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대청마루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어릴 적 한옥으로 지어진 고향집에는 더운 여름철에도 잠이 잘 오는 장소가 있었다. 바로 대청마루다. 아무리 더운 대낮이라도 목침을 베고 누운 채, 바람까지 솔솔 불어주면 언제 잠이 드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원한 곳이었다.
이런 대청마루를 요즘은 참 구경하기가 어렵다. 사방이 꽉 막힌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대표적인 주거공간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대청마루로 대표되는 한옥은 비효율적이라는 오명과 함께 대부분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던 한옥이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다. 집안 곳곳에 숨겨진 선조들의 지혜를 과학기술이 재조명하면서, 그동안 비효율적이며 불편하다고 여겨졌던 한옥에 대한 고정관념을 하나씩 벗겨주고 있다.
대청마루는 천연의 자연 에어컨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더운 여름에는 시원하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집이 필요했다. 난방과 냉방이 모두 뛰어난 집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적 요인이 크다. 그런 고민 끝에 만들어진 한옥의 구조물이 여름에는 시원한 대청마루고, 겨울은 뜨끈뜨끈한 구들과 아랫목이다.
대청마루는 방과 방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바람의 길목이다.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던 시절에도 우리 조상은 대청마루에서 여름 무더위를 너끈히 이겨냈다. 특히 마룻바닥의 널빤지 틈으로, 마루 밑의 찬 공기가 올라와 여름철에도 바닥은 항상 시원함을 유지했다.
대청마루를 자세히 살펴보면 마루 아래에 빈 공간이 있어 지면과 조금 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지면과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지열로부터 멀어지는 것과 동시에 빈 공간에 들어간 바람이 대청마루 틈 사이로 새어 나와 더운 여름날에도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대청마루의 높은 지붕은 찬 기운은 아래로, 뜨거운 기운은 위로 올라가게 만들어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을 언제나 시원한 상태로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찬 공기가 더운 공기 쪽으로 이동하는 대류 현상을 이용한 천연의 자연 에어컨이었던 셈이다.
국가한옥센터가 한옥의 공기 흐름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집 앞 들판에서 대문을 따라 들어 온 시원한 공기는 운동에너지를 발생시키고, 다시 마당과 건물 안에서 정체된 공기의 상승기류를 타면서 대청마루를 통해서 마당으로 빠져나가는 순환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바람은 다시, 마당에서 가열된 태양열이 대청마루 뒤편으로 작게 만든 바라지창을 통해 뒤뜰 장독대로 흘러나간다. 한옥은 이와 같은 구조로 바람이 자연스럽게 실내를 지나가도록 유도하면서 시원한 바람을 선사해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한옥은 그 공간구성이 자연과 어우러지며 끊임없이 소통할수록 친환경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수용하는 멋과 여유를 품고 있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시사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한옥
한옥의 배치 구조를 들여다보면, 추운 겨울에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려 했던 우리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전통 난방 방식을 이야기 할 때 구들을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취사와 난방이 동시에 가능한 구들은 밥을 짓는 아궁이에 불을 때면 그 열이 방으로 전해지도록 만든, 에너지 효율을 한층 높인 기술이다.
이때, 아궁이에서 열이 통하는 길을 잘 살펴보면 유독 좁은 통로를 볼 수 있다. 이는 좁은 통로를 통해 열기가 더욱 세고 빠르게 지나갈 수 있게 만들어 방의 구석구석까지 뜨거운 열기를 잘 전달하기 위함이다.
또한 구들의 두께를 조절하여 아궁이의 불이 꺼져도 아랫목의 열기가 두고두고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오랜 시간 축적한 경험으로 추운 겨울을 견뎌낼 수 있었던 선조들의 놀라운 지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한옥은 덥고 추운 계절에 적합하도록 건축되었지만, 조상들의 지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위치 선정 및 햇빛의 각도에도 신경을 썼던 것. 대부분의 한옥은 태양에 맞춰 동남향을 바라보고 장방형으로 배치했으며, 산을 등지고 남쪽으로는 전망이 트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지붕 끝에는 처마를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태양 고도가 높은 여름에는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 방 안에 들지 않아 시원하다. 또한 겨울에는 낮게 비치는 햇빛이 방 안 깊숙이 들어와 일조량이 적은 시기에 공기를 데워주고, 창호지에 비친 햇살은 기나긴 겨울을 쾌적하게 해주는 역할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또한 뒷 건물은 앞 건물보다 높게 기단을 만들어 태양 고도가 낮은 겨울에 집 안 가득 햇볕이 들게끔 했다. 이 밖에도 서양의 건축물과 달리 한옥은 대청마루를 이용한 여름 공간과 구들 난방을 이용한 겨울 공간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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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8-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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