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고려청자의 비취색, 그 신비한 매력 속으로 비밀은 산화철의 철 이온에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전래동화 속에 등장하는 금은보화들은 우리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든다.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런 금빛과 은빛은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에게는 금빛 은빛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또다른 귀한 빛이 있었다.

고려청자의 색, 이름하야 비취색이다. 금빛 은빛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함과 우아함을 담은 비취색 자기에는 고려시대의 이규보도 넋을 잃고 말았다. 청자 인형연적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규보의 감탄을 들어볼까?



어른거림은 푸른 옥의 빛이요

영롱함은 수정의 모습이라.

치밀한 옥은 살결과 같아

손을 대면 옥 살갗을 만지는 것과 같다.


고려시대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고려청자’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유물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청자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조공무역 등을 통해서 중국의 자기와 유약이 들어왔다. 그리고 9세기 후반부터 전라도 강진과 부안을 비롯한 서남 해안지역에서 청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중국의 것을 배우기에 바빴고 이런 식의 모방이 11세기 전반까지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12세기부터는 고려청자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왜 고려의 청자가 원조인 중국청자보다 더 유명해진 것일까? 그것은 고려청자만이 가지고 있는 비취색 영롱한 빛깔 때문이었다. 중국으로부터 받은 기술에 독창적인 변화를 준 것이 크게 성공한 것이다.


옛날부터 동양 사람들은 옥을 가장 신비스러운 보석으로 생각했다. 박물관에 가면 옥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나라 사람들이 옥을 좋아하고 귀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청자도 어떻게 하면 옥색을 띄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였던 것이리라. 중국 사람들은 10세기에 이르러 옥색에 가까운 색을 만들어 비색(秘色)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고려의 청자를 본 순간, 이것이야말로 진짜 옥색이라고 생각하여 비색(翡色)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고려자기에는 황록색, 황갈색의 자기도 있었지만 비색의 청자가 가장 뛰어났기 때문에 그것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덧붙여, 고려청자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 제작의 비결이 있었으니 바로 ‘상감기법’이다. 상감기법이란 금속이나 도자기 표면에 무늬를 파서 그 속에 금속이나 보석을 넣어 채우는 기법이다. 이러한 공예기법을 청자의 제작기법으로 도입한 것은 고려가 유일하다. 이로 인하여 고려의 상감청자는 다채롭고 장식적인 독특한 멋을 지니게 된 것이다.


고려만이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아름다운 비취색, 그 비결은 뭘까? 안타깝게도 비취색 제조법은 현대까지 전해지지 못했다. 그래서 현대의 학자들은 비취색 제작의 비밀을 과학으로 밝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전에 학자 중에는 비취색의 비결이 유약에 있을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약에는 철과 이산화규소가 들어 있다. 이들이 결합하여 형성되는 규산제일철이 고려청자의 비취색을 낼 수 있다는 해석인데, 이것은 유약 성분 중에서 규소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비취색의 비밀은 유악의 규소가 아니라 산화철의 철 이온(Fe2+)에 있다고 한다. 고려청자는 환원염에서 굽기 때문이다. 환원염은 산소가 부족해서 연료가 덜 타게 되어 연기가 나는 불이다. 반대로 산소가 충분히 있어 완전 연소되는 불은 산화염이라고 한다. 도자기를 굽는 불에는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


산화염에서 도자기를 구우면 필요한 양보다 산소가 많아서 남은 산소들이 도자기의 태토와 결합한다. 그리하여 색이 붉은 산화제2철을 만들면서 도자기의 색이 붉어지게 된다. 반면에 밀폐된 가마 속의 환원염은 산소가 부족하다. 때문에 가마 안은 불완전연소 상태다. 땔감이 완전히 타서 재가 되기 전에 계속 땔감을 공급해서, 시커먼 연기와 그을음이 생기고, 일산화탄소도 발생하게 된다.

이 일산화탄소는 청자 표면에서 산소를 빼앗아 결합하여 보다 안정적인 이산화탄소가 되려고 한다. 이제 청자 표면에는 산소가 부족한 상태가 된다. 이로 인하여 청자의 유약이나 태토에서 산소와 결합해 있던 산화제이철은 산소를 빼앗기게 되는데 이것을 환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산화제이철이 산화제일철로 환원되고 청자는 푸른빛을 나타내는 것이다. 비취색의 비밀은 산화와 환원 반응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이다.


Fe2O3 + CO -> 2FeO + CO2


화학식으로 살펴보면, 청자를 굽기 전에는 흙과 유약에 3가의 철이온(Fe3+)만 함유되어 있었다. 그러나 청자를 구운 후에는 이 이온이 많이 줄어들지만 Fe2+이 생긴다. 3가에서 2가로 산화수가 줄어들었으니 환원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철이온가의 양의 변화가 고려청자의 비취색을 만들었던 것이다.


꿈을 꾸듯 오묘한 고려청자의 비취색, 이것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것이 강진 일대 청자공방 장인들의 꿈이다. 여러 가지 과학적인 분석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이 아름다운 우리 옛 색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한다. 장인들과 과학자들이 고려청자의 비취색의 비밀을 모두 밝혀낼 그날이 기다려진다.

꿈꾸는 과학 3기 김민정 kanellian@ewhain.net
저작권자 2006-09-07 ⓒ ScienceTimes

태그(Tag)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윤승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승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