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2105년을 ‘세계 토양의 해(International Year of Soils)’로 정하고, 매년 12월 5일을 ‘세계 토양의 날(World Soil Day)’로 지정했다. 지난 5일은 두 번째 맞이하는 세계 토양의 날이었다.
당시 UN은 토양의 해와 토양의 날을 특별히 제정한 이유에 대해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건강한 토양이 필수임을 강조하며, 생명 활동에 필수불가결한 토양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토양을 자원으로 보호하기 위해서 마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 표토의 가치는 26조원
물이나 공기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흔해서 그 중요성이 간과되는 물질들이 있다. 토양도 그 중의 하나다. 항상 밟고 다니고, 어딜 가도 볼 수 있기에 사람들은 토양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들어 토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지구 생태계에 있어 공기나 물 못지않게 중요한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토양을 안보와 자원의 차원에서 다루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토양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지켜야 할 대상의 하나로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토양이 유실되거나, 그 기능이 저하되면 국민들에게 집적적인 피해를 준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국토를 이루는 토양이 건강하게 유지돼야 국민들은 그곳에서 산소와 식량을 얻을 수 있고, 각종 오염물질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런 생존 활동이 영향을 받게 되면 국가의 안위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토양안보의 개념과 함께 최근 주목받고 있는 토양에 대한 관점은 바로 ‘자원’이다. 토양학자들은 흙을 유한한 자원으로 본다. 비록 풍화 작용에 의해 계속 만들어지고는 있지만, 1cm 깊이의 토양이 생성되는데 약 200년이 걸릴 정도로 생성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인간의 수명을 고려할 때, 사실상 재생 불가능한 자원인 것이다.
생태적으로 중요한 표토(topsoil)은 더욱 그렇다. 표토란 지표면에서 20~30㎝ 깊이까지의 토양층을 말하는데, 이 층을 이루는 토양에는 유기물과 미생물이 풍부하여 생태계 유지와 물질 순환에 핵심적 구실을 한다.
환경부와 서울대 산업협력단에서 공동으로 조사한 우리나라 표토의 가치를 살펴보면 약 2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수 십 cm 깊이의 토양이 갖고 있는 식량생산과 생태계 조성이라는 가치만 놓고 볼 때, 실로 엄청난 규모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표토의 가치에 대해 서울대산업협력단의 관계자는 “26조 원이라는 규모는 단지 주화로 환산한 계량적 가치일 뿐”이라고 전제하며 “토양이 갖고 있는 정성적인 가치를 포함한다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토양 유실량은 OECD의 3배
식량농업기구(FAO)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전체 토양의 3분의 1 가량이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과도한 토지 개발과 집중호우 등에 따른 유실, 그리고 화학물질에 의한 오염 등으로 인하여 표토의 질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토양의 경우 상태가 나빠져도 공기나 물과 달리 쉽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UN이 ‘토양의 날’과 ‘토양의 해’를 별도로 지정하여 흙에 대한 인류의 관심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국내 표토의 경우, 지형의 특성에 따른 토양유실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국토 면적의 3/4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경사지에서의 토양침식이 빈번하고, 이를 방지해 줄 수 있는 산림관리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표토자원전략연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평균 토양의 유실량은 연간 1헥타르(ha)당 32톤으로서 OECD 평균인 11톤의 약 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단은 국내 표토를 보전하기 위해 지난해 출범한 단체로서, 한국형 표토자원 평가 및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조성됐다.이에 따라 환경부는 표토에 대한 효율적 보전·관리체계를 구축하고 그 활용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최근 ‘표층토양 보전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정확한 표토 유실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침식현황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토양유실지도를 작성하여 향후 정책수행의 근거로 사용한다는 것이 환경부의 계획이다.
토양 유실이 얼마나 문제가 되기에 환경부가 이 같은 중장기 계획까지 수립하며 대책마련에 나선 것일까?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그냥 방치했다가는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유실된 표토의 하천 유입 시 수질오염이나 준설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억제하게 되면 환경오염 예방 및 오염복구 비용의 감소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외에도 토양이 유실되지 않으면 토양의 탄소저장 능력 향상 및 대기냉각 기능 등 기후변화에도 미래지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며 “이번 계획으로 기존 오염조사 및 정화에만 치중했던 토양환경 정책의 패러다임이 자원보전의 측면까지 확대됨으로써 국토의 효율적 관리체계가 구축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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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12-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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