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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이성규 객원기자
2021-02-01

‘벌거숭이두더지쥐’도 사투리 쓴다 사투리가 집단의 소속감과 결속력 강화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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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이 거의 없어서 땅속에 굴을 파고 사는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의학계에서 주목하는 신비의 동물이다. 평균 수명이 쥐들보다 10배 이상 길며, 다른 포유류와는 달리 암에도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나이가 들수록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곰퍼츠의 사망률 법칙’을 따르지 않는 매우 특별한 동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벌거숭이두더지쥐의 또 다른 특성 하나가 발견됐다. 이들도 인간처럼 집단마다 고유의 사투리를 구사한다는 연구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더구나 이들이 사투리를 사용하는 이유는 놀랍게도 집단의 소속감과 결속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벌거숭이두더지쥐들도 인간처럼 집단마다 고유의 사투리를 구사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Felix Petermann(MDC)

벌거숭이두더지쥐는 포유류이면서도 개미나 벌처럼 진사회성 동물이다. 여왕개미나 여왕벌처럼 여왕에 오른 암컷 한 마리와 소수의 수컷들이 전체 무리의 번식을 도맡는 대신 생식이 불가능한 나머지 구성원들은 전사 계급이나 일꾼 계급이 되어 둥지를 지키거나 먹이를 구해오는 일만 하게 된다.

때문에 이 동물은 의사소통이 매우 활발하다. 그들이 사는 굴에 귀를 기울여보면 조용히 짹짹거리거나 크게 꽥꽥 질러대는 소리 등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약 20년간 벌거숭이두더지쥐를 연구해온 독일 막스 델브뤼크 분자의학연구소(MDC)의 게리 르윈 박사는 그런 소리들이 엄격한 분업으로 사회적 조직을 갖춘 이 동물들에게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기 위해 연구에 착수했다.

다른 집단의 사투리에는 반응하지 않아

우선 연구진은 그들의 언어를 분석하기 위해 7개 집단의 166마리가 낸 총 3만 6190번의 소리를 녹음한 후 8가지 다른 요소를 비교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개별 발성의 음향 특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각각의 벌거숭이두더지쥐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며, 그 목소리에 근거해 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인공지능을 이용해 연구한 결과, 단일 집단의 소리 유형에서 유사성을 발견했다.

즉, 이 동물은 소리만 듣고도 특정 개체가 어떤 집단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각각의 집단이 그들만의 독특한 사투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럼 과연 이 동물들은 정말로 자신이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 간의 사투리를 구별할 수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진을 특별한 장치를 고안했다. 튜브를 통해 연결된 2개의 방에 한 마리의 벌거숭이두더지쥐를 넣은 다음 한쪽 방에서만 다른 개체의 울음소리가 들리게 한 것.

연구진은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언어를 분석하기 위해 7개 집단의 166마리가 낸 총 3만 6190번의 소리를 녹음한 후 개별 발성의 음향 특성을 분석했다. ©Felix Petermann(MDC)

그러자 이 동물은 즉시 소리가 들리는 방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다른 집단이 내는 소리가 들릴 경우 이동하지 않은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과연 그러한 행동이 사투리에 반응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 개체의 목소리에 반응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특정 집단 사투리의 특징은 포함하지만 특정 개체의 목소리와는 닮지 않는 인공 소리를 만들어 들려줬다. 그 결과 이 동물들은 특정 개체의 목소리가 아니라 특정 집단의 사투리에 반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왕이 사투리를 통제하고 보존해

자기 집단의 사투리가 들리는 방에 다른 집단의 냄새를 입힌 실험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는 벌거숭이두더지쥐들이 집단의 냄새보다 사투리에 더 반응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또한 고아가 된 새끼 벌거숭이두더지쥐들을 다른 집단에 넣어둔 결과, 새끼들이 새로운 집단의 사투리를 습득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런데 추가 실험 과정에서 연구진은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집단의 번식을 담당하는 여왕 개체가 사라질 경우 그 집단 개체들의 발성이 시간이 지날수록 평소와는 달리 다양하게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

이는 여왕 벌거숭이두더지쥐가 한 집단의 사투리를 통제하고 보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MDC의 게리 르윈 박사팀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대학의 연구진이 공동으로 진행한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1월 29일 자에 발표됐다.

연구를 주도한 게리 르윈 박사는 “다음 연구 과제는 이 동물의 뇌에서 어떤 메커니즘이 인간보다 더 빨리 언어문화를 발달시켰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라며 “그것은 우리에게 인간의 문화가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이성규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저작권자 2021-02-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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