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2,2019

슈퍼컴으로 생체분자 첫 설계

재생에너지, 의약, 정수 등에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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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조끼로 제작돼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해낸 고강력섬유 케블라는 어떻게 원자 수준에서 총알을 막을 수 있을까?

물질의 속성은 분자 또는 원자 구조에서 나오지만 미시(micro)와 거시(macro) 영역 사이의 수많은 세부사항들은 과학에서 아직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과학자들은 구조 역학과 환경적 신호에 대한 반응을 엔지니어링한다는 목표로, 초분자 구조를 합리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UCSD) 화학자팀은 다공성과 밀도가 다른 여러 상태 사이를 전환할 수 있는 2차원 단백질 결정체를 설계하는데 성공했다. 이 작업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계산과 실험적 연구를 결합한 최초의 생체분자 설계 사례다.

과학저널 ‘네이처 화학’(Nature Chemistry)에 발표된 이 연구는 재생 가능 에너지와 의약, 정수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재료를 창출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논문 공저자인 화학 및 생화학과 아키프 테즈칸( Akif Tezcan) 교수는 “우리는 광범위한 규모의 분자 동역학 시뮬레이션과 실험을 수행해 이 특이한 구조를 가진 단백질 결정체의 기초를 설명하는 한편 이 조립체의 구조 동역학도 변경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개발한, 다공성과 밀도 사이의 여러 상태를 전환할 수 있는 단백질 시트. 결정 격자의 세포는 사각형 형태의 모서리에서 구멍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경첩처럼 돼 있다.   Credit: Robert Alberstein et al.

연구팀이 개발한, 다공성과 밀도 사이의 여러 상태를 전환할 수 있는 단백질 시트. 결정 격자의 세포는 사각형 형태의 모서리에서 구멍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경첩처럼 돼 있다. Credit: Robert Alberstein et al.

보통 물질과는 다른 성장촉진 특성 지녀

테즈칸 교수팀은 L-RhuA(L-rhamnulose-1-phosphate aldolase) 단백질을 처리해 98번 위치(C98RhuA)의 네 개 코너에서 시스테인 아미노산으로 변형시켰다. 이들 연구팀은 이전에 이 인공 2차원 단백질 구조의 자가-조립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바 있는데, 테즈칸 교수는 이 구조물이 점점 커지는 비대성장 촉진(auxeticity)이라는 흥미로운 행동을 보였다고 말했다.

테즈칸 교수는 “이런 결정체 조립물은 실제로 일관성 있게 열리고 닫힐 수 있다”며, “보통의 물질들과는 반대로 X와 Y 방향에서 똑같이 줄어들고 늘어날 수 있어서 어떤 원인에 의해 그렇게 움직이는지를 조사해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런 성장 촉진의 예는 호버만 구(Hoberman Sphere)에서 볼 수 있으며, 이 구는 끝부분을 잡아당기면 가위처럼 생긴 경첩을 통해 확장되는 장난감 공이다.

테즈칸 교수는 “우리 목표는 단백질을 물체 구성 블록으로 사용해 고급 특성을 가진 새로운 유형의 재료 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여기서 연구하는 사례는 기본적으로 그런 노력의 결실로서 정사각형 모양의 특별한 단백질을 사용해 이를 가역적이고 경첩처럼 움직이는 화학 결합을 통해 서로 부착시켰다”며, “이에 따라 이 물질들은 유연한 화학 결합에 따라 역동적인, 매우 잘 정렬된 결정체를 형성했고, 창발적인 새로운 특성을 나타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C98RhuA 단백질 2차원 격자에서의 구멍 개폐 제어는 후속 연구를 통해 약물 전달 혹은 더 성능 좋은 배터리를 개발하는데 유용한 특정 분자 타겟을 포착하거나 방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상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키거나 어떤 생체 분자의 통과를 막고, 물을 정수시킬 수 있다는 것.

테즈칸 교수는 “우리 아이디어는 단백질을 구성 블록으로 사용해 진화가 완료된 것 같은 복잡한 물질을 만들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개발한 생체분자처럼 같은 모양으로 크기를 늘이거나 줄일 수 있는 호버만 구. 우주의 팽창과 수축을 설명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전시.  Credit: Wikimedia Commons / Ryan Somma

이번에 개발한 생체분자처럼 같은 모양으로 크기를 늘이거나 줄일 수 있는 호버만 구. 우주의 팽창과 수축을 설명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전시. Credit: Wikimedia Commons / Ryan Somma

대장균 단백질 정제해 화학 결합 유도

이들 연구팀이 수행한 방법은 먼저 대장균 박테리아(E.coli) 세포에서 단백질을 발현시키고 이를 정제한 뒤 C98RhuA 단백질 결정체를 창출할 수 있는 화학 결합 형성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 화학 결합은 산화-환원 활성 화학물질을 첨가해서 이뤄지고, 화학 결합의 산화 상태가 나타내는 기능에 따라 다양하게 달라진다.

