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1926년 아인슈타인이 친구인 막스 보른에게 보낸 편지 중의 한 구절이다.
아인슈타인은 기본 입자들이 입자와 파동이란 두 가지 성질을 가진다는 모형을 만드는 데 일조함으로써 양자역학의 출현에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양자역학이 내리는 결론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누구보다 혁신적인 생각을 한 과학자였지만, 물리적 결정론이라는 구시대의 사고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가장 거부감을 보인 양자역학의 이론 중 하나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다. 이 원리에 의하면 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경우 운동량은 부정확해지며, 반대로 운동량을 정확히 알면 위치는 불확실해진다.
즉,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히 측정될 수 없다는 의미다. 초기 조건을 정확하게 알면 그것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있다는 기존의 물리적 결정론을 부정한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비록 상대론적이기는 하나 우주는 예측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양자역학을 지지하는 막스 보른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이 지칭한 ‘신’은 전지전능한 종교적 인격체이라기보다는 우주의 절대적인 법칙 같은 것이었다.
광속보다 빨리 상호 작용하는 전자 측정돼
그런데 최근 아인슈타인의 그 같은 세계관에 대해 거의 완벽한 반박을 제공하는 실험 결과가 발표됐다. 네덜란드 델프트공과대학의 물리학자 로날드 한슨(Ronald Hanson) 연구팀은 멀리 떨어진 두 개의 개체가 광속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서로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실험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달 21일 ‘네이처’ 지의 온라인판으로 소개됐다.
과거에 서로 상호작용했던 두 입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즉각적으로 서로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양자역학적 현상을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라 한다. 예를 들면 지구에 있는 한 입자의 위치나 운동량, 스핀 같은 특성이 바뀌는 순간 서로 상호작용을 한 적이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의 입자도 해당 특성이 마치 텔레파시라도 하듯이 즉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양자 얽힘 현상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대신에 ‘국소적 실재론’을 주장했다. 국소적 실재론이란 접촉 없이는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그 영향은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전달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델프트공대 연구팀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다이아몬드 결정 내부에 포획된 두 개의 전자들을 얽히게 만든 뒤, 1.3㎞ 떨어진 거리에 두 개의 다이아몬드를 배치시켰다. 그 후 각각의 다이아몬드 전자에 자기적 속성인 스핀을 갖도록 한 다음 그 전자들의 방향을 측정했다.
그 결과 전자들은 개별적으로 불규칙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매우 잘 일치해 양자 얽힘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더구나 1.3㎞나 떨어져 있는 전자들 간의 얽힘 현상이 빛의 속도보다 빠른 시간 내에 측정된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아인슈타인의 국소적 실재론을 무색하게 만든 것.
21세기에 해결해야 할 10대 미스터리
사실 서로 멀리 떨어진 전자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양자 얽힘에 의한 상관관계이지 통신이나 정보 전달의 개념은 아니다. 따라서 상대성이론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양자 얽힘을 통해 양자역학적인 정보를 보내는 양자 전송의 경우에도 빛보다 빠를 수 없다는 게 기존 학계의 논리다.
따라서 이번 연구 결과는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거나 아니면 전자 스핀이 광속보다 더 빨리 서로 대화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만약 전자들이 가리킬 방향과 측정을 예측할 수 있다면, 이는 이제까지 전혀 실재하지 않았던 통신을 의미할 수도 있다.
연구진은 자신들의 실험 결과에 대해 ‘빛보다 더 빠른 것이 없다’고 주장한 아인슈타인의 세계관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박을 제공하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이 실험 결과가 현 기술 수준을 뛰어넘어 강력한 보안이 가능한 ‘양자 인터넷’의 상용화를 위한 진일보라는 평을 내놓았다.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국소적 실재론이 틀렸으며, 양자 얽힘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또한 최근까지 양자 얽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양자 얽힘을 정확히 확인하는 구체적인 증명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난 2월에 미국 최대 비영리기구 중 하나인 ‘과학과 대중을 위한 사회재단’이 인류가 21세기에 해결해야 할 ‘10가지 과학적 미스터리’를 선정했을 때 첫 번째 항목으로 ‘양자 얽힘’ 현상이 꼽히기도 했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15-11-03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