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6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 MBC 역사 대하드라마 ‘주몽’은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40%대의 시청률, 90억 원이 든 세트건립 비용, 4천500여 벌의 의상 등 많은 기록을 남긴 주몽의 인기 요소 중의 하나에 철기군이 있다.
한나라의 막강한 철기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부여군이 강철 검과 철갑옷을 개발, 무장함으로써 한나라 군을 물리치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감동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인류의 역사 이래로 철은 그 나라의 부강함을 상징했다. 철기의 사용은 낫의 개발로 농업을 발달시켰고 철로 만든 무기는 전투력을 향상시켰다. 기원전 1500년경, 지금의 이라크 북부 티그리스 강 유역의 평야에 정착했던 농업국가 아시리아는 철기가 보급되면서 페르시아 만에서부터 지중해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 강력한 철에도 한 가지 결정적인 약점이 있는데 바로 부식, 즉 녹(rust)이 스는 것이다. 부식 전문가들은 “금속에 녹이 스는 현상은 자연계에서 온 금속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녹스는 현상은 문명발달의 장애물임에 틀림없었다.
따라서 철기군으로 무장한 정복국가 아시리아는 일찍이 주석도금을 발달시켜 무기를 만든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철기문명이 발전하면서 덩달아 발전한 것이 금속의 표면에 녹이 잘 슬지 않는 다른 금속피막을 입히는 야금술이고 지금의 도금기술이다. 그러나 부식방지기술은 또 하나의 문제를 낳았는데 그것은 바로 중금속 오염이다.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중금속의 피해
과거에 도금은 무기나 도구의 녹을 방지하기 위해 쓰였다. 그러나 지금에는 도금의 용도가 많이 달라졌다. 녹 방지는 물론, 광택을 통해 가치를 높이기 위한 도금이 성행하고 있다. 최근에 출시되는 자동차의 세련된 디자인에는 도금이 큰 역할을 한다.
니켈과 크롬의 합금으로 미려한 광택을 낸 자동차가 주류를 이루고 플라스틱 도금의 발달로 근래에 탄생한 첨단 휴대폰의 몸체는 매끄러운 표면을 자랑하게 됐다. 더불어서 도금에 쓰이는 금속의 종류도 늘어났다.
이러한 도금에 사용되는 물질들이 대부분 중금속(Heavymetal)이다. 약 65개 정도의 금속원소들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중금속은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각종 도구의 생산에 사용되는 중요한 물질이다.
그러나 인체에 독성을 갖는 중금속은 그대로 자연계로 방출될 경우,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뿐만 아니라 자연정화로 걸러지지 않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환경규제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연합(EU)에선 이들 가운데 쓰임새가 많고 독성이 문제가 되는 중금속을 선별, 6대 유해물질로 규정,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EU가 정한 6대 유해물질은 납(Pb), 카드뮴(Cd), 6가크롬(Cr+6), 수은, PBB·PBDE(브롬화 난연제) 등이다. 이 유해물질 모두가 표면처리에 이용되고 있다.
납(Pb)의 경우, 내식성(부식방지 능력)이 우수해 수도용 납관, 각종 케이블 피복, 화학 장치의 라이닝, 축전지 등에 폭넓게 쓰인다. 또 주석, 안티몬 등과 어울려 각종 납합금도금에도 이용된다. 그러나 납중독에 걸리면 빈혈이나 손발 떨림, 심하면 환각이나 흥분 등의 증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드뮴(Cd) 역시 스프링 도금에 많이 쓰인다. 특히, 해수와 같은 염수에 강해 합성수지 안정제, 물감, 텔레비전 형광판 등에 두루 쓰이는데 카드뮴 중독은 불쾌감, 구토, 설사 등을 비롯해 칼슘이 녹아 사지가 뒤틀어지는 ‘이다 이다이병’을 일으킨다.
크롬(Chromium)은 철 제품의 강도를 높여주고 또 표면에 엷게 입히면 미려한 광택을 내기 때문에 니켈과의 합금으로 거의 안 들어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그 용도가 폭넓다. 특히, 자동차 부품, 휴대폰 부품에 없어선 안 될 금속이다. 그러나 크롬이 6가크롬(Cr6+)로 존재할 경우, 강력한 산화성과 함께 인체에 해를 끼친다.
