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거(ringer)는 사람의 체액(體液) 대신 쓰이는 생리적 식염수다.
탄생한 지 14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링거에는 여러 가지 약재가 혼합되면서 다양한 질병 치료에 사용돼 왔다. 하지만 주사를 사용하는 방법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주사를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주사 대신 ‘마시는’ 링거가 개발됐기 때문이다. 이 획기적인 개발의 주역은 현재 특전사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현역 군인이다.
탈진한 병사들을 위해 군의관이 개발
링거는 영국의 의학자인 ‘시드니 링거(Sydney Ringer)’가 19세기 말에 개발한 특수 용액으로, 링거라는 이름은 바로 이 의학자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심장근육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여러 종류의 이온들이 적당한 비율로 담겨있는 용액을 투여할 때, 심장기능이 활발하게 유지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와 더불어 해당 용액을 혈액 대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후 링거는 입으로 음식물을 섭취할 수 없거나, 먹더라도 섭취량이 적은 환자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어 왔다. 필요한 체액과 전해질 열량을 보충함으로써 환자의 회복을 돕고 정상적 생리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데 필수적 의료용품이 된 것.
또 링거는 질병 치료에만 사용되지 않았다. 과로로 인해 체력이 떨어졌거나, 과음으로 인해 기운이 하나도 없을 때 링거 주사는 빠르게 몸의 회복을 도와주는 기능을 제공했다.
문제는 링거를 병원이나 의원이 아닌 곳에서 맞는 것이 불법이라는 점이다. 반드시 의사 처방이 필요하고, 의료시설 내에서 의료인을 통해 처치를 받아야만 하는 까다로움이 따른다. 더군다나 링거를 맞을 때는 매번 고통스럽게 바늘에 찔려야 하고, 한 번 맞으면 시간도 오래 걸리는 불편함까지 감수해야만 한다.
이런 까다로움과 불편함은 링거가 꼭 필요한 군부대에서는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혹한기나 혹서기 훈련 시 종종 탈진 환자가 발생하는 군부대에서 링거는 꼭 필요한 의약품이지만, 한정된 군의관 수와 긴급하게 벌어지는 상황을 고려할 때 매번 링거를 맞기에는 제약이 따른다.
특전사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원철 대위는 이 같은 링거의 까다로움과 불편함에 주목했다. 이 대위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2016년에 특전사 군의관으로 임관했는데, 훈련 중 탈진하는 병사들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돌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마시는 링거를 떠올렸다.
이 대위는 “행군 훈련을 하다가 탈진한 병사들에게는 링거주사제 만큼 효과적인 의약품이 없지만, 링거수액이나 고정 도구, 그리고 주사 등을 모두 합하면 1kg이 훌쩍 넘는다”라고 밝히며 “속옷도 최소화해야 할 만큼 짐의 무게를 줄여야 하는 행군 훈련에서 1kg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무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행군 시 발생할 수 있는 열사병이나 탈진을 막기 위해 출발 전에 일부러 소금과 물을 많이 마시고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행군 시 틈틈이 링거를 마실 수 있도록 한다면 그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혈액량 보충 정도가 마시는 링거의 성패 좌우
본격적인 개발에 앞서 이 대위가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마시는 링거가 혈액량을 얼마나 보충해 줄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일반적으로 정맥을 통해 주사한 링거액이 1L라면, 한두 시간 뒤 혈관 속에는 275ml 정도가 남게 된다.
반면에 입으로 마시게 되면 일단 장에서 흡수를 하고 간을 거쳐 혈관까지 가는 동안 많은 손실이 발생한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대위는 흡수율을 최대한 높이는 제제를 사용하여 링거액이 혈액에 잔존하는 비율과 근접하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는 “비법은 배합에 있다”라고 밝히며 “예를 들어 500ml의 물에 분말 상태로 만든 링거를 섞어서 마시면 소장에서 물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최대 활성상태가 되는데, 90%이상이 소장에서 흡수된 다음 간을 거쳐 체내의 각 구획으로 보내진다”라고 설명했다.
이 대위의 설명에 따르면 수분공급을 위해 마시는 물이나 이온음료는 소변으로 배출되는 비율이 높다. 이에 비해 마시는 링거는 소변 배출량을 늘리지 않고도 충분한 수분을 공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을 흡수할 수 있는 최적의 요소를 제공하여 만성 탈수를 방지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아이디어로 이 대위는 지난 2017년에 개최된 국방 스타트업 챌린지에서 1등을 영광을 차지했고, ‘도전! K-스타트업’이라는 창업 공모전에서도 국방장관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마시는 링거 아이디어는 제품 출시 전 아이디어를 공개하고 투자금을 받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와디즈’에서 1억 6000만 원을 투자 받는 대박도 터뜨렸다.
이 대위가 개발한 마시는 링거는 현재 ‘링티’라는 이름으로 제품화되어 시판 중에 있다. 링티라는 이름은 링거(linger)와 차(tea)의 합성어로서, 성상은 분말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분말 제품을 물 500ml에 섞어 마시면 링거 주사를 맞은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링티를 생산하고 있는 제조사 측의 설명이다.
현재 제조사는 링티의 미국 FDA OTC 등록을 마치고, 국내시장을 넘어 미국으로 수출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 FDA OTC는 의사 처방전 없이도 상품을 의약품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미국의 의약품 관리 및 판매 제도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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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11-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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