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의 능력은 거미줄을 이용하여 빌딩숲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는데서 나온다. 하지만 주위에 높은 건물이 없다면? 아마도 스파이더맨은 평범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거미줄을 칠 수 없는 거미는 죽은 거미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보통의 거미와는 다른 종류의 거미가 있다. 이 거미는 주위에 거미줄을 칠 수 있는 나무나 건물이 없어도 이동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는다. 바람을 타고 이동할 줄 알아서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피스오알지(phys.org)는 거미들 중에는 바람을 이용하여 이동하는 거미가 존재한다고 보도하면서, ‘크랩거미(crab spider)’라는 이름의 이 독특한 거미는 거미줄을 마치 연(kite)처럼 활용하여 바람을 탄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링크)
거미줄을 연처럼 날려 몸체를 이동하는 크랩 거미
크랩거미의 이동 능력을 연구하고 있는 곳은 독일 베를린 공대 소속의 과학자들이다. 연구진에는 우리나라 출신의 조문성(Moonsung Cho) 박사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야외와 실험실을 오가며 크랩 거미의 비행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크랩거미는 몸길이 5mm에 몸무게가 25mg에 불과한 소형 거미다. 작기 때문에 바람에 잘 날릴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거미의 몸체가 바람에 날려 먼 거리를 이동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외형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조 박사는 “처음 크랩거미가 발견됐을 때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거미가 작기 때문에 바람에 날려서 이동하는 줄 알았다”라고 언급하며 “그러나 이 거미는 놀랍게도 바람이 불 때 거미줄을 연처럼 띄워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라고 말했다.
크랩거미가 내뿜는 거미줄은 두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 번째는 바람에 날려도 서로 엉키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 모양을 띤 연처럼 떠오르다가 거미의 몸을 들어 올린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같은 거미줄이라 하더라도 평소에 나뭇가지를 연결하는 거미줄보다 훨씬 가는 형태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조 박사는 “이동을 위해 허공에 내뿜는 거미줄은 평소 나뭇가지에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 위해 만드는 거미줄보다 훨씬 가는 나노섬유 같은 거미줄”이라고 설명하며 “이같은 거미줄을 50∼60가닥 풀어 비행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의 발표에 따르면 크랩거미는 이동에 가장 적합한 바람을 고를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무 바람이나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행할 때 가장 적당한 바람을 고른다는 것이다.
바람의 상태는 거미 다리에 난 털을 이용하여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바람이 불면 크랩거미는 앞다리를 들어 올려 10초쯤 풍속을 잰다. 그리고 비행에 적당한 바람이 분다고 판단됐을 때 거미줄을 뿜으며 비행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바람을 고르는 이유에 대해 조 박사는 “조사 결과에 따르면 크랩거미는 산들바람에 가장 효과적으로 비행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라고 전하며 “일반적으로 강한 바람이 거미를 오랫동안 비행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강풍은 크랩거미를 엉뚱한 장소에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생존과 종족 번식을 위해 진화했을 가능성 높아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19세기 초 아르헨티나의 앞바다를 탐험하다가 신기한 경험을 했다. 해안에서 약 100㎞쯤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를 항해하다가 하늘에서 수천 마리의 거미가 배 위로 떨어져 내리는 기상천외한 경험을 하게 된 것.
당시 경험이 얼마나 특별했던지 다윈은 자신의 항해기에 그날의 경험담을 상세하게 남겼다. 그러면서 거미와 같은 생명체의 장거리 이동이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
실제로 화산이 폭발하거나 지진으로 인하여 바다에 새로운 섬이 생겼을 때 그곳에서 처음 발견되는 동물은 대부분이 거미들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거미들 중에는 크랩 거미외에도 7~8종의 거미들이 수백㎞에 달하는 거리를 비행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거미들은 무슨 이유로 바람을 이용하여 비행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일까. 이에 대해 조 박사는 “하늘을 나는 비행 능력은 동물이나 곤충들이 생존하고 종족을 번식시키는 일에 직결된다고 할 만큼 중요한 능력”이라고 정의하며 “날개가 있어서 장시간 비행할 수 있는 새들은 물론, 늘어진 피부를 통해 글라이더 비행을 하는 동물이나 곤충들도 이에 해당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행 능력을 갖추는 것은 진화학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다. 더군다나 거미가 곤충처럼 별도의 신체 부위인 날개를 단다는 것은 진화론에 역행하는 일일 수도 있다.
따라서 거미들 중에 일부 거미들은 생존에 적합한 서식지로 이동하거나 짝짓기를 위해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능력을 진화 과정에서 습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조 박사는 “바람을 이용하여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한 거미들은 대부분 몸체가 작은 소형 거미류들”이라고 지적하며 “큰 거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소형 거미들은 생존과 종족 번식을 위해 바람을 타고 멀리 이동하는 능력을 진화시켰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현재 베를린 공대의 연구진은 아직 규명하지 못한 궁금증, 즉 거미가 비행할 때 내뿜는 수십 개의 나노 거미줄 가닥이 서로 엉키지 않는 이유나 바람의 정도를 선별하는 털의 감지 능력 등에 대해 연구를 계속하여 이를 산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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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7-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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