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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조행만 기자
2009-07-31

마의 13분… 승객들의 운명이 걸린 시간 추락하는 여객기엔 낙하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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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7·8월이면 공항은 사람들로 붐빈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각종 연수, 휴가, 여행 등을 위해 외국으로 떠나려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항공기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S대학 물리학과 김승호(26·가명) 군도 방학을 맞아 인천공항을 찾았다. 목적지는 발리 섬. 학기 동안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던 탓에 김 군의 심신은 많이 지친 상태. “열심히 일한 사람 떠나라!”란 말을 흥얼거리며 탑승시간을 기다리는 김 군의 마음은 벌써 발리 해변에 가 있다.

김 군은 사실 비행기를 처음 타본다. 비행기 내부가 겉보기와 달리 매우 좁다는 사실도 이날 알았다. 옆 자리에 큰 가방을 든 중년의 아저씨가 앉자, 좌석은 더욱 비좁아졌다. “아! 지금부턴 시간과의 싸움이다”고 김 군은 속으로 되뇌며,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 평소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말을 듣는 김 군은 공포추리소설 마니아.

창 밖에 보이는 인천공항의 하늘은 먹구름에 싸인 채,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어두웠다. 잠시 후, 서서히 움직이는 비행기에 속도가 붙더니 약간의 멀미가 느껴졌다. “이것이 에어타임이구나”고 김 군은 생각했다.

900 km/h의 속력으로 나는 비행기지만 내부는 시간이 정지한 듯, 고요만이 흘렀다. 주위 승객들도 대부분 잠이 든 눈치였다. 무료해진 김 군은 발리 해변을 거니는 멋진 비키니 여성들을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중력은 계속 그를 붙잡아 당기고 있었다.

난기류에 휘말린 비행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김 군의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창밖의 기상 상황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먹구름이 비행기를 감싸더니 한가운데선 ‘번쩍 번쩍’ 번개가 치고 “우르릉 쾅!” 하는 천둥소리가 비행기를 당장에라도 날려 버릴 것 같았다. 비행기는 돌풍에 휘말려 추락할 듯 흔들렸다.

창밖의 하늘에는 먹구름이 덮여 있었다. 간간히 번개가 치는 모습은 마치 고도 3만6천 피트에서 난기류에 휘말린 비행기가 나오는 영화‘ 터뷸런스’의 한 장면 같았다. 최첨단 비행기도 자연의 힘 앞에서 무력해지는 법이다.
 
공수부대를 제대한 김 군은 낙하산이라도 있으면 뛰어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낙하산 같은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옆에 있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여객기엔 낙하산이 없나요?”, “여객기엔 낙하산이 없다네!”, “왜 그런가요?”, “나도 모르지!”

우리 몸은 이상변화에 금방 반응한다. 난기류에 휘말린 비행기가 진동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김 군의 귀에 터질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비행기 진동으로 인한 기압차를 제일 빨리 알아차리는 신체부분이 귓속의 고막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번쩍’ 하는 섬광이 스치더니 큰 벼락이 비행기 날개를 때렸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G(중력가속도)가 김 군의 몸을 좌석에 밀어붙이면서 비행기는 급강하했다.

이때, 탑승자는 순식간에 커진 중력가속도(1G는 9.8㎨)를 몸으로 받는다. 자신의 몸무게가 60kg이고 일반적으로 전투기 조종사가 이륙 때 받는 중력이 5G라면 60×5=300kg의 부하가 몸에 걸리게 된다.

이후 ‘G-LOC’이 찾아올 수 있다. 이 현상은 조종사들이 급강하하거나 상승할 때, 급작스런 중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의식 상실을 말한다. 머리에 급격하게 피가 몰리면서 의식이 몽롱해지고 엄청난 무게감에 점차 정신을 잃게 된다.

이때, 비행사복은 중력가속도로부터 신체를 보호한다. 중력이 커지면 조종복 하부에 달린 공기 밸브와 펌프 장비가 반응, 내부에 공기를 채워 머리에서 혈액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체를 조인다. 그러면 하체와 상체의 혈액이 균형을 유지해 정신을 잃지 않게 된다.

정신을 잃을 찰나, 무서운 꿈에서 깼다. 비행기는 발리 공항에 안착해 있었다. 꿈 속에서 김 군은 착륙할 때의 중력을 느꼈던 것일까?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오금이 저려서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했다. 김 군은 탑승대를 내리면서 생각했다. “왜 민간 여객기엔 낙하산이 없는 것일까?”

