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SARS)와 에볼라(Ebola), 그리고 메르스(MERS)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박쥐가 숙주 동물이라는 점이다. 사스는 관박쥐가 옮겼고, 에볼라와 메르스의 경우 각각 과일박쥐와 이집트무덤박쥐를 통해 전파되었다.
박쥐가 치명적 전염병의 대부분을 옮기는 매개체라는 점도 관심거리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어떻게 그 수많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죽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강력한 면역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었다.
최근 호주의 과학자들이 이 같은 비밀을 풀 수 있는 박쥐의 선천성 면역 시스템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종합 매체인 '데일리메일'(Dailymail)은 호주 연방과학원(CSIRO)의 연구진이 박쥐 면역력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링크)
바이러스에 대한 적응력 길러
박쥐가 다양한 종으로 분화한 것은 약 5천만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5천만 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치면서, 박쥐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적응력’ 같은 독특한 생존전략을 터득하게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박쥐와 바이러스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연구논문으로는 3년 전 미 콜로라도주립대 연구진이 발표한 ‘박쥐 체내의 바이러스 분석 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박쥐에게는 총 137종에 이르는 바이러스가 살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인수공통 바이러스가 61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다시 종별 평균으로 산정하면 박쥐는 2.71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으며, 이 중에서 인간에게 옮길 수 있는 바이러스는 평균 1.79종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수치는 인간에게 제일 많은 전염병을 퍼뜨린다고 알려진 쥐보다도 많은 것이다. 쥐를 포함한 설치류의 경우 평균 2.48종의 바이러스를 갖고 있으며, 이 가운데 1.48종이 인수공통 바이러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쥐가 바이러스를 가장 많이 가진 동물이 된 이유에 대해, 콜로라도주립대 연구진은 이들의 군집 생활 방식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박쥐는 보통 동굴이나 폐광 등을 보금자리 삼아 한 장소에 무리지어 살기 때문에, 그 중 한 마리만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무리 속으로 급속하게 전파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항상 활성화되어 있는 박쥐의 면역 시스템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바이러스가 우글대는 몸을 가지고도 박쥐는 어떻게 병에 걸리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것일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CSIRO의 미첼 베이커(Michelle Baker)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검정날여우(black flying fox)라는 이름의 박쥐를 대상으로 선천성 면역 시스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이 중점을 둔 부분은 박쥐의 선천성 면역을 담당하는 알파(α) 인테페론을 분석하는 과정이었다. 이 인터페론은 생리적 면역력을 높이는 물질로서, 생성량이 많을수록 선천성 면역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연구진이 분석 과정에서 밝혀낸 박쥐 면역력의 비밀은 인터페론이 항상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베이커 박사는 “이런 현상이 아마도 박쥐들이 선천적으로 강한 면역력을 지니게 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체내에 면역 시스템이 존재해도 심각한 상처나 감염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는다. 항상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 외부의 감염원으로부터 안전할 수는 있겠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면역 시스템이 항상 활성화되어 있다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소모시켜야 하고, 또한 끊임없이 발생하는 염증 반응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커 박사는 “박쥐의 경우 아마도 수많은 병원체에 감염되기 쉬운 환경에 사는 것이 면역 시스템의 활성화를 촉진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하면서 “이와 같은 박쥐의 슈퍼 면역력을 연구하는 과정이 신종 전염성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 및 치료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한편 박쥐의 비행 능력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길러준다는 이색적인 주장도 제기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박쥐가 빠른 속도로 날아다닐 때 몸에서 열이 많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체온이 다른 포유류보다 2~3도 높은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백혈구 같은 체내 면역물질이 대부분 높은 온도에서 활성화되는 만큼, 활성화된 면역물질 덕에 박쥐의 면역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박쥐의 유전자 복구 시스템이 면역력 향상에 한몫을 했다는 주장도 학계에 보고된 상태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DNA가 손상될 것에 대비하여, 돌연변이가 생긴 DNA를 복구하는 시스템이 발달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 김준래 객원기자
- stimes@naver.com
- 저작권자 2016-03-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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