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1,2019

로봇이 만든 커피, 어떤 맛일까

‘인간-로봇의 공존시대 로봇이 그리는 미래’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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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국회의원회관 2층 로비에는 특이한 임시 카페가 문을 열었다.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주문을 받는 것은 커피 머신 옆에 놓인 태블릿 화면. 누군가 가볍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누르자 로봇 바리스타 ‘빌리’가 능숙한 동작으로 커피 머신을 작동해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물과 얼음을 첨가한다. 사람의 손길 없이 100% 기계가 만들어주는 커피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모습이었다.

긴 대기열에 밀려 로봇 커피 맛을 보지 못한 이들은 생수를 마시며 갈증을 풀어야 했다. 이를 위해 귀여운 표정의 실내 배달 서비스 로봇, ‘로비’가 전시장을 바삐 움직이며 돌아다녔다.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4차산업혁명 로봇 전시·체험 행사, ‘인간-로봇의 공존시대 로봇이 그리는 미래’ 현장이다. 이날 선보인 다양한 제품들은 로봇이 더 이상 산업 현장이나 우주 탐사가 아닌,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음을 잘 보여줬다.

능숙한 동작으로 커피를 만드는 로봇 바리스타 ‘빌리’  ⓒ 김청한 / Sciencetimes

능숙한 동작으로 커피를 만드는 로봇 바리스타 ‘빌리’ ⓒ 김청한 / Sciencetimes

로봇, 일상으로 들어오다

최초의 홈서비스용 소셜 로봇을 표방하는 ‘아이지니’는 충실한 비서이자, 친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당일 스케줄이나 투약 시간 등 필요한 정보를 보고하는 것은 기본, 사진촬영을 하거나 음악을 재생하며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전면 디스플레이를 바탕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마치 반려견과 같은 감정 교류를 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인공지능이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분석해 최적의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돕는 의료용 로봇도 선보였다. 엔젤 로보틱스가 내놓은 슈트들은 14년간의 기초연구와 30여 편의 특허를 통해 확보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로봇 착용자가 로봇의 무게감과 저항력을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무저항 정밀 구동기술’, 몸에 센서를 부탁하지 않아도 사용자의 의도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센서 및 의도파악 기술’ 등이 그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리가 불편한 이들의 보행을 돕는 한편, 재활 치료에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귀여운 표정의 실내 배달서비스 로봇, ‘로비’ ⓒ 김청한 / Sciencetimes

귀여운 표정의 실내 배달서비스 로봇, ‘로비’ ⓒ 김청한 / Sciencetimes

한편 행사장을 가득 채운 디지털 감성 속, 유난히 눈에 띄는 아날로그 감성 로봇이 있었다. 인형 모양의 노인 돌봄 토이봇 ‘부모사랑 효돌’이다. 직접 만지고, 쓰다듬고, 안는 터치 인터랙션을 통해 근육을 강화하는 한편, 집중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돌봄 토이봇의 장점은 인형이라는 친숙한 매개체를 통해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등을 두드리면 “할아버지, 재워 주세요”라고 말하며 어리광을 부리는 등 다양한 반응을 통해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실제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의 연구 결과, 우울감이 감소하고 약 복용도가 개선되는 등 유의미한 효과가 발견됐다. 이 밖에도 실제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로봇 물고기 등이 소개됐다.

“인간에게 쉬운 일, 로봇에겐 어려워”  

같은 시각,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는 한재권 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 교수가 ‘다가오는 로봇 시대’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사람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영화 속 로봇은 실제와는 다르다. 다가오는 로봇 시대를 맞아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라고 운을 뗀 한 교수는 실제 로봇 개발 사례를 바탕으로 인간과 로봇의 차이점을 청중들에게 설명했다.

한 교수가 스키 타는 로봇 ‘다이아나’를 개발하며 가장 어려워한 부분은 무엇일까.

그는 “의외로 장애물 깃발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가장 큰 기술적 어려움이었다”라며 모라베크 역설(Moravec’s Paradox)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미국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베크로부터 유래된 이 역설은 ‘인간이 잘하는 것은 로봇에게 어렵고, 반대로 인간이 어려워하는 것은 로봇에게 쉽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탁자 위에 놓인 리모컨을 집는 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지만, 로봇에게는 엄청난 고난이도 작업에 속한다. 반대로 똑같은 동작을 1000 번 이상 반복하는 것은 사람에겐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지만, 로봇에게는 무리가 없다.

‘다가오는 로봇 시대’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한 한재권 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 교수 ⓒ 김청한 / Sciencetimes

‘다가오는 로봇 시대’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한 한재권 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 교수 ⓒ 김청한 / Sciencetimes

이는 한 교수 연구팀이 고생길을 걷는 이유가 됐다.

그는 “다이아나에게 깃발을 제대로 인식시키기 위해 한 달 반 동안 꼬박 평창의 한 스키장에서 합숙을 해야만 했다”라며 “그나마 딥러닝 등 인공지능의 발달로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다이아나의 성공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을 로봇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우리는 드디어 인간처럼 행동하는 로봇을 만들 수 있게 됐다”라며 “단지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는 점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람다운 로봇의 어려움, 새로운 산업의 열쇠”

역설적으로, 이러한 단점은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로봇이 간단한 인간의 행동을 재현하는 데도 굉장히 많은 인력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거꾸로 인간과 로봇의 공존이 필요함을 시사하기 때문.

