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컴퓨터 만큼 지금 사람들의 생활을 바꿔놓은 괴물은 없을 것이다.컴퓨터는 모든 인류의 일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컴퓨터를 끼고 살지만, 때로는 궁금증을 느낀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컴퓨터라는 괴물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너무나 흔하고 광범위하다 보니 너무나 많은 설명이 범람하지만, 홍수 때 마실 물이 귀하다는 말처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컴퓨터의 진면목을 알기는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다.
‘컴퓨터과학이 여는 세계’를 읽으면, 꽤 많은 궁금증과 의문이 풀린다. 컴퓨터가 탄생한 그 배경을 너무나 잘 요약하고 알기 쉽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생각을 조립하는 3개의 접속사는?
저자인 이광근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오늘날의 컴퓨터가 있게 한 사람으로 조지 부울(George Boole 1815~1864)과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를 우선 꼽았다.
부울은 39세이던 1854년, 우리나라의 철종 5년 전봉준이 태어난 해에 ‘생각의 법칙에 대한 탐구’를 발표했다. 부울은 생각은 조립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람의 생각이란 것이 세 개의 접속사만으로 충분히 조립된다고 봤는데 그 세 접속사는 그리고(and) 또는(or) 아닌(not)이다. 이렇게 조립된 생각이 거짓인지 참인지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정리한 것이 ‘생각의 법칙에 관한 탐구’이다. 여기에서 부울대수가 나오면서 수학적인 증명의 복잡한 수식이 태어났다고 한다.
마라톤 선수 손기정과 같은 해에 태어난 튜링은 기계장치를 가지고 컴퓨터의 원형을 만든 사람이다. 오늘날 튜링상을 컴퓨터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튜링기계는 논리적인 내용을 기계적으로 바꾸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부울이 정리한 논리연산이 결국 스위치 회로와 똑같이 대응한다는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 1916~2001)의 ‘릴레이와 스위치 회로를 기호로 분석하기’ 논문이 나오면서, 컴퓨터는 기계장치에서 세계적인 공학의 수준으로 올라오면서 컴퓨터의 구현을 가속화했다는 점을 이 책은 잘 설명한다. 섀넌은 특히 정보이론을 발표해서 대용량의 정보가 잡음이나 끊어짐 없이 전달되는 기초를 놓았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에게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다. 너무나 복잡한 수식이 자주 나오는 점이다. 이럴 때면 고등학교 때 수학시간에 고문당한 불쌍한 뇌가 생각난다.
▲수없이 무한대로 잘게 짤랐대 - 미분
▲그렇게 자른 것을 차곡차곡 모았다는군 - 적분
필자가 아는 미분과 적분은 이것 뿐이다. 수없이 무한대로 잘게 나눌 수가 있는 것인지, 자를 땐 칼로 자르는지 가위로 자르는지, 그 작은 것을 차곡차곡 모을 수 있는 것인지,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이 공식으로 제대로 표현됐는지 끝끝내 이해를 못하고 지난다.
컴퓨터과학이 여는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칙연산(+ - × ÷)만 이용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상한 기호로 가득한 수식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해불가할 것이다.
그러나 미적분이 쪼개서 더한다는 그 개념만 이해해도 상식이 높아지고 이방인처럼 느끼지 않듯이, 컴퓨터가 부울이라는 수학자의 논리에 튜링이라는 천재가 만든 기계장치를 결합해서 만든 논리적인 기계장치에서 시작했다는 정도만 이해해도 컴퓨터가 그렇게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도 사례별로 알기 쉽게 설명해놓았다. 그 중 하나가 암호에 관한 내용이다. 돈을 이체할 때 누가 해킹해서 가로채면 어떡하나 하는 의문을 한 두 번 쯤 했을 것이다. 이 책은 해킹해도 알 수 없는 원리를 설명해놓았으니 안심해도 될 것이다. 물론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기존의 암호 체계를 푸는데 수 억 년이 걸리던 것이 불과 몇 분 만에 풀리기 때문에 새로운 암호체계가 나와야 한다.
이렇게 발전한 컴퓨터는 이미 어마어마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컴퓨터의 미래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다.
‘사람의 지능은 몸에 담은 지식의 양도 아니고, 자동차 운전도 바둑도 인간 고유의 지능이 아니게 됐다. 그렇다면 아직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지능은 무엇일까?’
저자는 상상력, 의심, 질문하기, 창조력 등을 꼽았다. 컴퓨터와 인간은 각자 고유한 능력으로 콤비가 되어 예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성취해 갈 것으로 전망했다. 컴퓨터가 인간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괴물로 묘사하지 않았다.
독창성 뛰어나 컴퓨터 전공 교수들도 칭찬
독자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장치는 곳곳에 삽입한 시 구절이다. 첫 번째 인용시는 이것이다.
드디어 벙어리 낮달의 인내 아래
나는 떠난다
이제까지의 책이 아닌
새로운 책을 위하여
어디인가
새로운 지혜의 지옥을 위하여
고은 ‘새로운 책은 어디 있는가’
이 책이 반가운 또 다른 이유는 독창성이 곳곳에서 엿보이기 때문이다. 외국 서적과 국내 서적의 큰 차이는 독창성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의 것을 대충 인용하거나, 확신이 없는 내용들을 포장만 바꿔서 저서라고 내놓은 듯한 책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독자들이 의외로 많다.
책 뒤표지에 실리는 추천의 글을 읽어보았다.
20년 넘게 공부한 컴퓨터 과학이지만 기원과 본질, 미래가 무엇인지는 막연하게만 생각해왔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컴퓨터 과학 근본에 대한 질문에 이 책은 명쾌하게 답을 주고 있다. (박성우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교수)
내가 좋아하는 자연과학 대중서의 저자 목록에 George Gamow 와 D. R. Hofstadter 둘 밖에 없었는데 이광근 교수를 더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 (정주희 경북대교수)
길게는 5년이면 서가에서 사라질 최신 컴퓨터 기술 입문서들의 홍수 속에서 바로 이런 책의 탄생을 갈망해왔다. (김기웅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
같은 전공의 교수 8명이 쓴 표지 서평이 조금도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 심재율 객원기자
- kosinova@hanmail.net
- 저작권자 2016-02-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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