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시대 동굴벽화가들이 1만5000년 전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들소와 가축소의 교배종을 동굴 벽에 세밀하게 묘사해 놓았다는 사실이 고생물 DNA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힉스 입자와 같이 찾아내기가 어려워 연구자들이 ‘힉스 바이슨’(Higgs Bison)이라 이름 붙인 이 미스터리 종은 12만년 전 지금은 멸종된 몸집 큰 야생 소(현재 가축소의 조상)와 빙하시대 스텝 들소와의 교배를 통해 탄생했다. 빙하시대 스텝 들소는 당시 유럽에서부터 멕시코에 걸쳐 추운 초원에 분포해 있었다.

존재 알기 어려워 힉스입자 빗대 ‘힉스 들소’로 불려져
호주 애들레이드대 ‘고대 DNA 호주 센터(ACAD’는 최근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연구에서 이 미스터리 교배종이 현재 폴란드와 벨라루스 사이의 유네스코 등재 환경보호구역인 비알로비자 삼림지대(Białowieża forest)에 서식하는 유럽 야생들소의 조상이 되었다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앨런 쿠퍼(Alan Cooper) ACAD 원장은 “교배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것은 포유류에서는 실제로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라며, “고대 들소 뼈에서 채취한 유전자 신호가 매우 특이해서 실제로 존재했던 종인지 의심이 들었으나 이것이 바로 미스테리로 남아있던 힉스 바이슨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대(UCSC)와 폴란드 들소 보존 연구자, 유럽과 러시아의 고생물학자들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들소 집단의 유전적 역사를 추적하기 위해 유럽과 우랄, 코카서스 지역의 동굴들에서 발견한 뼈와 이빨을 방사성탄소 측정법으로 연대를 확인한 후 DNA를 추출해 연구했다.
스텝 들소와 교대로 유럽 초원 지배
연구팀은 많은 들소 뼈 화석에서 독특한 유전 신호를 발견했는데, 이 들소들은 유럽 야생들소나 알려진 다른 어떤 종과도 매우 달랐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 분석에 따르면 이 미스터리 종은 고대 여러 시점에서 수천년 동안 유럽지역을 지배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텝 들소로 교체돼 갔다. 스텝 들소는 유럽에서 후기 빙하기시대까지 살아남았던 유일한 야생들소 종으로 알려져 있다.
논문 제1저자인 애들레이드대 줄리언 소브리에(Julien Soubrier) 박사는 “들소 뼈들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새로운 종과 스텝 들소는 기후변화에 따라 환경이 바뀌면서 교대로 유럽지역에서 번성했었다”며, “프랑스 동굴 연구자들에게 질의해 보니 빙하시대 동굴에는 실제로 분명하게 구별되는 두 가지 형태의 들소 그림이 있다고 답변해 두 종의 생존 연대가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동굴 벽화에는 뿔이 길고 몸통 앞부분이 큰 종류(스텝 들소의 후손인 지금의 아메리카 들소와 비슷한 모양)와 상대적으로 뿔이 짧고 등의 혹도 작은 현대의 유럽 들소와 유사한 종류 두 가지가 그려져 있다.
발견 15년 만에 전모 확인
쿠퍼 교수는 “새로운 교배종이 형성된 후 이들은 성공적으로 살아남아 유전적 특성을 보존했다”며, “따뜻한 여름이 없는 약간 추운 툰드라와 같은 시기들에 번성했으며 거대동물 멸종기에 살아남은 유럽에서 가장 큰 동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 들소들은 현대 유럽 들소의 조상이면서도 유전적으로 다른 특성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1920대 현대 유럽 들소가 12마리밖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의 멸종위기를 겪으면서 유전적 병목 현상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2001년 옥스퍼드대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 미스터리 종을 처음 언급한 UCSC의 베스 샤피로(Beth Shapiro) 교수는 “15년이 지난 후 마침내 이 미스터리 종에 대한 전모가 밝혀졌다”며, “놀랄 만한 우여곡절이 담긴 정말 긴 여행이었다”고 감회를 밝혔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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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10-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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