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문명의 여러 수수께끼 중에는 하늘을 닮은 마야인의 쪽빛이 있다. 마야인의 쪽빛은 벽화, 도자기, 조각, 건물 기둥, 코덱스라고 불리는 기록, 의식에 사용된 옷 등 각종 유물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 쪽빛은 ‘마야블루’로 불리는데, 언제부터 마야인이 이를 사용했는지는 고고학자들 간에 일치된 의견이 없지만, 대략 300년에서 500년경으로 추정된다.
마야블루가 불가사의한 이유는 현대 과학자들조차 놀랄 정도로 오랫동안 유지되기 때문이다. 중앙아메리카의 축축한 습기와 후덥지근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어떤 유물의 경우 마야블루는 천년이 넘는 세월을 이겨내기도 했다. 마야블루는 습기는 물론 산화와 부식, 산성과 염기성에도 강하다. 농도가 진한 질산액을 쏟아 부어도 색이 변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현대 과학자들은 첨단장비를 동원해 마야블루에 숨은 비밀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고고학자뿐 아니라 화학자와 재료과학자가 마야블루에 감추어진 놀라운 비법을 밝혀내고 있다. 고대 마야인으로부터 뛰어난 염료 기술을 얻기 위해서다.
처음으로 마야블루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는 하버드대 고고학자 H. E. 머윈 박사였다. 1931년 머윈 박사는 유카탄 반도에 위치한 마야문명의 대유적지인 치첸이차에 있는 ‘전사의 신전’ 벽화에 칠해진 마야블루를 처음으로 연구했다. 머윈 박사를 비롯해 초기 연구자들은 마야블루가 구리 같은 금속이나 청금석과 같은 광물로 만들어진 무기염료라고 추측했다. 동식물로 만들어진 유기염료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색이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야 마야블루의 성분이 밝혀졌다. 초기 과학자들의 추측과 달리 마야블루는 식물로 만들어진 인디고라는 유기염료이었다. 인디고와 함께 팔리고스카이트라는 하얀 광물 점토가 마야블루의 주재료인 것으로 밝혀졌다.
팔리고스카이트는 마야어로 ‘하얀 흙’을 뜻하는 물질로, 기록에 따르면 고대 마야인이 약물로 사용했다. 상처가 났을 때 그 부위에 섬유를 대고 그 위에 팔리고스카이트를 발랐고, 입안에 상처가 있을 때에는 팔리고스카이트를 먹거나 삼켰다고 한다. 실제로 팔리고스카이트는 위장이나 소화기관에 있는 산성물질과 독성물질을 결합해주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설사약으로 최근까지도 사용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 마야블루가 견고한 까닭이 팔리고스카이트에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와 함께 놀랍게도 마야블루가 나노구조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조세-야카만은 마야블루에서 철, 마그네슘, 티타늄, 망간, 규소 등의 불순물들이 나노입자를 이룬다는 점도 발견했다. 이전 연구에서는 이들 불순물이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푸른색과 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순물이 나노입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금의 경우, 보통은 우리가 알고 있는 황금색을 띠지만 나노수준에서는 크기에 따라 빨간색에서 파란색까지 여러 색을 나타낸다. 또한 나노입자로 된 물질은 자동차에 코팅을 할 경우 긁힘과 같은 외부 충격에 매우 강해진다. 조세-야카만은 나노입자 크기의 불순물이 마야블루의 푸른색을 더욱 빛나게 해줄 뿐 아니라 오래 유지되도록 해준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고대 마야인은 어떻게 이런 나노구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하면 인디고가 팔리코스카이트의 결정 내부로 삽입되는 것일까? 단지 인디고와 팔리고스카이트를 섞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1980년대 인디고와 팔리고스카이트에 열을 가하면 마야블루가 만들어진다는 연구가 등장했다. 일부 과학자는 열을 가해 마야블루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연구에 따르면 마야블루를 만드는데 두가지 핵심적인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첫 번째는 온도다. 300-400℃의 높은 온도가 아니라 100-150℃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인디고가 팔리고스카이트의 결정 내부로 삽입되었다. 두번째 조건은 인디고의 양으로 2003년에 밝혀졌다. 0.5-2%의 적은 양의 인디고만 필요하다.
이처럼 마야블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실험적으로 상당히 밝혀진 상황이다. 여전히 화학자와 재료과학자는 마야블루의 분자구조에 대해 연구 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한편 마야블루에 대한 고고학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연구도 진행되었다. 고대 마야문명에서 마야블루는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지, 어떤 이유에서 만들어졌는지, 무슨 용도로 사용되었는지가 고고학적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올 2월 이에 대한 놀라운 연구가 발표되어 화제를 모았다. 마야블루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이었다.
16세기에 신대륙으로 건너온 스페인의 란다 주교는 유카탄 반도에 남아있던 마야문명의 책들을 수집해 닥치는 대로 불살라버렸다. 그런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야문명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에 따르면, 고대 마야인은 파란색을 칠한 재단에 제물로 바치는 인간을 벌거벗은 상태로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그 제물에도 파란색을 칠한 다음 뛰고 있는 심장을 도려냈다고 한다.
그동안 고고학자들은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파란색이 마야블루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단지 추측일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위튼대 고고학자인 딘 아놀드 교수가 이 이야기와 마야블루를 잇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 추측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2005년 아놀드 교수는 인디고와 팔리고스카이트에 100-150℃로 열을 가하는데 코펄이라는 끈적끈적한 나무액이 사용됐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코펄의 녹는점이 150℃이기 때문이다. 코펄은 고대 마야문명에서 여러 의식에서 향으로 사용되었다. 아놀드 교수는 의식 중에 향으로 쓰인 코펄과 함께 마야블루가 제조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런 그에게 미국 시카고 자연사박물관은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사발 하나를 주었다. 이 사발은 1904년 미국인 탐험가 에드워드 톰슨이 치첸이차에 있는 거대한 우물인 ‘신성한 세노테’에서 발굴한 것이었다.
치첸이차는 유카탄 반도 최대 휴양지인 칸쿤에서 서쪽으로 200km 떨어져있어 휴가를 보내는 관광객이 많이 들린다. 이곳에 있는 신성한 세노테는 지름이 60m, 낭떠러지 길이가 35m나 되는 거대한 우물이다. 신성한 세노테의 물을 내려다보면 아찔함이 느껴질 정도다. 이 우물에서 비의 신에게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 행해졌다.
탐험가 톰슨은 이 우물에서 챠크에게 바쳐진 금은으로 된 귀한 보물과 도자기 등 각종 유물과 함께 127명의 유해를 끌어올렸다. 이 발굴과정에서 톰슨은 우물 바닥에 두께가 4m 이상인 침전물이 파란색을 띠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해서 아놀드 교수는 마야블루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에서 만들어졌고 그 의식에서 사용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아놀드 교수는 첨단과학을 이용해 마야블루에 대한 비밀을 밝혀낸 것이었다. 그의 논문은 Antiquity 3월호에 게재되었다.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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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8-03-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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