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 VR)의 원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외 전문매체들이 올해에 가장 기대되는 신기술로 가상현실을 주저 없이 꼽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폐막한 국제가전박람회 CES 2016 행사장에서도 그 징후가 뚜렷했다.
VR 전시장엔 삼성전자, 소니, HTC 등 48개 업체가 부스를 꾸렸으며, VR 기술과 기기는 관람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집중시켰다. CES 기조 연사로 나선 개리 샤피로 전미소비자기술협회(CTA) 회장이 “올해 CES에서는 VR 분야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감지됐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VR 중에서도 최근 가장 많이 실용화되고 있는 기술 중의 하나가 가상현실 치료법(Virtual Reality Therapy : VRT)이다. 가상현실은 진짜 현실과는 달리 인간의 완벽한 통제 하에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따라서 현실의 대체재로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데, 이 같은 가상현실의 장점을 이용해 PTSD(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공포증, 통증, 알코올중독, 재활 치료 등을 하는 것이다.
지난 2007년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USC)은 이라크에서의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 VR 시스템인 ‘가상 이라크’를 개발했다. 전용 헬멧에 장착된 고글을 착용하면 이라크 중심가가 투영되고 상공을 경계하는 미군의 헬리콥터 소리와 코란을 암송하는 목소리 등이 들린다. 또 폭발의 진동이 가해지고, 중동 지방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까지 더해져 실제로 이라크의 전장에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VR 시스템의 개발 목적은 이라크전쟁에서 귀환한 후 PTSD로 고생하고 있는 미군들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PTSD를 앓는 환자에게는 단계적인 상황 재연이 큰 도움을 주는데, 이 같은 가상체험과 의사에 의한 카운슬링을 곁들임으로써 전쟁에서 입은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다. 비슷한 경우로 9․11테러 사건 때 현장에서 직접 참상을 목격한 사람들의 심리치료에도 가상현실이 활용되었다.
가상현실로 화상 환자의 통증 완화
VRT는 공황장애 및 고소공포증, 거미공포증, 대인공포증 등 각종 공포증의 치료에도 유용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의과대학의 멀티미디어 심리치료센터에 설치된 VR 시스템이 바로 그런 경우 중 하나다. 비행공포증이 있는 환자를 진짜 비행기 의자 같은 곳에 앉힌 다음 비행기 내부를 보여주며 의자를 진동시키고 비행기 엔진소리를 들려주는 것.
이 같은 가상현실을 통해 환자들이 공포증 발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면, 의사가 환자에게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게 해 불안감을 서서히 줄여나가는 치료법이다. 에모리대학에서는 고소공포증을 치료하기 위한 VR 시스템을, 조지아공대에서는 천둥공포증을 치료하는 VR 시스템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한 거미공포증 환자의 경우 가상현실 치료 후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캠핑이나 하이킹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가상현실은 강력한 진통제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전신 화상을 입은 환자들의 경우 매일 붕대를 고체할 때마다 격심한 통증을 경험하게 된다. 미국 워싱턴대학에서는 이러한 화상 환자들의 통증을 덜어주기 위해 VRT를 이용하고 있다.
의사의 치료가 이루어지는 동안 화상 환자는 ‘스노월드(SnowWorld)’라는 가상의 눈 세계 속에서 뛰어노는 체험을 함으로써 화상에 대한 통증을 잊게 되는 것. 또는 손가락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추적장치를 장착한 VRT 시스템에서 가상공간의 거미를 잡게 하여 자신이 화상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하는 방법으로 통증을 완화시킨다. 이 방법은 진통제보다 통증 완화 효과가 더 뛰어나며 통증이 완화되는 시간도 더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암 환자들은 항암제 치료를 받을 때 오심 및 구토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겪게 된다. 일본 국립암센터에서는 VRT를 이용해 이 같은 부작용을 완화시키고 있다. 항암제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가상공간에서 미리 치료를 경험해 오심 및 구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주입함으로써 실제로 항암제 치료를 받을 때 그 같은 부작용을 줄이는 원리다.
뇌졸중 환자의 재활 치료에도 유용
미국 휴스턴대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VR 시스템에서는 담배를 피우면서 왁자지껄하게 술을 마시는 손님들이 가득한 파티 장면이 구현된다. 후각 자극을 위해 술과 담배 냄새까지 추가해 현실성을 높인 이 VR은 바로 알코올중독 환자를 치료하는 시스템이다.
현실의 경우 알코올 중독 환자가 유혹을 참지 못하고 술을 들이킬 수 있는 위험이 있으나, 가상현실에서는 가상 술잔을 건네주어 그런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의료진은 반가운 사람들과의 즐거운 술자리를 VR 기술로 조성한 다음 환자의 반응을 관찰하며 알코올 중독을 치료한다.
영국 얼스터대학에는 뇌졸중 환자를 치료하는 VR 시스템이 있다. 뇌졸중이 오면 뇌혈류 장해로 인해 몸이 마비되거나 언어장애 등이 오기 쉽다. 뇌졸중은 성인의 장애 원인 중 가장 빈도수가 높으며, 특히 발병 후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해오던 사람이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는 고충이 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환자는 지루한 재활 과정을 좀 더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제공되는 가상 환경은 자기 집의 부엌이나 거실 등으로서 체험도 찻잔을 드는 등의 간단한 일이다. 환자는 손에 특수 장갑을 끼고 그 같은 움직임을 반복 연습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재활의학과 등에서 VRT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 중이다. 이곳의 프로그램은 게임과 재활 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게임 시 환자의 움직임을 통해 근력과 정확도, 떨림 정도를 분석할 수 있어 맞춤 치료도 가능하다. IT 기술을 접목한 VRT 연구는 현재진행형으로서, 국내 의료계에서의 도입이 앞으로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16-01-13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