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콜럼버스의 유해는 그가 오랜 항해 끝에 처음 상륙한 서인도제도의 현 도미니카 공화국에 묻혀 있는지, 아니면 항해의 출발국인 스페인의 세빌(Seville)에 묻혀 있는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디스커버리(Discovery)지 최신호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대학 조사팀은 현재 이 대학 도서관에 보관 중인 콜럼버스의 일부 유해가 진짜인지를 가리기 위해 DNA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파비아대학이 보관 중인 유해는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 산토 도밍고의 주교가 지난 1880년 일부 기증한 것으로, 콜럼버스의 유해로 확인된다면 도미니카 공화국 내 십자가 모양의 등대 아래 묻혀 있다는 유해가 진짜임을 입증하게 된다. 파비아대학은 콜럼버스가 공부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이와는 별도로 스페인 그라나다(Granada)대학 연구팀은 지난해 여름 세빌의 산타마리아 성당에 묻혔있다는 콜럼버스의 유해를 발굴해 현재 DNA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라나다대학 연구팀은 신원이 정확하게 밝혀진 콜럼버스의 아들 에르난도의 유해와 콜럼버스의 유해를 DNA 분석을 통해 일치하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디스커버리는 콜럼버스의 유해가 살아있을 때만큼이나 긴 항해를 거쳤다고 전했다.
디스커버리에 따르면 콜럼버스는 1506년 5월 20일 스페인 북부 발라돌리드(Valladolid)에서 사망할 때 유해를 도미니카공화국으로 옮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해는 발라돌리드에 3년 동안 묻혔다가 일단 세빌로 옮겨졌다. 유언대로 도미니카공화국으로 옮겨진 것은 약 30년 뒤인 1537년의 일이다.
혼란은 260여 년이 흐른 1795년, 프랑스가 스페인 대신 도미니카공화국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면서 시작했다. 스페인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철수하면서 콜럼버스의 유해를 쿠바의 아바나로 이전했다. 스페인은 다시 1898년 쿠바에서 물러나면서 유해를 세빌로 옮겨 산타마리아 성당 아래 묻었다.
그러나 1877년 산타도밍고에서 '크리스도발 콜론(Cristobal Colon) 경'이라고 새겨진 상자와 함께 뼈 조각이 발견되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도미니카인들은 1795년 스페인이 유해를 옮길 때 근처에 묻혀 있던 그의 아들 디에고의 유해를 잘못 가져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편 DNA 검사는 유골이 묻힌 정확한 위치와 함께 콜럼버스가 이탈리아 사람인지, 아니면 스페인 사람인지에 대한 논란도 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콜럼버스는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제노바의 상인 출신인 도메니코 콜롬보의 아들로 알려져 있으나, 스페인 비아나 왕자의 사생아라는 설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DNA 분석은 동시에 콜롬버스가 교황 이노센트 8세의 아들일지 모른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일정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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