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파프리카(paprika)의 1개 가격은 100g당 1000원 안팎이다. 그런데 파프리카의 작은 씨앗 1g은 12만 원을 호가한다. 금 한 돈의 무게인 3.75g으로 환산했을 경우에는 45만 원에 이른다. 금 한 돈 시세인 18만 5000원 보다 2.5배 가깝게 거래되는 것이다.
종자가 어느새 금보다 귀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한 알의 씨앗이 세계를 바꾼다’는 말처럼 세계는 지금 소리 없는 '종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전략적 종자 연구개발 사업인 골든시드프로젝트(Golden Seed Project)를 출범시킨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만의 종자를 개발하여, 종자강국을 실현한다는 원대한 목표 아래 진행되고 있는 이 사업은 지난 2012년에 시작되어 현재 3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기형적인 세계 종자시장의 재편 필요
세계 종자시장은 최근 10년간 두 배 가량 성장했으며, 종자 교역량 또한 급증했다. 세계 농작물 종자시장의 규모는 2013년을 기준으로 450억 달러이고, 종자 무역량은 96억 달러 수준에 달하고 있다.
반면 국내 종자산업 시장 규모는 약 5800억 원에 그치고 있다. 세계종자연맹(ISF)이 발표한 공식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종자시장의 1% 미만인 4억 달러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시장 점유율이 작은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종자시장의 65% 가량이 주요 상위 5개국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큰 시장은 미국으로서, 세계종자연맹에 따르면 120억 달러 가량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다음으로는 99억 달러 시장을 갖고 있는 중국과 28억 달러의 프랑스, 13억 달러의 일본과 6억 달러의 네덜란드 등이 뒤를 잇고 있다. 국가가 아닌 기업 차원에서 볼 때도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다. 몬산토 듀폰 등 자본력과 기술력을 가진 10대 다국적 기업이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골든 시드 프로젝트(GSP)는 이 같은 기형적인 세계 종자시장의 틀을 깨기 위해 수립되었다. GSP는 종자산업의 발전을 목표로 기획한 최초의 범국가 프로젝트로서, 전문가가 참여한 사전 상세기획과 품목별 상세기획을 거쳐 확정된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GSP는 기존 국가 R&D 사업과는 사업체계와 운영방식이 많이 다르다. 우선 GSP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그리고 농촌진흥청, 산림청 등 4개 부·청이 공동으로 사업비를 투자하고 관리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총 10년 동안, 5천억 원 가까운 돈이 투자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라는 점도 GSP만의 특징이다. 이를 위해 20개 품목에 대해 227개 세부연구프로젝트가 추진되며, 총 2500여명의 연구원이 참여하게 된다.
종자 품목별로 구체적인 수출목표액과 수입대체 비율이 설정되어 사회경제적 성과목표가 강조되고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47개의 민간 종자업체가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GSP 사업의 차별화된 점이라 할 수 있다.
종자 국산화의 길을 열 육종연구단지
카네이션과 버섯, 장미 등 대표적인 원예작물 12개 품목에 대해 지난해 우리가 해외에 지불한 로열티만 136억 원이나 된다. 반면 토종 품종을 수출해 번 로열티는 3억 원에 불과하다. 해외 지불 로열티가 많은 이유는 국산 품종 개발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남은 프로젝트 기간 동안 품목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수출시장형 10품목과 수입대체형 10품목 등 20품목을 개발하고, 현재 4000만 달러 규모에 머무르고 있는 수출액을 2억 달러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수출시장 개척형 10품목으로는 △고추 △배추 △무 △수박 △벼 △감자 △옥수수 △넙치 △전복 △바리과 등이며, 수입대체 전략형 10품목은 △양배추 △양파 △토마토 △버섯 △ 파프리카 △백합 △감귤 △돼지 △닭 △김 등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관계자는 “올해 품종 개발을 가속화하여 상품성이 높은 69개 신품종을 개발하고, 수출액을 지난해 491만 달러에서 1150만 달러로 두 배 이상 늘릴 계획”이라고 밝히며 “특히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파프리카와 토마토 종자에 대해서도 각각 5개 신품종을 개발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3월 전북 김제에서 민간 육종연구단지를 착공했다. 2011년 김제가 육종연구단지 입지로 선정된 뒤 3년 만에 첫 삽을 뜬 것이다. 종자 국산화의 길을 열어 과일과 채소류의 농산물 가격을 확 낮출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이곳 연구단지에는 민간육종기업들이 품종을 개발할 때 필요한 인프라가 구축된다. 우선 종자산업진흥센터가 설치되어 첨단 육종기술 정보 및 외국 신품 개발 동향 등을 제공하게 된다. 또한 종자품질검사온실과 육종연구포장 등 60여 동의 최첨단 육종시설과 장비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함께 입주하는 국내 육종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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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6-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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