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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안종주 과학저술가
2016-03-02

지카바이러스 둘러싼 음모론들 1980년대 '에이즈 음모론' 떠올리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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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를 중심으로 지카바이러스병이 확산하면서 바이러스의 기원과 유행 원인을 둘러싸고 온갖 주장과 음모론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1980년대 대유행을 시작한 에이즈 바이러스의 기원을 둘러싸고 당시 벌어졌던 주장과 음모론을 다시 보는 듯한 기시감(旣視感), 즉 데자뷔를 느끼게 한다.

에이즈 음모론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책
에이즈 음모론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책 <에이즈는 없다> ⓒ Free Photo

먼저 지카바이러스병과 관련해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루머는 생명공학과 관련한 것이다. 영국의 곤충 바이오기술회사인 옥시텍(Oxitec)이 유전자조작(GM) 모기를 방사하면서 지카 위기가 촉발됐다는 것이다. 이 회사가 빌 게이츠가 설립한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으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고 있다는 내용이 더해진 루머도 돌고 있다.

옥시텍의 GM 모기는 항생물질인 테트라사이클린(tetracycline)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유전적 특징을 갖는다. 즉, 야생 암컷이 GM 수컷과 알을 낳으면, 유충은 성충이 되기 전에 죽는다. 음모론은 옥시텍이 연구를 위해 테트라사이클린을 지닌 상당 수의 모기를 풀어줬다는 것이다.

1980년대 에이즈 음모론과 비슷

에이즈 유행 때도 이와 유사한 주장이 나와 시끄러웠다. 에이즈가 본격 유행을 시작한 때인 1980년대 초반은 미국에서 생명공학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탄생해 각종 변형 미생물을 실험실에서 만들고 유전자를 조작한 미생물에서 사람 인슐린(Humulin)과 성장호르몬 따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생명공학 연구실에서 각종 바이러스를 이용해 유전자 조작 실험을 하다가 우연히 에이즈 바이러스가 탄생했고 이것이 실험실 밖으로 퍼진 것이 아닌가 주장하는, 이른바 에이즈 ‘바이오 테크놀로지설’이 나왔다.

지카바이러스 우생학 음모론에 휘말린 빌 게이츠 ⓒ 위키미디어
지카바이러스 우생학 음모론에 휘말린 빌 게이츠 ⓒ 위키미디어

최근에는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등 다수의 외신들이 ‘농작물에 농약이 살포된 마을들의 의사들(Physicians in Crop-Sprayed Towns)’이라는 이름의 아르헨티나 의사단체가 내놓은 보고서를 인용보도하면서 브라질에서 갑자기 소두증 환자가 늘어난 이유로 ‘피리프록시펜’이라는 성분이 포함된 살충제를 지목했다. 이 살충제는 다국적 씨앗 기업이며 세계적 생명공학 회사인 몬샌토의 제휴 업체로 알려진 일본 스미토모화학에서 만든 것이다. 브라질 정부가 2014년부터 모기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이 살충제를 대량 살포해 식수를 오염시켰으며 이 식수를 먹은 임신부가 출산한 아이들에게서 소두증이 생겼다는 것이다.

<에이즈는 없다>는 책까지 펴낸 음모론 신봉자들

소두중이 바이러스가 아닌 다른 원인이라는 이런 주장과 흡사한 것이 에이즈에도 있었다. 에이즈는 에이즈바이러스(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에 의한 것이 아니며 이 바이러스는 검출된 적도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에이즈는 없다>는 책까지 내며 에이즈란 질병과 원인 바이러스가 없는데도 이를 일부 의사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엉터리 약으로 돈 벌기 위해 이를 꾸민 것이란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 책은 2003년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에이즈재평가를위한인권모임이 우리말로 번역해 펴낸 바 있다.

넬슨 만델라에 이어 1999년부터 10년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통치한 음베키 대통령은 에이즈는 바이러스병이 아니라는 이런 음모론을 믿고 한동안 에이즈에 걸린 임신부에게 에이즈 치료제를 투약하지 않고 마늘, 비트, 감자로 치료하다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기들이 수천 명이나 태어나도록 만들었다. 이로 인해 남아공의 에이즈 비극은 더욱 가중됐다.

