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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동물도 핵심종이 될 수 있다. 공포 인자와 생태계의 비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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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먹잇감인 동물을 잡아먹음으로써 영양단계 연쇄반응(Trophic cascade)으로 생물의 개체 수가 적절히 조절되는 경우가 많지만, 생태계의 균형과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종(Keystone species)이 항상 최상위 포식자인 것은 아니다. 또한 포식자에 대한 공포 인자(Fear factor)로 인하여 피식자인 동물의 행태 및 생태계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큰 동물이나 척추동물에게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진이 메뚜기와 그들의 천적인 거미를 같은 곳에 넣고 실험을 해보았는데,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거미가 메뚜기를 잡아먹기는 했지만 메뚜기가 지속적으로 번식을 했기 때문에 전체 개체 수에는 변화가 없었는데, 먹이와 행동 양식에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즉 거미가 없는 곳에서는 메뚜기들이 영양가 높은 풀을 먹었던 반면에, 거미가 있는 곳에서는 메뚜기들이 영양가는 덜하지만 몸을 숨기기 좋은 풀을 먹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심지어 거미의 입을 접착제로 막았기 때문에 실제로 잡아먹히는 메뚜기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공포에 사로잡힌 메뚜기들은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고 체내 질소 함량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메뚜기가 제대로 먹지 못한 근처의 식물들은 더욱 번성하였다.

나뭇잎을 잘라 옮기고 있는 잎꾼개미들의 행렬 ⓒ 위키미디어

같은 개미 종류 간에도 포식자의 부재가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곤 하는데, 남아메리카의 한 숲에서 군대개미(Army ants)가 사라지자 피식자인 잎꾼개미(Leaf cutters)가 100배나 많아져서 나뭇잎들을 모조리 쓸어가는 바람에 나무들이 고사한 사례도 있다. 잎꾼개미는 가위개미라고도 불리는데, 나뭇잎을 잘라 모아서 균류 즉 버섯을 재배해서 섭취하는 독특한 습성을 지니고 있다. 농사꾼 개미인 잎꾼개미는 생태계에서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너무 많은 잎꾼개미에 의해 숲 전체가 초토화되는 경우도 간혹 생긴다.

드넓은 사바나의 생태계에서 핵심종이 상위 포식자인 육식동물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깨진 경우로서, 아프리카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사례가 있다. 세렝게티의 생태계를 연구하면서 동물 개체 수 변화를 주시했던 한 생태학자는, 초식동물인 검은꼬리누(Wildebeest)가 크게 증가한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처음 연구를 시작하던 무렵에는 25만 마리 정도였는데, 몇 년 후에 40만 마리가 되더니 더 세월이 흐르자 140만 마리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늑대가 사라진 후 사슴류가 크게 증가하여 생태계가 파괴되었던 전례를 상기하면서, 세렝게티의 공원 관리자는 검은꼬리누를 인위적으로 도태시켜서 개체 수를 조절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생태학자들은 자연의 조절 능력을 믿고 더 기다릴 것을 주장하였는데, 그 이후에는 검은꼬리누가 140만 마리 이상으로는 늘어나지 않고 균형을 이루면서 세렝게티의 생태계에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검은꼬리누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검은꼬리누는 우제목 소과에 속하는 포유류로서 누 또는 뿔말이라고도 불리는데, 풀을 찾아 수천 킬로미터씩 이동하기도 하는 습성이 있다. 수만 마리 이상의 검은꼬리누가 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등에 자주 등장하곤 하는데, 검은꼬리누의 먹이는 98%정도가 풀이다.

그런데 검은꼬리누가 건기의 화재에 연료가 될 수 있는 풀들을 모두 먹어치운 반면에 나무는 먹지 않았기 때문에, 도리어 어린 나무들이 자라나서 국립공원의 전체 나무 개체 수가 증가하였다. 그 덕분에 조류와 다른 초식동물 및 포식자들도 늘어나서 생태계 전체가 안정과 번성을 이루게 되었다. 여러 요소가 독특하게 연결된 세렝게티 생태계에서, 핵심종은 상위 포식자가 아니라 바로 초식동물인 검은꼬리누였던 것이다.

초식동물이지만 핵심종으로서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동물로서 비버(Beaver)가 있다. 쥐목 즉 설치류에 속하는 동물 중에서 몸집이 비교적 큰 비버는 수중생활에 잘 적응하여 하천이나 호수에 댐을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버는 천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먹이를 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도록 큰나무, 잔가지, 진흙 등을 모아서 댐을 건설한다. 댐의 길이는 대개 수십 미터 정도이지만 가장 큰 것은 무려 650m에 달하는 것도 있어서, 비버는 자연계의 토목 엔지니어라 불릴만 하다.

비버가 만드는 댐은 생태계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 PanBe

그런데 이처럼 비버가 건설한 댐에 의해 물줄기나 지형이 바뀌면서 늪과 습지가 형성되어, 다양한 동식물들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지게 된다. 즉 비버 덕분에 만들어진 늪과 습지에는 물떼새, 도요새, 왜가리 등 다양한 조류들이 몰려와서 살게 되고, 물고기나 양서류, 파충류 역시 산란과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동물뿐 아니라 식물들이 번성하는 데에도 적절한 환경이 조성된다. 따라서 비버는 스스로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하고 확장하는 능력을 지닌 핵심종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최성우 과학평론가
저작권자 2021-07-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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