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잘 알려진 상으로는 단연코 노벨상이다. 과학뿐 아니라 경제와 평화,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주어지는 노벨상이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고 가장 잘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노벨상은 공동 수상만 하지 않는다면 수상자에게 상당한 금액의 상금도 거머쥐게 해준다. 그러니 부와 권위를 한꺼번에 얻고 싶다면 노벨상을 노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상금만 따진다면 어떨까? 노벨상보단 덜 알려져 있고 노벨상보다 역사가 짧지만 상금 면에서는 노벨상을 추월하는 상은 없을까? 실제로 그런 상이 있다. 템플턴상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지. 템플턴상은 개인에게 돌아가는 상금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이다.
최근 올해의 템플턴상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지난 3월 16일, 프랑스 파리 대학의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베르나르 데스파냐 교수가 선정됐다고 템플턴상을 주관하는 존 템플턴 재단이 발표했다. 이로써 데스파냐 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상금인 1백만 파운드(약 20억원)을 거머쥐게 됐다.
그런데 템플턴상은 과연 어떤 상인 걸까? 그리고 그 상을 타려면 어떤 성과를 거둬야 할까?
노벨상보다 상금이 많은 이유노벨상이 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에서 이름이 붙여졌듯, 템플턴상 역시 그렇다. 지난해 사망한 미국 태생의 영국인으로 전설적인 금융인이자 사업가 존 템플턴 경이 1972년에 이 상을 만들었다. 매년 한 명의 수상자는 노벨상보다 더 많은 상금을 거머쥔다. 왜 템플턴 경은 노벨상보다 더 많은 상금을 주도록 한 것일까? 노벨상보다 더 유명한 상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을까?
우선 템플턴상에 대해 얘기하자면 한마디로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알려져 있다. 첫 번째 템플턴상 수상자가 마더 테레사 수녀였다. 그리고 템플턴 경이 이 상을 만들 당시에 노벨상에 종교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했다. 그러니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템플턴상은 종교적인 이유로 상을 수여하는 건 아니다. 템플턴 경이 이 상을 제정하면서 ‘정신적 실재’(spiritual reality)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그는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잘 사는 비결이 뭘까? 신은 얼마나 위대할까? 유한한 존재들은 무한함과 어떻게 연관이 있는 걸까? 우주를 창조한 신의 목적은 과연 뭘까? 우리는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시대를 초월한 이런 의문들은 과거에도 그랬듯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준다. 이런 것들은 인간의 영혼을 철학과 학문적 열정으로 이어준다.
What is the best way to live? How large is God? How are finite beings related to the infinite? What was God's purpose in creating the universe? How can we be helpful? These ageless questions can inspire people today just as the have inspired people throughout the ages, linking the human soul to philosophy and to the love of wisdom.”
지난 10년 수상자 절반이 물리학 분야
템플턴 경의 의도대로 템플턴상은 종교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우리의 정신적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한 살아 있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 그것도 노벨상보다 많은 상금을 덧붙여서 말이다.
템플턴 경은 정신적인 차원에서 진보를 이루는 것이 노벨상이 추구하는 수상업적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상이 노벨상보다 상금이 항상 더 많도록 했다.
우리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정신적인 실재를 추구한다는 건 종교계 인사만 하는 게 아니다. 종교뿐 아니라 철학, 과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템플턴 수상자는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배출되고 있다.
실제로 역대수상자를 살펴보면 이 점이 확인된다. 마더 테레사 수녀와 같은 종교계 인사를 비롯해 작가 알렉산더 솔제니친, 물리학자 프리만 다이슨, 철학자 찰스 테일러 등 각 분야 저명 인사들이 수상했다.
무엇보다도 최근의 경향은 올해와 지난해를 포함해 과학이 강세라는 것이다. 특히 물리학자가 대세였다. 올해의 수상자 데스파냐 교수를 포함해 최근 10년간 배출한 10명의 수상자 중 5명이 물리학자이거나 물리학과 연관이 있었다.
1987년 존 템플턴 재단이 세워지면서 종교적인 주제와 관련한 과학 분야를 진흥시키기로 하면서 수상 대상자에 이론물리학, 진화생물학, 인지과학 등 과학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템플턴상은 흔히들 물과 기름으로 여겨지는 과학과 종교 간의 이해를 증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재를 바라보는 데 양자역학은 불완전올해의 수상자인 데스파냐 교수는 양자역학의 개념적 토대를 세운 세계적 권위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양자역학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양자역학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대해서도 탐구했다.
데스파냐의 대표적인 업적은 그가 직접 지어낸 ‘가려진 실재’(veiled reality)라는 용어에 담겨 있다. 그는 양자역학이 우리의 인식 바깥에 존재하는 ‘가려진 실재’에 대해 그저 엿볼 수 있게만 해줄 뿐 완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재단은 "데스파냐는 인간의 정신이 더 깊은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일관된 연구를 해왔다"라면서 "이런 연구로 그는 과학이 실재의 본질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물리학, 그것도 이론물리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라면, 그리고 자신이 세운 이론이 입증되기 어려울 정도로 실험보다 앞서가 있다면, 노벨상을 수상할 거라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노벨상은 실험적으로 입증된 이론에 수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학과 우리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혁신적인 이론물리학자가 되고자 한다면 노벨상 대신 템플턴상을 노려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시상식은 오는 5월 5일 영국 왕실인 런던 버킹엄궁에서 열린다. 데스파냐 교수는 스웨덴 왕실이 아니라 영국 여왕 앞에서 상을 수상한다. 템플턴상은 노벨상과 여러모로 비슷하다는 느낌이 확 와닿는 대목이다.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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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9-03-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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