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만 켜면 방안을 환히 밝히는 전등, 리모컨만 누르면 현란한 영상이 나오는 TV 등 현대인들은 마치 공기를 호흡하듯 전기를 사용한다. 워낙 어릴 때부터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인구의 90%는 현대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전기의 혜택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이 되면 호롱불에 의지하거나, 그 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그냥 어둠 속에서 생활하며 긴 밤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문제가 당대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대물림 된다는 점이다. 어둠을 밝힐 빛이 없다보니 밤에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밤에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니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이 전기가 주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과학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도구라고 믿는 이들 과학자들은 ‘적정기술’을 통해 어둠을 밝히는 빛을 제공하고 있다.
지속가능하면서도 비용이 들지 않는 조명 장치
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필리핀에는 전기가 없어서 전등이라고는 구경조차 못한 마을이 많다. 시티오 말리가야라는 이름의 이 섬마을 역시 주민들 대부분이 문맹자일 정도로 전기와는 인연이 없는 곳이다. 밤이 되면 온 마을이 어둠에 묻히고, 창이 없는 집에 살다보니 낮에도 글을 배울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
이런 암흑의 마을에 얼마 전부터 빛이 들어가고 있다. ‘마이 쉘터 재단(My Shelter Foundation)’이라는 이름의 비영리재단이 지속가능하면서도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조명 장치를 설치해 주는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바로 ‘모저램프(Moser Lamp)’다. 개발자인 ‘알프레드 모저(Alfred Moser)’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 조명장치는 버려진 페트병을 활용하여 만든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마이 쉘터 재단 측은 15개국이 넘는 지역에 약 35만개의 모저램프를 설치하여 많은 이들이 어두운 실내에서도 빛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모저램프의 제작은 의외로 간단하다. 1.5~2L 정도 용량의 투명 페트병을 물로 가득 채운 다음, 병 안에서 녹조류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약간의 표백제를 넣어준다. 이어서 페트병 바닥 면적만큼의 구멍을 지붕에 형성한 후, 페트병을 구멍에 맞게 끼우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설치된 페트병은 지붕을 기준으로 외부에 노출된 부분과 실내에 들어간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외부로 노출된 부분에서 받은 태양빛을 실내로 들어간 부분에 전달하여 내부를 밝혀주는 것이 주요 원리다.
마이 쉘터 재단 관계자는 “태양빛을 페트병으로 반사시켜 봤자 얼마나 밝을까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밝기가 대략 40~60와트 정도의 백열전구 하나에 달한다”라고 밝히며 “자연재해 같은 문제만 없다면 별도 비용 없이도 그 효능이 5년 정도 지속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태양광으로 어둠을 밝히는 전구
적정기술을 통해 어둠을 밝히는 사례는 또 있다. 다만 필리핀의 시티오 말리가야 마을처럼 밤이면 암흑이 되는 곳이 아니라, 등유로 호롱불을 켜는 저개발 지역의 주민들을 위한 기술이라는 것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등유는 전기보다 훨씬 비쌀 뿐 만 아니라 공기를 오염시키고 때로는 끔찍한 화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등유는 전기처럼 환한 빛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이런 문제를 마이 쉘터 재단처럼 태양빛을 활용하여 개선하고 있는 업체가 있다. 미국의 노케로(Nokero)사다.
이 회사는 전기가 없어도 사용할 수 있는 태양광 전구를 개발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노케로라는 이름도 ‘등유를 사용하지 말자!(No! Kerosene)’라는 용어에서 따왔을 만큼, 적정기술을 상용화하려는 의지가 강한 회사다.
노케로사가 개발한 태양광 전구는 랜턴같이 생긴 LED 램프로서, 태양에너지를 저장하는 배터리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최장 4시간까지 빛을 밝힐 수 있다.
사용방법은 빨래를 널고 말린 다음, 다시 걷는 과정과 흡사하다. 더럽혀진 옷을 물과 세제로 세척한 후 빨랫줄에 널어 말리듯이, LED 램프가 방전되면 빨랫줄에 주렁주렁 매단 후에 충전되면 걷어서 사용하는 것이다.
노케로사 관계자는 “LED 전등은 5~10만 시간 사용할 수 있고, 태양광 패널도 10년 정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최소 5년에서 10년 정도는 LED 램프를 사용할 수 있다”라고 설명하면서 “특히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저감효과가 있고, 전력 사용량이 200분의 1에 불과하므로 경제성도 높다”라고 강조했다.
LED 램프는 낮은 기온과 흐린 날에도 충전이 가능하다. 또한 주변 조명이 약 2백 럭스(lux) 아래로 떨어질 때만 빛을 내는 절전기능까지 갖추고 있어서 에너지 낭비를 자동적으로 막는 장점도 포함하고 있다.
현재 노케로 태양광 전구는 개당 15달러에 판매되고 있으며, 기부 프로그램인 ‘Buy one Give one’을 통해 더 많은 지역으로 보급되고 있다. 특히 선진국에서도 꾸준히 판매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자연재해 지역이나 캠핑장 등 전기가 들어가기 힘든 지역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노케로의 대변인인 톰 보이드(Tom Boyd) 이사는 “문명의 이기가 보급되지 않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제약 없고,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태양밖에 없다”라고 강조하면서 “열악한 환경에 처해진 이들을 위해 우리의 적정기술이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 stimes@naver.com
- 저작권자 2019-04-08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