테즈칸 교수는 “일단 결정이 형성되면 가장 큰 특징은 결정체 자체가 열리거나 닫히는 개방성과 폐쇄성을 갖게 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전자현미경으로 포착한 수 백개의 이미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확인됐다.

실험은 컴퓨터를 이용한 전체 원자 시뮬레이션과 병행해서 수행됐다. 이 시뮬레이션은 생물물리학자인 고(故) 클라우스 슐텐 교수가 일리노대(어바나 샴페인)에서 개발한 NAMD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테즈칸 교수팀은 네 개의 단백질이 함께 연결된 축소된 시스템을 사용했는데, 이 시스템은 바둑판식으로 타일이 무한히 연결돼 결정체가 어떻게 열리고 닫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테즈칸 교수는 “축소된 시스템 덕분에 이런 계산이 가능했다”며, “그 이유는 축소 시스템에서도 수십만 개의 원자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개방성에 상응하는 단일 반응 좌표를 사용하는 것처럼 C98RhuA의 고유한 특성을 이용했다. 테즈칸 교수는 “우리는 실험에서 관찰한 것을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이 모델을 실제로 검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C98RhuA 결정 격자의 전체-원자 분자 시뮬레이션을 사용해 자유-에너지 경관을 매핑했다. 논문 공저자인 프란체스코 파에사니(Francesco Paesani) 화학 및 생화학 교수는 이 에너지 경관이 계곡과 산 및 산길이 있는 자연 경관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파에사니 교수는 “계곡은 단백질 조립체의 가장 안정된 배치가 된다”며, 분자시스템이 산을 뛰어넘는 것보다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산길은 하나의 안정된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 가는 길을 나타낸다.

텍서스 고등 컴퓨팅센터의 마베릭 슈퍼컴퓨터.  CREDIT: TACC

텍서스 고등 컴퓨팅센터의 마베릭 슈퍼컴퓨터. CREDIT: TACC

XSEDE의 슈퍼컴 활용

파에사니 교수는 “일반적으로 자유 에너지 계산은 수천 개의 원자를 포함한 분자시스템의 모든 가능한 배열을 샘플링하기 때문에 매우 비싸고 문제가 있다”며, “시뮬레이션 중에 이들 원자가 얼마나 많은 위치들을 확보하는지 알려면 많은 시간과 컴퓨터 자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에사니 교수는 이것과 또 다른 컴퓨터 상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후원하는 미국 최대의 사이버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인 엑시드((Extreme Science and Engineering Discovery Environment, XSEDE)를 통해 슈퍼컴을 배정받았다.

파에사니 교수는 “다행히 엑시드에서 텍서스 고등 컴퓨터센터(TACC)의 GPU 컴퓨팅 클러스터인 마베릭(Maverick)을 할당해 주었다”고 말했다. 마베릭은 132개의 NVIDIA 테슬라 K40 ‘아틀라스’ 그래픽 처리장치(GPU)를 사용하는 고성능 원격 시각화 및 데이터 처리 자원이다.

파에사니 교수는 “우리가 사용하는 NAMD 소프트웨어가 이 GPU에서 매우 잘 작동하기 때문에 매우 유용해 규모의 순서에 따라 계산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요즘 우리는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가 모두 눈부시게 향상돼 10년 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계산이 가능하게 됐고, 엑시드가 제공하는 모든 컴퓨팅 클러스터는 실제로 분자 동역학 시뮬레이션에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슈퍼컴 계산과 실험 병행해 완벽한 시너지 효과 얻어

그는 계산과 실험을 함께 작업해 결과를 산출하는 것이 “이론과 실험 사이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훌륭한 사례”라고 덧붙였다.

그는 “실험에서 첫 번째 질문이 제기되면 이론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메커니즘을 이해하면서 문제를 해결했고, 그런 다음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사용해 예측을 하고 가설의 타당성을 시험해 보도록 실험 요청을 했다”며, “처음부터 시뮬레이션이 실험을 설명해 줬기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에 실험을 통해 예측이 확인되었고, 이것은 실험과 이론적 모델링 사이의 완벽한 시너지 효과의 사례라는 것.

테즈칸 교수는 “화학자들은 전통적으로 더욱 단순한 구성 블록으로부터 복잡한 분자를 만들기를 좋아하고, 복잡한 분자들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작은 분자들의 설계와 실험, 계산을 조합하는 일을 상상할 수 있다”며, “그러나 수십만 개의 원자로 구성된 분자에서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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