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에 대해서 만큼은 안전하다고 인식되어 온 한반도에 지난 2016년과 2017년에 연이어 발생한 경주 및 포항 지진은 지진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인식이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일환으로 지난 2017년 ‘내진설계 기준 공통 적용 사항’을 제정하여 지진 안전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진설계는 건물에 집중되어 있고, 지반에 대한 내진설계는 관심이 부족했다. 전문가들은 지진은 기본적으로 지반에서 발생하고, 지반이 전달 매체임과 동시에 재해 대상체라는 점에서 건물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하는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지반의 공학적 정보 및 특성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하는 것이 지진 대처방안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작업이다. 이에 지난 17일 온라인상에서는 이 같은 지반과 지진 발생의 상관관계를 논의하는 행사인 ‘2021 지반 미래 포럼’이 개최되어 관심이 모아졌다.
‘내진설계를 위한 지반공학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국토교통부가 후원하고 한국지반공학회가 주최한 이번 포럼은 그동안 간과해 온 지진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지반의 공학적 특징을 분석하여 향후 발생할 수도 있는 지진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포항의 연약한 지반으로 지진 피해 더 커져
지난 2016년 9월 경주시에서는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이 계기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후 한반도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그리고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에 이듬 해인 2017년 11월 포항시에서는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놀라운 점은 포항 지진보다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이 훨씬 강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는 포항이 상대적으로 컸다는 점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당시 지질 전문가들은 포항과 경주의 지반 구조 차이를 이유로 들었다. 포항이 낙동강 하류에서 쌓은 퇴적물들로 이루어진 연약한 지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면, 경주는 비록 지각판 위에 세워졌지만 지반이 암반으로 이루어져 단단한 구조를 이루고 있기에 피해를 덜 받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반이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느냐에 따라 지진 피해 규모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행사의 발제를 맡은 김익현 울산대 교수는 ‘구조물 내진설계 및 내진성능평가에 있어서의 지반공학적 문제와 역할’이라는 주제를 통해 지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도심지가 대형화될수록 연약한 지반으로 이루어진 곳이나 단층 지역처럼 위험한 곳에까지 확장될 수밖에 없다”라고 밝히며 “지진과 관련한 이슈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서 구조물의 지진 안전성에 지반 영향이 강력하게 증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반 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액상화 현상
지진에 대비하기 위한 지반공학 연구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액상화’ 현상이다. 액상화 현상이란 지진 등에 의한 충격으로 지반층의 강도가 크게 약화되어 순간적으로 지반이 액체처럼 움직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액상화 현상이 발생했다면 우선 시설물별 액상화 영향 평가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하면서 “액상화로 인한 합리적이고도 경제적인 대책을 사전에 마련하는 것이 사고 발생 후 혼란을 줄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액상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지반이 약해졌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 위에 건설된 시설물의 안전에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지반의 액상화 문제는 지반 개량 공법을 통해 어느 정도는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액상화 현상이 발생했을 시 토양층을 보강하거나 안정화시키는 공법 중에는 바이브로플로테이션(vibroflotation) 공법과 동다짐(dynamic compaction) 공법, 그리고 CGS(compaction grouting system) 공법 등이 있다.
바이브로플로테이션 공법은 커다란 막대 모양의 진동기를 지반 속으로 집어넣어 다질 때, 자갈 같은 충전재를 넣어 지반을 다지는 방식이다. 또한 동다짐 공법은 연약한 지반 위에 추 같은 무거운 물체를 반복해서 떨어뜨려 지반을 다지는 방식이다.

반면에 CGS 공법은 땅속으로 모르타르(mortar) 주입제를 삽입하여 기둥 모양의 결정체를 형성하게 만든 다음, 이와 동시에 주변 지형을 압축하여 밀도를 조밀하게 만드는 공법이다.
이와 같이 지반을 다지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방법들이 지진을 예방하는 데 있어 충분한 효과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지반을 단단하게 다지고 내진설계가 된 건물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하지만 지반을 다지고 건물에 내진설계를 하는 목적은 붕괴로 인한 인명보호이기 때문에 재산 상의 피해를 일정 부분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물론 기술적으로 더 큰 지진에 견디도록 설계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건축 비용이 크게 증가하게 되므로 지진의 예상 규모에 따라 적절한 내진설계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김 교수는 “지진 발생에 대비하기 위한 내진 건물 건설에는 구조설계 전문가와 지반공학 전문가의 역할 및 협업 체계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 성능 기반의 내진설계 기준을 마련하고, 교육 및 기술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등 기술적인 면과 제도적인 면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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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2-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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