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는 환경을 어떻게 파악하고 인체 등에 침입해 감염을 일으킬까.
박테리아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감각 기관이 없으나 환경을 인지한다. 미국 인디애나대와 스위스 바젤대 연구진은 박테리아가 화학적 신호에 반응할 뿐 아니라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또한 특유의 방법으로 표면 접촉을 감지하며, 다세포 구조인 생물막(biofilm) 형성을 촉발시켜 상하수도 시스템과 같은 중요 인프라에 감염 위험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27일자에 발표됐다.
접촉 수초 안에 침투 준비 마쳐
바젤대 비오젠트룸(Biozentrum) 연구그룹 우르스 예날(Urs Jenal) 교수팀은 이번 연구에서 박테리아가 표면과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어떻게 인지하고, 표면의 기계적 자극에 대해 몇 초 내에 반응하며 그 몇 초 동안에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표면 인식 및 반응 메커니즘은 병원균이 숙주세포를 공격, 장악하기 위해 사용된다.
박테리아는 점막이나 장 내피를 통해 침투하는데, 우리 몸의 조직들과 표면은 병원균이 진입하는 문이다. 처음 접촉하는 순간의 몇 초가 ‘성공적인 감염’을 위해 중요하다. 일부 병원체는 이 접촉에서 얻는 기계적 자극을 병독성을 일으키고 숙주 조직에 손상을 가하는 방아쇠로 사용한다.
대부분의 연구가 화학 신호에만 초점 맞춰
최근 수십 년 간 진행된 연구는 박테리아가 어떻게 화학 신호를 인지하고 처리하는가에 집중돼 있었다. 예날 교수는 "그럼에도 우리는 세균이 기계적 자극을 읽어내는 방법과 이런 신호에 반응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그동안 거의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에서 "병원성이 없는 카울로박터(Caulobacter)를 모델로 사용해 박테리아가 ‘촉감’(sense of touch)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고 말하고, “박테리아는 이 메커니즘을 통해 접촉한 세포의 표면 상태를 인식하고 ‘순간 접착제’를 분비하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박테리아는 어떻게 표면을 인지하고 그것에 달라붙나
자루세균의 한 속인 카울로박터 박테리아는 편모가 길게 돌출된 세포 외피에 회전하는 모터를 가지고 있다. 액체 속에서 이 회전하는 편모를 이용해 움직인다. 연구진은 놀랍게도 이 회전자가 기계적 감지기관(mechano-sensing organ)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터 회전은 이온 채널을 통해 양성자가 세포 속으로 흘러감으로써 구동된다. 유영하던 세포가 표면에 닿으면 모터 구동이 방해를 받게 되고 이때 양성자의 흐름이 차단되게 된다.
연구팀은 이것이 반응을 촉발시키는 신호라고 본다. 박테리아 세포는 이때 세컨드 메신저의 합성을 증가시키고, 이어 표면에 박테리아를 단단히 고정시키는 부착물질 생성을 자극한다. 예날 교수는 "이는 박테리아가 표면과 접촉했을 때 얼마나 빨리 그리고 구체적으로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박테리아 ‘속여서’ 핵심적인 관찰 수행
미국 인디애나대 이브 브런(Yves Brun) 교수팀은 박테리아가 인체에 주요한 건강문제를 일으키는 생물막을 촉발시키는 방법을 밝혀내는 한편, 박테리아를 ‘속여서’ 표면을 감지하고 있다고 인식하게 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박테리아가 만드는 생물막으로 인한 질병은 인체 감염의 약 65 %를 차지하고 매년 수십억달러의 의료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추산된다. 또 정기적으로 전세계에서 콜레라가 발생하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생물막 가운데는 소화를 돕거나 환경 유기물 분해와 같은 유익한 종류도 있다. 그러나 물 여과 시스템을 막히게 하거나 화물선 선체에 달라붙어 속도를 떨어뜨림으로써 미국에서만 연간 2000억 달러의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진다.
브런 교수팀은 박테리아가 표면을 감지하는 것을 속이기 위해 필리(pili)로 불리는 편모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유기 화합물인 큰 말레이미드(maleimide ) 분자를 부착했다. 이는 구멍을 통해 중간에 매듭이 있는 로프를 당기려고 하는 것과 같다.
생물막으로 인한 피해 예방에 활용
이 발견은 연구팀이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박테리아가 어떻게 생물막을 퍼뜨리기 위해 필리를 사용하는지 정확히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연구팀은 작은 말레이미드 분자 뒷면에 형광 염색을 입혀 필리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논문 제1저자인 코트니 엘리슨(Courtney Ellison)은 “필리의 행동에 영향을 주지 않고 필리를 구성하는 아미노산인 수많은 필린스(pilins)의 아미노산을 시스테인 분자로 대체하는 공학적 작업이 가장 큰 과제였다”고 밝혔다.
논문 공저자인 앵커 달리아(Ankur Dalia) 생물학 조교수는 “이번 연구에서는 또 콜레라균(Vibrio cholera)이 생성한 세 종류의 필리를 시각화하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다"며, "필리는 비브리오 병독성의 여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고, 우리는 이 강력한 도구를 사용해 병원균들이 필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브런 교수팀은 앞으로 필리의 운동성과 생체접합물질 생산을 연결하는 정확한 메커니즘을 밝혀볼 계획이다. 두 프로세스가 관련은 있어 보이지만 아직 연결과 관련한 정확한 특성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런 교수는 "생물막 형성 및 병독성에서 필리의 역학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수록 인명과 재산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김병희 객원기자
- kna@live.co.kr
- 저작권자 2017-10-27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