지카 바이러스 확산은 열등한 인구 억제와 관련이 있다는 우생학 음모론도 있다. 바이러스의 최대 희생자가 임신부라는 점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정부는 2014년 말 임신부를 상대로 하는 기초 백신접종에 DTaP(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를 추가했다. 이후 몇 달 뒤에 소두증 사례도 급증했다. 이 백신은 빌 게이츠가 만든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지원한 것이다.

에이즈 유행 때도 지카 유행 때처럼 우생학 음모론 나와

가난한 중남미 나라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 지카바이러스를 퍼트렸다는 우생학 음모론의 데자뷰는 에이즈 확산 때도 있었다. 외계인이 로스웰에 우주선을 타고 불시착했지만 미국 정부가 이를 은폐했다는 음모론 글로 유명한 밀턴 윌리엄 쿠퍼라는 저명한 편집적 음모 이론가는 미국에서 에이즈가 확산되자 흑인과 동성애자를 줄이기 위한 음모라는 주장을 했다. 로버트 캐롤은 <회의주의자 사전>에서 쿠퍼에 관한 이런 이야기를 자세하게 담았다.

지카바이러스가 록펠러재단의 비밀 연구소에 있던 원숭이로부터 만들어졌고 현재 미국균주은행(ATCC)에는 지카 바이러스 샘플이 있어 온라인으로 주문이 가능하며 누군가가 여기서 이 샘플로 받아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지카 유행설도 떠돌고 있다.

이와 유사한 주장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생물무기 개발 기원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베트남전쟁에서 사용하기 위한 바이러스 무기이며 개발 과정에서 죄수를 상대로 인체실험이 이루어졌고 나중에 석방된 죄수가 미국 사회에 이를 전파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에이즈 바이러스 생물무기설은 냉전시대였던 1980년대 소련이 벌인 반미전술의 결과였다. 소련은 1980년대 초 미국에서 에이즈가 유행하자 “에이즈는 난잡한 성행위와 도덕의 퇴폐가 원인이 돼 발생한 자본주의 사회 특유의 전염병”이라며 사회주의 우월성을 자국민들에게 선전했다.

대개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면 음모론이 활개를 친다. 논문 사기로 황우석 박사의 명예와 도덕성이 추락하자 이를 한국의 줄기세포 기술 발전을 방해하기 위한 미국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지 않은가.

음모론은 치명적 감염병 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건이나 대형 재난 등이 발생할 때마다 등장하곤 한다. 존 에프 케네디 암살, 영화의 소재로 종종 등장하는 외계인 파충류의 지구 지배, 외계인과 UFO, 세계 질서를 지배하는 프리 메이슨 조직과 일루미나티(illuminati, 光明派) 추종자 등을 통해  많은 이들이 음모론을 접하고 있다. 대부분 흥미 차원에 머물지만 음모론을 진실로 믿는 사람들도 있다. 에이즈 기원을 둘러싼 음모론 확산 때처럼 지카바이러스 음모론과 루머 확산에도 국내외 언론이 관여돼 있다.

이러한 음모론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역시 과학뿐이다. 지카바이러스와 소두증과의 인과관계 등을 하루빨리 명쾌하게 밝혀내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춤추는 루머와 억측, 음모론도 결국 제풀에 지칠 게 분명하다.

한 농민이 경작지에 제초제를 뿌리기 위해 방독마스크를 쓴 채 몬샌토 농약을 탱크에 붓고 있다. 브라질에서 태어나고 있는 소두증 아기들은 지카바이러스가 아니라 몬샌토 살충제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와 이 기업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 위키미디어
한 농민이 경작지에 제초제를 뿌리기 위해 방독마스크를 쓴 채 몬샌토 농약을 탱크에 붓고 있다. 브라질에서 태어나고 있는 소두증 아기들은 지카바이러스가 아니라 몬샌토 살충제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와 이 기업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 위키미디어

 

안종주 과학저술가
저작권자 2016-03-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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