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사막화와 무분별한 도시화로 인해 농작물을 키울 농경지가 점점 감소하고 있다. 특히 해안 근처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농경지가 부족해서 자신들이 먹을 식량마저 자급자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닥치게 되면 농부들은 농사를 그만두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 농사를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그런 고정관념을 바꿔주고 있다. 시야를 바다나 호수로 돌리게 만들어, 물 속 또는 물 위에서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관련기사 링크)
바다 밑에 설치된 투명 돔에서 농작물 키워
이탈리아의 놀리(Noli)는 몇 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아름다운 해안으로 유명했던 지역이다. 그런데 2013년 이후 부터는 아름다운 해안보다 독특한 개념의 농장으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바로 해저 농장으로 불리고 있는 ‘네모스가든(Nemo's Garden)’이다.
네모스가든은 수심 8m 정도의 바다 밑에 투명한 돔을 말한다. 돔 안에는 공기가 주입되어 있고, 그 안에서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마치 온실의 유리벽이 외부 환경을 차단하여 식물을 보호해 주듯이 돔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네모스가든을 개발한 ‘세르지오 감베리니(Sergio Gamberini)’는 잠수용구 업체의 CEO다. 그는 놀리 해안 인근의 농경지가 줄어드는 상황을 보면서 더 이상 땅에서는 원하는 농작물을 재배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
농경지가 될 수 있는 땅의 대안으로 바다 속을 주목한 감베리니 대표는 식물공장 및 수경재배 등의 사례를 공부하면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식물이 살 수 있는 조건만 조성해 주면, 설사 그곳이 바다 속이라 하더라도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한 것.
그는 시제품 성격의 네모스가든을 만들면서 바다 속이 의외로 농작물을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온도 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냉방이나 난방을 해줄 필요가 없고, 물도 돔 내부의 응축된 수분을 모아주면 해결됐다.
공기만 지속적으로 주입해 주고, 가끔씩 영양분만 제공해주면 농작물을 키우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해충의 공격을 염려할 필요도 없고, 가뭄 및 홍수 같은 재해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감베리니 대표는 인터뷰에서 “네모스가든은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이며 육지 경작에 비해 더 효율적으로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신개념 식물공장”이라고 정의하며 “육지보다 훨씬 더 안정된 재배환경을 갖출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네모스가든에서 재배한 농작물의 품질을 분석해 본 결과, 육지에서 재배한 농작물과 비교하여 외형과 맛이 똑같은 반면에 철분 함량은 더 높고, 식물 성장 속도도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네모스가든의 향후 운영과 관련된 감베리니 대표의 기본적인 생각은 상업화를 앞당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실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수중 재배에 최적화된 온도나 습도는 얼마인지, 수중 몇 미터 까지 재배가 가능한 것인지 등을 파악하기 위한 실험 등이 이에 해당된다.
물론 긍정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지적을 많이 받는 부분은 역시 경제성이다. 작물 재배에 소요되는 비용이 지상에서 키우는 것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점에 대해 감베리니 대표는 뚜렸한 답을 내놓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다만 감베리니 대표는 농작물이 수중 식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도 활용될 수 있고, 물고기 양식과 수경재배를 융합한 ‘아쿠아포닉(aquaponics)’ 산업의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 네모스가든의 앞날이 밝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면 위에서 농작물 재배하는 부유식 텃밭
네모스가든이 수면 아래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재배 시스템이라면, 시리프(Sealeaf)는 수면 위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시스템이다.
영국의 젊은 벤처기업가들이 개발 중인 이 수상(水上) 재배 시스템은 땅과 물이 부족한 해안 도시에서도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부유식 텃밭(floating paddy)’이다.
4명의 벤처기업가들로 구성된 개발팀의 리더를 맡고 있는 이드리스 라졸리(Idrees Rasouli) 대표는 “해수면 상승과 인구 증가로 인해 농사를 지을 땅이 없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바다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히며 “시리프는 바다 위에서도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소개했다.
시리프는 공기 튜브가 장착된 소형 보트(boat)다. 보트에는 농작물이 자랄 수 있는 투명 캡슐이 실려 있다. 또한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어서 이 에너지로 캡슐 내의 LED 등을 밝히고, 온도도 조절한다.
캡슐이 투명하기 때문에 낮에는 태양광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밤에는 LED 등을 밝혀 24시간 내내 식물이 빛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물도 빗물을 그대로 받아서 사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및 수분 제공을 위해 사람이 일일이 관여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 같은 시리프를 수십 개씩 연결하면 마치 바다 위에 논이 펼쳐진 것처럼 거대한 작물 재배 시스템이 완성된다. 이렇게 해안 근처에 수십에서 수백 개의 시리프가 마련되면 농부는 어부가 배를 타고 양식장을 관리하는 것처럼 수시로 배를 타고 시리프를 관리할 수 있다.
라졸리 대표는 “농부가 바다로 배를 타고 시리프로 다가간 다음, 수면위에서 자라는 배추와 상추를 따는 모습을 상상해보라”라고 흥분하며 “멀지 않은 미래에는 많은 농부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농사를 짓는 진풍경을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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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4-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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