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 외 다른 글자는 스파게티처럼 보여
2010년 10월 어느 날, 60대의 토목 지질학자였던 한 남성은 두통과 기억상실, 떨림, 언어 표현 장애 등을 느꼈다. 그의 뇌세포는 죽어갔고, 몇 달 후 그는 근육 경련 및 떨림이 나타나며 걷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그의 증상은 악화되었다.

이상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숫자를 읽는 데 점점 문제가 생겨, 2~9까지의 숫자를 인식할 수 없게 되었다. 항상 수학을 써야 했던 그의 입장에선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업무뿐만 아니라 일상에서까지 문제가 터졌다. 그는 물건의 가격표나 제한 속도 표시도 읽을 수 없었으며, 호텔이라도 가는 날에는 방문에 마커로 표시를 해 놓아야 했다.
한 실험에서 그의 앞 모니터에 8을 띄우자, 그는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 이상한 모양입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똑바로 세우면 뒤죽박죽인 모양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8을 90˚ 회전 시키자 그는 “마스크 같은 모양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주황색 8을 보고 따라 그린 그림은 주황색 배경에 검은 선이 마치 추상화처럼 구불구불 그려진 모양이었다.
뇌 손상으로 운동과 언어능력에 문제 생겨
이니셜 'RFS'로 알려진 이 남성은 피질 기저핵 증후군(corticobasal syndrome)이라고 불리는 희귀 퇴행성 뇌 질환에 걸린 것이었다. 피질 기저핵 증후군이란 운동, 언어 기술 또는 둘 다에 변화를 일으키는 상태를 말한다. RFS는 대뇌, 중뇌 및 소뇌 영역에서 광범위한 손상이 나타난 상태였다. 존스홉킨스 대학에 찾아간 그는 인지 과학교수 마이클 맥클로스키를 만나게 되었으며, 맥클로스키와 그의 대학원생 테라 슈버트, 다니엘 로슬린은 그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RFS의 경우에 있어 흥미로운 부분은, 다른 숫자는 혼란함을 느끼지만 0과 1을 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맥클로스키는 미 매체 라이브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뇌가 0과 1에 문제가 없다는 것도 놀랍다”고 말했다. 두 숫자는 알파벳 대문자 O나 소문자 i 와 비슷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다른 숫자가 나온 후 0이 발명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다는 점 등으로 보아, 두 숫자는 뇌에서 다른 숫자와 다르게 처리되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RFS의 결함은 단순한 시각적 오작동은 아니었다. 그는 똑바로 서있는 8은 알아보지 못하지만, 특정 방향에서 8의 모양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RFS는 숫자를 읽지 못하지만,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연구팀은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숫자 체계를 만들었다. 2는 L자로 표현하는 등, 곡선이 없는 형태이다.
RFS는 이제 새로운 숫자 체계를 화면에 띄워가며 계속 토목지질학자 일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높은 수준의 수리능력은 머릿속에서 유지가 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앨런연구소의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는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인지(consciousness)와 인식(cognition)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김진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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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0-10-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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