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설명하는 말로 ‘병 주고 약 준다’라는 속담만큼 적당한 말이 또 있을까. 하루 종일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을 봐서 목과 허리를 거북목처럼 구부정하게 만들거나, 스마트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주위의 어떤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스몸비(smombie)를 만드는 것은 분명 스마트폰이 사람에게 제공하는 ‘병’이다.
하지만 ‘약’을 줄 때도 있다. 혈압이나 혈당 관련 측정치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사용자가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알려주거나, 무겁고 값비싼 초음파 측정기를 대신할 수 있는 휴대용 초음파 측정기로 활용할 수 있는 등 의료기 같은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링크)
센서로 손가락에 분포한 혈관 내 압력 측정
혈압은 건강의 지표인 만큼 틈틈이 측정하여 정상 수치를 유지하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병원에 가보면 혈압계 사용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혈압 측정을 위해 두르는 띠가 자신의 팔을 조이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불편한 기분을 느낄 필요 없이 간단하게 손가락을 통해서만 혈압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측정을 위한 준비도 간단하다. 스마트폰에 케이스만 씌우면 끝난다.
혈압계는 이미 휴대용으로 개발되어 있지만 가방에 넣은 채 그냥 들도 다니기에는 부피나 무게가 만만치 않다. 더군다나 기다란 팔띠가 부착되어 있어서 측정기와 함께 들고 다니려면 번거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 미시간주립대의 연구진이 개발한 혈압 측정기는 스마트폰에 씌우는 케이스에 탑재할 수 있으므로 간편하게 소지하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원리도 간단하다. 손가락 끝을 통해 손바닥을 횡단하는 동맥의 압력을 측정하여 혈압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번 기술을 주도적으로 개발한 컴퓨터공학과의 '아난드 챈드라세커(Anand Chandrasekhar)' 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혈압 측정을 위한 회로와 센서는 1cm 정도 두께의 케이스에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 후면에는 손가락 마디 크기의 센서가 형성되어 있는데, 사용자는 측정 앱을 실행시킨 후 손가락 끝을 이 부위에 대고 누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챈드라세커 연구원은 “케이스 내에는 ‘장력 센서(force sensor)’가 들어있는데, 이 센서가 손가락에 분포한 혈관 내의 압력을 측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30명 정도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혈압을 측정해 본 결과 90% 정도의 정확도를 보였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방식은 혈압 측정 센서를 지문센서처럼 작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기 때문에, 이런 장점을 이용하면 손목 밴드나 스마트 시계 형태의 혈압 센서 제작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손가락으로 혈압을 측정할 수 있는 이 신개념 의료기에 대해 업계는 정확도가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아주 정확하게 혈압을 측정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큰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상 범위가 아니라는 것만 알려줘도 환자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확한 혈압 수치는 아니라도 만약 고혈압 환자가 스마트폰으로 정상 범위를 넘어서는 혈압을 계속 측정하게 된다면 혈압약을 먹거나 병원을 방문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음파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는 컴퓨터칩이 핵심
미시간주립대가 스마트폰으로 기존 혈압계가 가지고 있던 불편함을 개선했다면 미국의 한 의료기기 스타트업은 스마트폰으로 혁신적인 휴대용 초음파 측정기를 개발 중이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버터플라이네트워크(Butterfly Network)社가 개발 중인 이 휴대용 초음파 기기의 이름은 ‘버터플라이 아이큐(Butterfly iQ)’다. 개발사의 설명에 따르면 아이폰과 연결하여 태아 및 심장, 그리고 근골격 등의 일반적인 검사는 물론 암까지도 진단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설명은 실제로 이 스타트업에서 수석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존 마틴(John Martin)’ 박사에 의해 사실로 검증됐다. 외과의사이기도 한 마틴 박사는 “버터플라이 아이큐로 테스트를 하다가 목에 거북함을 느껴 자신의 목을 검사한 결과 종양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경우 몸에 이상을 느끼더라도 시간을 내기 어려워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고, 병원을 방문한다 하더라도 검사를 받는 데 있어 많은 시간이 걸린다”라고 전하며 “하지만 자신은 버터플라이 아이큐를 통해 신속하게 자가 검사를 함으로써 암을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 시작 시점을 앞당길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스마트폰만으로도 신체 부위를 구석구석 살피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스마트폰 화면에 초음파 이미지를 생성시킬 수 있는 ‘초음파 온 칩(UoC)’ 덕분이다. UoC(Ultrasound on a Chip)는 초음파 측정기가 촬영한 영상 이미지들을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든 컴퓨터칩이다.
이처럼 버터플라이 아이큐의 장점은 신속성과 혁신성에 있지만, 가장 놀라운 부분은 가격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대당 가격이 2000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보통 초음파 측정기가 수천만 원에서 1억 원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거의 가격파괴에 가깝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출시 예정인 버터플라이 아이큐는 의료 전문가용으로만 개발됐기 때문에 일반인은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조만간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선보일 예정인데, 이를 위해 측정 결과가 어떤 질환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인공지능 기능까지 탑재시킨다는 계획이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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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3-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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