표적 공격 무기가 창과 칼이라면, 방패와 갑옷은 방어 무기. 이 무기체계는 오랫동안 균형을 유지하면서 발전해왔다. 창과 칼이 강력해지면 방패와 갑옷도 그 창과 칼의 위력에 맞춰서 발전하는 식이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균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바로 총의 탄생이다. 칼과 창으로 대표되는 무기가 총으로 바뀌었지만 이에 맞는 방패의 개발은 이뤄지지 않았다. 병사들이 무거운 갑옷과 방패를 들고 음속 이상의 속도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불균형은 매우 오랫동안 지속됐다. 이는 현대전에서 대량 살상의 비극을 초래하는 원인이 됐다.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북부 해안에 위치한 오마하 해변을 향해 출발한 미군보병들은 매우 운이 없었다. 갑자기 거세진 풍랑, 이로 인한 뱃멀미, 심장을 도려낼 듯한 독일군의 해안포 소리 등으로 병사들의 사기는 바다에 곤두박질쳐졌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윽고 상륙정이 해안에 닿고, 앞문이 열렸지만 그들을 반기는 것은 사방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기관총탄 세례. 그러나 해안 어디에도 몸을 피할 은폐물과 엄폐물은 없었다. 연합군 사령부는 높이 설치된 독일군의 대전차지뢰와 인공암초를 피하기 위해 상륙시점을 썰물로 택했기 때문이다.

드넓은 해안은 깨끗이 정리된 휴양지와도 같았다. 순식간에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병사, 공포로 울부짖는 병사, 쏟아진 창자를 들고 망연자실하게 서있는 병사, 풍랑에 휩쓸려 바다에 빠져죽은 병사들로 오마하 해변은 지옥 그 자체이었다.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당시 오마하 해변의 비극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왜 그들은 맨몸으로 총탄 세례를 맞아야 했을까? 원래는 수륙양용 DD전차가 방패막이가 되어 보병의 전진을 도와주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마하 해변으로 향하던 DD전차들은 기술 부족으로 모두 바다에 스스로 수장되고 말았다. 한 마디로 그들에겐 운이 따르지 않았다. 이 때 미군 상륙부대원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총과 대포가 아니라 몸을 보호할 장비이었다.

금속을 초월하는 ‘케블라’ 섬유

그로부터 약 65년이 흐른 2009년 6월 11일 대테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영국군 지역. 영국군 수색대 다니엘 콜린스 중사도 이날 운이 없었다. 일상적인 수색정찰에 나선 그는 조심조심 전방을 살피면서 앞으로 또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탈레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탕”하는 한 발의 총성이 정적을 깨트렸다. 고요한 공기를 가르고 날아온 한 발의 총탄은 재수 없게도 콜린스 중사의 등 오른쪽 하단에 명중했다. 그는 탈레반 저격수의 대구경 소총에 당한 것이었다. 대구경 저격소총에 정통으로 맞고 살아남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콜린스 중사는 신기하게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살아났다. 총탄이 그의 방탄복을 뚫었지만 그의 몸까지 들어오지 못했던 것. 그는 방탄복 덕택으로 귀중한 생명을 건졌고, 이 사실은 영국 언론에 의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콜린스 중사가 입고 있던 방탄복의 재질이 바로 케블라(Kevlar) 섬유다. 2차 대전 후 급속히 발달한 고분자학의 발달로 1960년대 이후 유리섬유보다 특성이 우수한 탄소섬유가 출현했다. 나일론과 같은 폴리 아라미드계 섬유인 케블라 섬유는 1972년 미국의 듀폰사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강철과 비교했을 때 5배의 강도를 갖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방탄의 원리는 총알의 운동에너지를 없애는 것이다. 총에서 발사된 탄두는 물체에 부딪히면 그 충격에 의해 넓게 퍼져버린다. 즉, 표면적이 크게 증가하는데 납작하게 퍼진 탄두를 여러 개의 그물로 잡아주면, 탄두는 갖고 있던 운동에너지를 잃게 되고 전진을 멈춘다.

인장강도와 탄성이 높은 케블라 섬유는 여러 겹으로 짜여 방탄복의 외부에 옷감으로 씌워진다. 그리고 탄두가 부딪혔을 때, 마치 그물처럼 탄두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 케블라 섬유는 조끼형태의 개인 및 경방탄용 방탄복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케블라 섬유가 탄생하면서 창과 방패의 균형이 어느 정도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케블라 섬유도 완벽한 방탄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총의 발전 속도는 방탄복의 성능을 항상 위협하고 있으며, 케블라를 보완할 재료가 필요해졌다. 현재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방탄복 인터셉터는 케블라의 재질에 강력한 세라믹 판을 덧댄 것이다.

강철 그리고 솜과 같은 ‘탄소나노튜브’

2007년 10월 3일 서울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강연을 한 서울대 물리학과 임지순 교수는 “케블라는 약점이 있는데 비해 탄소나노튜브(CNT)는 가는 선 모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옷감을 만들 수 있고, 인장력이 엄청나 안 끊어진다”며 탄소나노튜브의 미래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탄소나노튜브는 1991년에 일본의 이이지마 교수가 처음 발견했다. 다양한 신소재로 쓰일 이 물질은 방탄복 소재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탄소 6개로 이뤄진 육각형들이 서로 연결되어 관 모양을 이루고 있는 탄소나노튜브는 탄소원자가 3개씩 결합, 벌집모양을 한 평면형 탄소구조. 이러한 구조가 매우 강력한 강도를 만들어낸다.

탄소나노튜브의 강도는 강철의 100배에 달해 거의 끊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기존의 탄소섬유는 1%만 변형되어도 끊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많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방탄복의 재질로 탄소나노튜브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아직은 개발중인 탄소나노튜브를 섬유로 만들 수 있다면 방탄복의 재질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면 창과 방패의 균형은 다시 무너질 수도 있다. 방패가 창의 위력을 능가하는 시대가 오는 것.

아주 먼 옛날, 중국 전국시대의 초나라에 창(矛)과 방패(盾)를 파는 장사꾼이 있었다. 그는 먼저 방패를 보이면서 “세상의 어떤 창도 이 방패를 뚫을 수 없다”며 자랑했다. 그리고 바로 창을 들어 보이며 “이 창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세상의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자 구경꾼 중의 한 사람이 “그러면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었다.

한비자의 고사 성어 ‘모순(矛盾)’ 이야기는 바로 오늘날 무기의 발달을 예견한 우화일 수도 있다. 뚫어야만 하는 창과 뚫릴 수 없는 방패의 숙명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미 국방부 산하 무기연구소의 방 한켠에선 무엇이나 관통하는 총을 연구하고 있다. 또 반대편 연구실에선 절대로 뚫리지 않는 방탄복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행만 기자
chohang2@empal.com
저작권자 2009-09-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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