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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수현 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
2005-11-29

앙드레 당(糖)의 패션쇼 글라이코믹스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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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앙드레 당 디자이너의 패션쇼가 열리는 날! 저 뒤로부터 멋있는 모델이 음악에 맞춰 걸어 나온다. 모델은 모두 단백질이다. 똑같은 아미노산 배열을 가지고 똑같은 모습을 한 단백질 모델들은 각기 다른 탄수화물 패션을 입고 나와 뽐내고 있다. 우리의 디자이너는 얼마나 솜씨가 좋은지 한 모델에 일백 종류의 옷을 입히기도 한다. 앙드레 당 디자이너는 똑같은 모양의 기성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델에 따라서는 아주 단순한 디자인을 할 때도 있다.


앙드레 당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어~ 오늘 패션쇼의 컨셉은, 스포츠룩이니까 활동, 어~ 액티브하면서 클래시칼하고 그리고 어~ 인털렉츄얼하면서 모던한 분위기의 조화에 중점을 두었어요.”


앙드레 당은 스포츠룩뿐만 아니라 수영복, 한복, 파티복 등 다양한 의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삐에르 가르당, 입센 로당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역시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탄수화물 패션을 창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 탄수화물 패션을 두르고 있는 단백질 모델을 당단백질(糖蛋白質)이라 부른다. 앞의 가상적 이야기는 세포에서 만들어지는 당단백질의 다양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당단백질은 거의 모든 생물체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진화한 생명체일수록 더 다양한 패션으로 나타난다.


단백질의 옷으로서 포도당 같은 간단한 단당류가 붙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당단백질은 5-20개 정도의 단당류가 정교한 규칙으로 결합되어 유전자, 단백질, 지질 등의 생체고분자 중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의 소당체를 함유한다. 이는 당생물학 분야의 발달이 타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춰진 원인이기도 하다.


왜 신은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셨을까? 이제까지 밝혀진 당생물학 지식에 의하면 소당체는 크게 구조와 인식의 두 가지 역할을 한다. 하나는 단백질을 결합하여 제대로 된 상태로 만들거나 안정하게 하는 것으로 잘못 만들어지면 소당체는 단백질에 다시 기회를 주고 정상으로 갈 수 있게 유도하나 반성의 기미가 안보이면 가차 없이 분해되어 재활용된다. 이런 과정이 원활하지 못하면 몸은 질병이라는 비상상태로 돌입한다.


다른 하나는 단백질의 눈으로서 자기와 접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역할이다. 사실은 더듬이에 가깝다 하겠다. 생명의 탄생이 시작되는 정자와 난자의 만남도 이들 소당체에 의해서 주선되고, 인간의 분류체계로 잘 알려진 혈액형도 소당체에 의해서 결정된다. 인체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최소 반 이상이 당단백질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들 당단백질의 소당체는 매우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생명체 대사활동에 관여한다. 간단히 말해 소당체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단백질의 효소나 유전자 등이 주로 생체의 특정 기능을 on-off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하면 소당체는 방안을 점차 밝게 하거나 어둡게 하는 세밀한 조절기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혹시 세밀한 조절을 위해서는 복잡한 구조가 필요하진 않을까?


그 해답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글라이코믹스팀에서는 찾고 있다. 단백질에 소당체 등의 당이 부가되는 반응을 당화(糖化)라고 하며 스트레스나 나이, 음식 등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아 같은 단백질이라도 다른 당화 패턴을 보인다. 질병이나 약물 치료에 의해서도 당화는 변할 수 있으며 연구원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조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변화로 인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질량분석기나 자기공명장치 등 여러 종류의 첨단 연구장비를 이용하여 소당체의 구조 결정을 하고 이에 근거하여 상호작용의 변화 등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있다.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는 당단백질은 세포 내 특정장소로 이동하거나, 세포 밖으로 분비되어 혈액 속을 돌아다니거나 혹은, 세포막에 걸쳐 있는 막단백질로서 존재한다.


특히, 막단백질은 위치의 특성상 소당체의 상호작용에 의한 인식이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현재 시판되는 약물의 반 이상이 막단백질을 표적으로 하고 있고 이들 약물을 인식하는 데 있어 소당체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당체 구조와 기능에 관한 연구는 신약개발에 있어 필수적 요소기술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글라이코믹스는 탄수화물을 포함하고 있는 물질에 대한 연구 분야로서 2003년 초 MIT는 세상을 바꿀 10대 신기술의 하나로 글라이코믹스를 선정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도 연구자는 많지 않으며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회는 많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서는 이 같은 중요성을 일찍이 파악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며 외부 연구자들에게 수준 높은 분석서비스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현직에 있는 관련 연구자들도 후배들이 이 분야에 도전적으로 뛰어들어 정진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줘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다음 세대의 사탕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수현 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
저작권자 2005-11-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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