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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너지
이성규 객원기자
2016-01-27

체감온도, 믿으면 안 되는 이유 현재 기준은 바람만 고려한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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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기록된 역대 최저 기온은 1983년 7월 21일 러시아의 남극 보스토크 연구기지에서 측정된 영하 89.2도다.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 중 최저 기온이 측정된 것은 시베리아 오미야콘에서 1927년에 영하 71.2도를 기록한 적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친 지난 22일, 러시아와의 변경지역인 중국 네이멍자치구 어얼구나는 영하 49.1까지 내려가 역대 최저치를 나타냈다. 당시 중국 TV에서는 공중으로 뿌린 끓는 물이 땅에 채 떨어지기도 전에 눈보라처럼 얼음으로 변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지난 18일 등산객 한 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 설악산에서도 비록 체감온도이긴 하나 영하 48도를 기록해 이와 비슷한 기온이 측정됐다. 그날 설악산의 최저기온은 영하 27.9도. 체감온도가 영하 48도까지 내려간 까닭은 초속 18m의 매서운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역대 최저 기온을 기록한 러시아의 남극 보스토크 연구기지.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지구상에서 역대 최저 기온을 기록한 러시아의 남극 보스토크 연구기지.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전 세계의 추위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가장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은 기온이다. 그러나 바람이 강하게 불면 관측된 기온보다 추위를 훨씬 더 많이 느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여러 정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기온을 나타내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체감온도이다.

그런데 사실 체감온도는 오래 전부터 일부 기상학자들로부터 폐기되어야 할 기준으로 공격 받아 왔다. 체감온도가 과학적으로 정확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남극 탐험가들이 최초로 만든 체감온도 계산식

체감온도라는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한 이는 남극에서 연구활동을 하던 미국인 과학자 폴 사이플과 찰스 파셀이었다. 그들은 1939년 플라스틱 병에 물을 채운 뒤 남극 기지 건물 위에 매달아놓고 시시각각 변하는 기온과 풍속에 따라 병 속의 물이 얼마나 빨리 어는지를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람의 영향력을 수치화한 ‘풍속 냉각 지수’이다. 또한 그들은 인체에서 시간당 몇 칼로리의 열 손실이 발생하는지를 계측해 표를 만들었다. 이 같은 ‘사이플-파셀 계산식’은 과학자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다가 1960년대 이후 일기예보를 하는 언론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1년 미국의 섬유학자 로버트 조지 스테드먼은 이를 좀 더 과학화한 ‘스테드먼 계산식’을 발표했다. 옷을 입고 얼굴만 노출시켰을 때 발생하는 인체의 열 생산량과 호흡 등에 의한 열손실량은 같다는 열평형 이론을 기초로 해 온도와 풍속에 따른 단위면적당 열손실량을 계산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계산식은 복잡해 잘 활용되지 않았다.

그 후 2001년에 등장한 것이 현재 기상청에서 사용하고 있는 체감온도지수(WCTI)이다. 이 지수는 미국 기상국의 지원을 받아 미국과 캐나다 공동연구팀이 자원자 12명을 대상으로 해 실제 인체실험을 한 결과이다.

즉, 자원자의 코와 턱, 이마, 뺨 등 온몸 곳곳에 온도 센서를 부착한 뒤 바람을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풍동 터널 안에서 러닝머신 위를 걷게 했을 때 일어나는 열손실을 측정한 것. 기온과 바람을 달리 하고 15초마다 얼굴에 물을 뿌리는 등 극한적인 실험으로 실제 인체의 피부 온도와 열손실을 계산한 것이다.

이 공식을 사용할 경우 기온이 영하 10도일 때 바람이 초속 1.4m로 불면 체감온도가 영하 13도이지만 바람이 초속 11.1m가 되면 체감온도는 영하 21도까지 내려가게 된다. WCTI는 사이플-파셀 계산식보다 분명 진일보한 현실적 값이며, 스테드먼 계산식보다 간단해서 활용하기에 편하지만 이것 역시 완전한 방식은 아니다.

햇빛과 습도 같은 조건은 고려하지 않아

가장 큰 문제는 WCTI가 바람에만 너무 치중한 값이라는 점이다. 실제 인체가 느끼는 온도는 습도나 일사량 등에 의해 달라진다. 그러나 이 공식은 햇빛 등과 같은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며, 실험 조건 또한 시속 5㎞ 정도의 러닝머신에서 계속 걷고 있는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즉, 사람이 가만히 서 있을 때 이 공식은 맞지 않는다.

또 하나, 사람마다 체형이 달라서 열손실이 일어나는 속도와 정도도 각기 다른데 WCTI는 열손실이 일어나는 정도를 자원자 중 상위 5%인 최악의 실험 대상자를 기준으로 삼아 지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자금을 지원한 미국 기상국에서 복잡한 공식보다는 간단한 지표를 원했기 때문이다.

WCTI의 발표 이후 바람뿐 아니라 습도와 일사량 등을 고려한 체감온도 계산식이 잇달아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폴란드에서 사용하고 있는 UTCI라는 일반 기후 지표이다. 이 공식은 기온과 풍속 외에 주변 습도와 일사량, 그리고 사람들이 기온에 따라 옷을 입는 정도까지 감안해 체감온도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UTCI는 폴란드에서만 사용될 뿐 우리나라 기상청과 미국 등의 국가는 WCTI를 고수하고 있다. UTCI의 경우 고려할 요소가 너무 많아 비용이 많이 들고,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전반적 상황을 알려야 하는 일기예보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체감온도는 남성과 여성 간에도 차이가 있을뿐더러 온대 및 한대 등 사는 지역에 따라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여성의 경우 신체 표면적 대비 체질량 비율이 낮고 근육량이 적어 남성보다 추위에 약하다. 인제대 연구팀이 우리나라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추위에 더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동물도 마찬가지다. 여러 포유동물에 대한 조사 결과 암컷과 수컷이 기온의 체감에서 차이를 보인 것. 예를 들면 추운 방과 더운 방을 선택하는 실험에서 수컷의 경우 추운 쪽을 선호하는 반면 암컷은 더운 쪽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시베리아 오미야콘처럼 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번에 우리나라를 강타한 한파쯤은 활동하기에 적당한 겨울 날씨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온대 지방에 사람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만은 이번에 몰아닥친 한파로 50명 이상이 동사했다고 밝혔다. 43년 만이라는 대만의 이번 최저 기온은 겨우(?) 영상 4도였다.

이성규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저작권자 2016-01-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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