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독일인 살라자르 씨는 부엌 식탁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친구들을 위해 ‘치킨 타코’를 만들고 있었다. 부엌에는 스피커 형태의 인공지능(AI) 개인비서 기기인 ‘구글 홈(Google Home)’이 놓여 있었다.
살라자르 씨는 ‘구글 홈’에게 20분 동안의 타이머를 설정할 것을 주문했다. 치킨 타코가 완성될 때까지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서다. 이를 본 친구들이 웃으며 ‘구글 홈’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농담을 나누는 친구도 있었다.
최근 SNS에 공개된 이런 모습은 기업들 역시 꿈꾸는 모습이다. 이전까지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 보통 중심이 되는 곳은 거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구글 홈’과 같은 개인비서가 등장하면서 부엌에 친구들이 모이게 된다는 컨셉이다.
첨단기기, 아직 전통 부엌문화 대체하지 못해
부엌에 모여 AI 개인비서와 함께 음식을 만들고, 또한 AI 개인비서와 함께 즐겁게 담화를 나누면서 새로운 부엌 풍속도를 만들어가자는 것이 기업들이 최종 목표다. 실제로 기업들은 지난 수년간 ‘부엌에서의 단란함(togetherness)’을 주제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왔다.
터치 스크린이 부착된 냉장고, 스마트 식기세척기, 인공지능 스크린이 달린 조리대 등 ‘스마트 키친(smart kitchen)’과 관련된 기기들이 연이어 개발되고 있다. AI 개인비서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중이다.
26일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그러나 첨단화된 키친이 대중들로부터 받아들여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전통적으로 부엌은 다른 영역과 격리돼 편안하게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족의 안식처 역할을 해왔다.
그런 만큼 많은 사람들이 새로 등장한 부엌 개념을 받아들일지에 대해 의문이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팍스 어소시에이츠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스마트 키친’을 설치한 미국 가정이 현재 5%에 불과하다.
2014년 3%에서 2% 포인트가 늘어났는데 그동안 기업들의 노력에 비추어 매우 빈약한 결과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저명한 기술 분석가인 마이클 울프(Michael Wolf) 씨는 기업들의 이런 노력에 대해 매우 부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스마트 기기를 통해 전통적인 부엌 문화를 대체할 새로운 부엌 문화를 창출하는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며,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회의주의적인 시각을 강하게 내비쳤다.
울프 씨는 많은 주부들이 가정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부엌의 리듬과 패턴을 바꾸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설치에 많은 비용이 드는 점 역시 ‘스마트 키친’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원인이다.
우려 속에서 ‘스마트 키친’에 기술투자 이어져
‘스마트 키친’을 구성하는 기기들의 가격이 기존의 가전제품보다 훨씬 더 비싼데다 고장이 날 경우 고치기가 어려워 훨씬 더 많은 비용이 추가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터치스크린과 같은 기기가 고장 날 경우 비싼 부품 값을 지불해야 한다.
더구나 카메라, 마이크로폰, 디지털 보안기기, 인터넷 커넥션 기기 등이 고장 났을 때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안전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복잡한 구조들이 주부들 사이에 불안감을 조성하고 ‘스마트 키친’을 기피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
내구성 역시 주부들을 안심시키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많은 기술전문가들은 ‘스마트 키친’을 구성하고 있는 첨단기기들이 주부들이 안도할 만큼 5년 이상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많은 주부들이 ‘스마트 키친’ 도입을 미루고 있는 중이다. 오히려 스마트 기기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한 주부는 “첨단 기기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하는 디지털 중독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5세와 7세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그녀는 “가족들이 식사를 하면서 계속해 냉장고에 설치된 영상을 쳐다보게 할 수 없다.”며, 새로운 키친 문화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명했다. 전통적인 부엌 문화를 고수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스마트 키친’ 시장의 미래를 밝게 보고 있는 분위기다.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오는 2020년 세계 가전시장 규모는 2534억 달러로 2014년 1750억 달러에 비해 44.8%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업들은 특히 ‘스마트 키친’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데 변화하는 부엌 문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중이다. 이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기업 중 대표적인 기업이 삼성이다. 최근 스마트 냉장고 ‘패밀리허브(Family Hub)’를 선보였다.
삼성이 내보내고 있는 광고에서는 ‘패밀리허브’가 주방을 식사와 요리의 공간이 아닌 가족 생활의 중심 공간으로 만들어 새로운 일상을 선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안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능이 다수 담겨 있다.
가족이 일정을 공유할 수 있는 ‘스티키보드(Stickiboard)’, 집 밖에서 스마트폰으로 냉장고 내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푸드알리미’. 그림을 그리고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화이트보드’ 등 냉장고를 넘어선 기능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보슈의 경우는 삼성보다 매우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은 기기를 계속 생산하면서 ‘스마트 키친’ 시장의 동향을 관망하고 있는 중이다. 보슈의 안냐 프레셔(Anja Prescher) 마케팅 디렉터는 “아직 주부들이 복잡한 기기를 싫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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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3-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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