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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청한 기자
2009-03-04

러너스 하이, 과연 아름다운 중독인가? 달리기 중독의 일등 공신-엔돌핀의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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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킬로미터를 달리는 일은 결코 따분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매우 스릴 넘치는 비일상적이고도 창조적인 행위다. 달리다 보면 평소에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라도, ‘뭔가 특별’해질 수 있다. 설령 짧게 밖에 살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짧은 인생을 어떻게든 완전히 집중해서 살기 위해 달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라는 소설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하루키 일상의 여백」에 나오는 말이다. 매일 10Km씩 뛴다는 열렬한 달리기 매니아로도 유명한 하루키는 최근, 아예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내고 달리기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직후 한 인터뷰에서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달리다 보면 평소에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라도, 뭔가 특별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또 다른 이야기. ‘달리기’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불의 전차, 말아톤 그리고 포레스트 검프가 그것이다. 어딘가 모자란 데다가 다리까지 불편한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친구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을 극복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해 마침내 미 대륙횡단까지 나선다.

'Run Forest Run'이라는 배경 음악에 맞춰 다리에 걸쳐진 보조기구를 극복(!)하고 뛰쳐나가는 포레스트 검프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많은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말아톤의 형진이는 ‘달리기’로써 세상과 소통하고, 불의 전차에서 달리기는 신과 통하는 기도의 다른 이름이다.

30분 가량 달리면 쾌감을 느껴

달리기에 중독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좋은 콜레스트롤(HDL) 및 남성호르몬인 테스토르테론(testos terone)의 증가, 어려운 일을 성취했을 때의 쾌감과 성취욕, 스트레스 해소 등 사람들이 달리는 이유야 셀 수도 없이 많지만 달리기 매니아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있다. 이른바 ‘아름다운 중독’이라고도 불리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다.

러너스 하이는 미 캘리포니아대 심리학자인 아놀드 J 맨델(Arnold J Mandell)이 1979년 발표한 정신과학 논문 ‘세컨드 윈드(second Wind)’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다. 달리기를 시작한 뒤 30분 정도가 지나면 상쾌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을 말하며, 흡사 마약을 투약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다.

맨델은 러너스 하이에 대해 “30분 가량 계속 달리면 기분이 좋아지고 팔다리가 가벼워지면서 리듬감이 생긴다. 그리고 나서 곧 피로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고 표현했다.

러너스 하이는 그 중독성과 쾌감으로 종종 오르가즘에 비유되기도 하며, 꼭 달리기가 아니더라도 수영, 축구, 럭비 등 장기간 지속되는 운동이라면 언제든지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러너스 하이가 일어나는 이유

그렇다면 이런 러너스 하이는 왜 일어나는 걸까? 사실 만장일치로 러너스 하이의 주요 이유로 결정된 것은 아직 없다.

일부 학자는 중추신경계의 화학적 전달물질인 오피오이드 펩티드(Opioid Peptide)를 그 이유로 든다. 아편과 같은 중독성 화학물질인 오피오이드 펩티드는 모르핀 진정작용을 보이는 펩티드의 총칭으로 중추 및 말초신경에 작용해 잠을 유도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운동을 하면 이 오피오이드 펩티드가 분출된다고 한다.

장거리 달리기가 우울증을 줄이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사람은 대뇌에서 생성되는 모노아민 중 우울증과 관련 있는 화학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이 결핍되면 우울증을 느낀다고 한다. 운동을 오래하면 노르에피네프린 분비가 증가하면서 우울증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피오이드 펩티드나 노르에피네프린 등 어려운 전문용어보다 익숙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러너스 하이의 용의자가 있다. 일명 ‘웃음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엔돌핀(endorphin)이 그것이다.

뮌헨공과대학(TUM) 핵의학 헤닝 뵈커(Henning Boecker) 교수팀은 10명의 육상선수를 대상으로 2시간의 장거리 달리기 전후에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으로 뇌를 조사한 결과 운동 중 생성되는 엔돌핀의 존재를 처음으로 증명하기도 했다.

좋은 호르몬? 엔돌핀의 두 얼굴

기분을 좋게 하기 때문에 ‘좋은’ 호르몬의 대명사격으로 불리는 엔돌핀은 그러나 게임, 쇼핑, 도박 등 대부분의 중독 현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엔돌핀은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호르몬이 아니라 고통을 받을 때 나오는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최대로 분비될 시 마약성 진통제의 무려 100배 가량 강력한 진통효과를 가져오는 엔돌핀은 고통을 잊기 위해 분비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엔돌핀이 나오는 상황이 그 주체에게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차에 치인 피해자가 벌떡 일어나 걸어가다가 쓰러지는 경우가 이에 속하는 가장 단적인 예이다.

이러한 엔돌핀이 주는 쾌감에 중독되면 몸의 피로가 많이 쌓여 있다거나, 무릎 혹은 발목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이때 분비되는 엔돌핀은 신체가 고통을 잊고 오랫동안 달리기 위해서이지,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러너스 하이는 자동차나 지하철이 인간의 발을 대신하기 훨씬 전부터, 사냥이나 도주 등 급박한 상황에서 우리 몸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진통제인 것이다.

3월이 시작되면서 두꺼운 겨울 옷을 벗고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건강 증진, 체력 향상, 다이어트 등 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하나만은 공통적으로 알아두자. 무엇이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을.
김청한 기자
chkim@kofac.or.kr
저작권자 2009-03-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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