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가 사상 최장기 셧다운 사태를 겪고 있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이던 국경 장벽 예산 57억 달러의 배정에 대한 갈등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최근 주요 외신들은 셧다운 사태가 이번 주말까지 지속될 경우 경제적 피해규모가 장벽 예산 57억 달러를 초과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과 멕시코 간에 높이 9m에 달하는 콘크리트 장벽이 세워지면 피해가 커지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 미국 인터넷 매채 ‘복스(Vox)’는 트럼프의 장벽이 엄청난 생태적 재앙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은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멕시코만까지 총길이가 3145㎞에 이른다. 그 길을 따라 북미에서 가장 큰 2개의 사막과 넓은 들판, 그리고 리오그란데 강의 남쪽 지역을 가로지르는 3개의 산맥이 있다. 이 지역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 대신 야생동물보호구역과 국립공원 등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서쪽 끝에는 약 400종에 이르는 철새들의 주요 서식지인 티후아나강 하구가 자리 잡고 있으며, 국경의 동쪽에는 각종 나비를 포함한 곤충과 파충류, 양서류, 포유류의 보금자리인 리오그란데 계곡이 지나간다.
2011년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 국경지대에는 134종의 포유류, 178종의 파충류, 57종의 양서류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그중 53종의 아종은 미국과 멕시코를 포함한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이다.
특히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주에 걸쳐 있는 코로나도 국유림은 생태학적으로 가장 다양한 종을 품고 있는 숲인데, 미국의 국유림 중에서 가장 많은 멸종 위기종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장벽이 희귀종의 작은 개체군 양분시켜
국경지역에 걸쳐 있는 사막도 생태학적으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막을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땅과 평평한 모래 언덕으로 생각하지만, 생태학자들은 사막도 매우 다양한 생명체를 풍부하고 품고 있는 곳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국경 장벽으로 일어날 생태학적 재앙은 기존에 설치된 철조망을 통해서도 이미 잘 드러나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 3145㎞ 중 약 1/3에 해당하는 1100㎞ 구간에는 이미 철조망과 펜스 등의 여러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나머지 구간 중 자연적 경계를 제외한 약 1600㎞ 구간에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할 계획이다.
기존 장벽은 희귀동물의 개체수를 격리‧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에 의하면 철조망은 그곳에 서식지를 가진 희귀종의 작은 개체군을 양분시키는데, 특히 개체수의 대다수가 장벽 한쪽에 있고 다른 개체들이 그 건너편에 있을 때 멸종 위험이 더욱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동물보호단체들이 주목하고 있는 동물 중 하나가 바로 멕시코 회색늑대다. 2016년 기준으로 멕시코 회색늑대의 개체수는 미국에 113마리, 국경의 남쪽에는 약 36마리가 있었다. 그들 사이를 가로막는 국경 구조물은 개체수를 더 이상 회복시킬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홍수 위험도 간과할 수 없다. 이미 건설된 기존 장벽의 부근 황무지에는 수많은 도로들이 건설됐다. 국경순찰대가 철조망의 이상 유무를 점검할 때 쉽게 접근하기 위한 용도다. 그런데 이 도로들은 홍수를 더욱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기존보다 훨씬 튼튼한 콘크리트 장벽이 세워지면 홍수 시 야생동물들이 장벽에 갇혀 익사할 위험성도 높아지게 된다.
미국이 멕시코와 함께 협력 관계를 맺어 보호하고 있는 제왕나비와 재규어의 경우 콘크리트 장벽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볼 생물종으로 꼽히고 있다.
멸종위기종 재규어 피해 우려
곤충 중에서 특이하게 2000~4500㎞의 장거리 이동을 하는 제왕나비는 봄과 여름에 북미에서 번식하다가 겨울이 되면 멕시코 남부로 날아가 월동한다. 제왕나비 보호구역으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멕시코 미초아칸 마을의 경우 겨울잠을 자는 나비들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 정도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장거리로 이동하는 제왕나비의 개체수가 급감해 문제시되고 있다. 여기에다 트럼프 장벽이 건설되면 제왕나비를 비롯해 미국에서 가장 다양한 나비의 보호구역이 없어질 전망이다.
미국 남부 텍사스주에 있는 나비센터가 바로 그곳이다. 240종 이상의 나비가 서식하는 이 나비센터에는 애벌레 및 성충의 먹이가 되는 각종 식물들이 식재돼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국경 장벽이 건설되면 나비센터 부지를 가로지르게 돼, 주위의 모든 나무와 풀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
애리조나주의 그랜드캐니언부터 뉴멕시코주 리오그란데강 유역 사이에 서식하는 재규어는 1975년부터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현재 멕시코 소노라주에 있는 재규어 보호구역에는 약 80~120 개체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넓은 행동반경을 가지고 있는 재규어의 경우 콘크리트 장벽으로 이동이 제한될 경우 멸종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 또한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오실롯과 재규어런디 등 2종의 고양잇과 동물의 서식지도 바로 국경 장벽의 예정지에 있어 염려를 낳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국경 지역에 서식하는 이 같은 희귀동물들의 생태가 위태로워진다며 국경 장벽 건설 중단 소송을 걸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경 장벽 건설이 연방 환경보호 관련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지난달 3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그들의 상고를 기각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텍사스주 남쪽 지역의 이달고 카운티에 있는 약 10㎞의 국경 구간에서 콘크리트 장벽의 첫 공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19-01-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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