특히, 자동차 조립시에 발생하는 6가크롬 분진은 피부, 기관, 폐 등에 염증과 궤양을 일으키고 심하면 폐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코의 가운데 뼈인 연골에 구멍이 뚫리는 비중격천공은 우리나라의 크롬 작업장에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브롬(Brom)은 비금속 원소인 할로겐족 원소의 하나로 유독성을 이용한 살균제, 산화제, 의약품, 사진 재료, 각종 브롬화제 등에 사용된다. PBDEs(polybromodipheny ethers)와 PBBs(polybrominated biphenyls) 등은 브롬화 난연제로 이 물질 역시 인체에 유해하다.
EU, 오는 6월 1일부로 REACH 시행
지진,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나 핵폭탄 등이 순식간에 인류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중금속과 같은 환경오염은 서서히 인류의 생명을 갉아먹는 재앙으로 다가온다. 환경에 배출된 중금속은 분해나 자정작용을 받지 않고 생물권을 순환하면서 먹이연쇄를 따라서 사람에까지 전파된다.
이러한 중금속의 폐해로부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전 세계는 다양한 국제적 환경규정을 만들고 있다. 그 중 가장 앞선 나라가 유럽연합(EU)이다. 오는 6월 1일에 EU는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를 전격 가동할 예정이다.
REACH(Registration, Evaluation and Authorization of Chemicals)란? EU 역내에 제조·수입되는 연간 1톤 이상의 화학물질의 제조· 수입자에게 물질속성, 용도, 안전한 취급방법 등을 등록할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이는 그동안의 국제 환경규제 중 기업에 가하는 가장 강력한 법규로 향후 EU 화학물질관리청에 등록되지 않은 물질은 EU 역내시장에서 판매가 불가능해진다.
이외에도 EU는 지난해 7월 납(Pb), 카드뮴(Cd), 6가크롬(Cr+6) 등 6개 유해물질을 함유한 제품의 반입을 금지한 ‘유해물질 사용제한 지침(RoHS)’을 시행해오고 있다. 모 휴대폰 업체 부품 관계자는 “앞으로 휴대폰을 EU로 수출할 경우, 카드뮴은 100ppm, 납, 6가크롬, PBB, PBDE 등은 1000ppm이 포함되면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전기·전자제품 폐기물처리지침(WEEE)’은 주요 전자제품별로 회수, 재사용 및 재활용 비율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는 제품만을 판매토록 하며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친환경설계의무지침(EuP)’은 제조업자들이 전기전자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을 가능한 한 환경 친화적으로 설계하고, 이를 통해 CE마크를 획득하도록 규정하는 제도로 올해 3월부터 시행됐다.
또 올해 7월 1월부터 EU 내에서 판매되는 교류 1천V, 직류 1천5백V를 사용하는 거의 모든 가전제품의 리사이클링 비율과 무료 수거 의무를 준수해야 하는 ‘폐전기/전자제품처리지침(WEEE)’, EU 역내 자동차 제조업체와 판매업체에 폐차의 무료수거, 재사용, 재활용, 재생을 준수토록 의무화하는‘폐차처리지침(ELV)’도 있다.
중국도 이 흐름에 활발히 동참하고 있다. 올 3월 가동된 ‘China RoHS’는 1천400여 종에 달하는 전자정보제품(부품 포함)의 환경성 및 유해성을 규제하는 포괄적 규정으로 중국에서 시행되는 환경규정이다.
이러한 제도들은 해당 수출기업에 큰 파장을 가져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자동차가 수출산업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유럽 시장은 놓칠 수 없는 지역이다. 국내 자동차 관련 산업체 현황을 살펴보면 완성차 4업체 및 자동차 부품ㆍ소재만 5천여 업체나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 하청기업들의 대응태세는 미비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산업성장이 단기적으로 영향을 받지만 장기적으로 새로운 환경 친화적 산업구조로 재편될 것”이라며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다.
중금속은 현대문명을 아름답게 덧씌웠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유해성은 양날의 칼과 같다. 과학기술계가 광택은 더욱 세련되고 인체에는 유해하지 않은 중금속을 개발할 수는 없을까?
- 조행만 객원기자
- chohang2@empal.com
- 저작권자 2007-05-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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