한 교수는 “모라베크 역설의 실마리가 풀린 상황이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지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라며 “바로 이 지점에서 미래를 이끌어 갈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기술이 일자리를 앗아간다는 우려를 넘어, 기술 및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상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4차산업혁명으로 없어지는 것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는 필요하지만, 반대로 새로 생겨나는 산업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한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과학자들은 계속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것”이라며 “로봇을 배척의 대상이 아닌, 같이 일을 하고 신산업을 만들어 나갈 존재로 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형 모양의 노인 돌봄 토이봇 ‘부모사랑 휴돌’ ⓒ 김청한 / Sciencetimes

인형 모양의 노인 돌봄 토이봇 ‘부모사랑 효돌’ ⓒ 김청한 / Sciencetimes

로봇 한계 넘어서기 위한 8단계 미션

이어 한 교수는 강연의 시점을 미래에서 과거로 전환하며 청중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때다.

그에 따르면 이 시기는 로봇공학의 거대한 흑역사이자, 새로운 진보를 위한 전환점을 마련한 역설적인 순간이다.

한 교수는 “당시 사람들은 수습 작업을 위해 투입된 많은 로봇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라며 “그러나 로봇들이 방사능을 버티지 못하고 통신두절되면서 결국 사람들이 방호복을 입고 현장에 들어가야만 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실패는 연구자들에게 뼈를 깎는 반성의 계기가 됐다. 절치부심한 전 세계의 로봇공학자들은 만회할 기회를 잡기 위해 기발한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일명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ARPA Robotics Challenge, DRC)’로 불리는 로봇공학 대회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해 “경쟁을 통해 많은 기술들과 창의성이 뿜어져 나올 수 있었다”라며 2012년부터 실시된 DRC의 이모저모를 설명했다.

2015년 DRC에서 대망의 우승을 차지한 로봇 KAIST 연구팀의 휴보(HUBO)였다. 사진은 휴보가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 ⓒ Flickr / Office of Naval Research

2015년 DRC에서 대망의 우승을 차지한 로봇은 KAIST 연구팀의 휴보(HUBO)였다. 사진은 휴보가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 ⓒ Flickr / Office of Naval Research

최고의 재난 로봇을 선발하는 DRC는 장애물 경주와 흡사하다. 자동차 운전, 자동차 하차, 문 열고 들어가기, 냉각수 밸브 조절, 드릴로 벽 뚫기, 돌발 미션 수행, 험지 돌파, 계단 오르기 등 총 8가지 미션이 주어지며, 이를 1시간 내에 수행해야 한다.

언뜻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은 미션이지만, 이는 로봇과 인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 교수는 “대회가 처음 열린 2012년, 사람이라면 20분 만에 여유 있게 수행할 이 코스를 통과한 로봇은 단 1대도 없었다”라며 “이에 많은 로봇공학자들이 사람과 로봇의 차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마침내 나온 결론은 “로봇을 인간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고 한 교수는 설명했다.

한 교수는 “인간과 로봇은 근본이 다르다”라며 “가령 탁자 위 리모컨을 잡는 동작 하나를 위해서 로봇은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리모컨을 측정하고 거리를 판단해 좌표계로 계산한 다음, 각도를 구하고 그에 맞게 모터가 움직이도록 제어하는 등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우리는 손쉽게 리모컨을 집어 올릴 수 있다.

“근본적인 차이, 위치가 아닌 힘으로 극복”

결국 수 년 간의 연구와 고민 끝에 연구자들은 그 ‘근본적’인 차이를 메울 수 있는 비법을 찾기에 이른다. ‘위치’가 아닌, ‘힘’을 느끼는 것이었다.

한 교수는 “걸어가면서 일일이 바닥을 스캔하여 위치와 좌표 등을 계산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설명하며 “본능적으로 힘을 느끼고, 이를 제어하면 일일이 위치와 각도, 좌표 등을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힘을 잘 제어하는 로봇이 DRC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이 한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영화 등에서 보던 로봇과 비교하면 한심한 수준이지만, 이때 만들어진 기술은 로봇공학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부연했다. 로봇이 힘을 제어할 수 있게 되면서, 마침내 일상으로 들어오게 됐다는 분석.

충실한 비서이자, 친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아이지니’의 모습. ⓒ 김청한 / Sciencetimes

충실한 비서이자, 친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아이지니’의 모습. ⓒ 김청한 / Sciencetimes

한 교수는 이어 “지금까지의 로봇은 위험한 기계에 불과했지만, 힘을 제어하는 로봇은 안전하기에 인간과 한자리에서 협업이 가능해진다”라며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에서 속속 관련 안전 규정을 개선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론적으로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며 협업하는 사회가 올 것”이라는 것이 한 교수의 분석이다. 이날 커피를 타고, 애교를 부리며, 불편한 걸음걸이를 도왔던 전시장의 로봇들은 그 공존시대가 머지않았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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