이륙 5분, 착륙 8분에 사고 몰려

발리 여행 이후, 그날의 공포스런 추억(?)은 물리학도인 김 군에게 항공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도서관에서 각종 항공사고 사례를 조사해본 김 군은 그날 꿈 속에서 느낀 착륙의 공포가 단순한 허상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른바 ‘마의 13’분이란 말이 있다. 항공사고의 대부분이 이륙 시 5분과 착륙 시 8분 사이에 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소방안전본부의 항공기 소방안전 대책(2003년)에 따르면 전 세계 항공사고의 통계결과, 사고발생률은 이륙 후 15분과 착륙 전 26분 사이에서 94%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간대 중 마의 13분대가 가장 위험하다. 사고의 원인은 약 75% 이상이 조종사의 과실이며, 기체결함, 공항시설의 미비, 관제 결함, 기상정보의 미비 등도 사고원인 중의 하나다.

국내 굴지의 D항공사에 e-메일을 보내 항공기 이착륙의 문제점과 이착륙 시 조종사들의 비행기술, 아울러 여객기에 낙하산을 설치하지 않는 이유 등에 대해 물어보았다. 며칠 후, 한 기장으로부터 답신이 왔다.

“착륙은 조종사들에게 가장 힘든 순간이다. 항공기가 가장 무거운 순간은 이륙 직후. 이때, 항공기의 성능은 크게 제한을 받는다. 따라서 이륙 직후에 기체 고장이 일어나기 쉽다.”

물론 기상 악화시의 착륙은 더욱 위험하다.

“착륙 전의 8분도 비행 중에 가장 힘든 순간이다. 착륙할 때의 제트 여객기의 속도는 최소 200km 이상이다. 이 속도에서 어떤 물체와 충돌을 하게 된다면 그 사고의 피해는 상상이 안 간다.”

활주로에 순간적인 돌풍이 불거나 폭우 등의 악기상이 존재할 때 비행기의 자세를 잡기 힘들다. 이런 많은 위험요인으로 인해 조종사들은 각종 사고에 대비한 이착륙 기술을 연마한다는 설명.

기술적 문제보단 경제성 때문에…

하지만 인간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보다 더욱 안전한 대책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도 민항기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것은 기술적인 문제보다 경제성 때문이다.

그동안 민항 여객기에 일인당 낙하산을 배치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하지만 항공사들은 우선, 낙하산이 가볍지 않고 부피가 크기 때문에 달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인 낙하산의 무게는 14.1kg 정도. B-747의 승객수를 약 500명으로 잡는다면 500×14.1kg을 더해야 한다. 약 7톤 이상의 무게를 더 실어야 한다.

낙하산은 차지하는 공간이 커서 부피 문제도 따른다. 가뜩이나 비좁은 기내에서 유사시에 대비, 낙하산을 승객들이 차고 있다면 엄청난 공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도 때문에 있어도 소용없다는 논리다. 미 연방항공청(FAA)에서 권고하는 낙하산 안전 전개고도는 약 3천 피트~1천800피트. 3천 피트는 약 900미터, 1천800피트는 약 550미터 정도다.

즉, 대부분의 항공사고가 이착륙 시에 발생하는데 낙하산 안전 전개고도는 그보다 높다는 주장. 전문가들은 “낙하산은 일정 고도가 확보돼야만 완전히 펴진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추락시, 많은 승객들이 일렬로 뛰어내릴 시간적 여유가 없고, 전문가들이나 할 수 있는 낙하는 초보자들에겐 불가능하단 논리도 있다. 한 개당 약 400~600만원이 드는 비용 문제도 크다.

오늘날 항공기는 초대형화하고 있다. 지난 2005년 1월 18일 첫 취항한 에어버스사의 ‘A380 슈퍼점보’기의 경우, 무려 555명의 승객을 실어 나른다. 이코노미클래스 개조 시에 최대 840명까지 태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항기가 초대형화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여객 수송을 늘리기 위해서다.

만약, 초대형 항공기 제작시, 항공사가 탑승객의 안전을 최우선 관심사로 둔다면 민항기에 전투기처럼 자동으로 펼쳐지는 사출좌석을 둘 수 있지 않을까?

상상력이 풍부한 물리학도 김승호 군은 앞으로 항공기 제작 분야로 진출할 계획이다. 솜털처럼 가벼운 초경량 소재를 개발해 비행기의 무게를 줄이고, 남는 여유분은 사출좌석으로 바꾸어 민항기의 탑승객 안전에 기여할 꿈을 갖고 있다.
조행만 기자
chohang2@empal.com
저작권자 2009-07-3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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