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환경·에너지
임동욱 객원편집위원
2015-03-11

잉카제국도 대기오염에 시달렸다 인간 활동 많아지면 공해도 함께 급증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봄철이 다가오면서 공기 중 미세먼지의 농도가 급증하는 일이 잦아졌다. 중국에서 발생한 황사가 직접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요즘에는 공업지역을 지나며 중금속을 함유한 미세먼지가 증가하는 추세다.

대기오염으로 고생하는 것은 현대인의 생활상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과거에도 인류 문명은 수차례의 공해를 겪었다. 최근 남미에서 진행된 조사에서는 500년 전에도 공기 속 중금속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땅 속의 광물을 채취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설치한 광산이 원인이었다. 특히 스페인이 침략해 식민지가 되면서부터 광산의 숫자도 급증했고 그만큼 대기오염도 심해졌다. 이로 인한 대기의 변화는 빙하 속에 그대로 남아 증거로 발견되었다.

‘산업혁명보다 240년 전에 남미 전역의 대기오염 시작(Widespread pollution of the South American atmosphere predates the industrial revolution by 240y)’이라는 제목의 연구결과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지난달 24일자에 게재되었다. (링크)

잉카 제국의 대표 유적지 '마추픽추'. 이 시기의 사람들도 공업 발달에 의한 대기오염에 시달렸다.
잉카 제국의 대표 유적지 '마추픽추'. 이 시기의 사람들도 공업 발달에 의한 대기오염에 시달렸다. ⓒ Wikipedia

인간이 지구 환경 바꿔놓은 ‘인류세’의 시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지구온난화가 촉발되어 급격한 기후변화가 초래되었다는 주장은 여러 차례 제기되어 왔다. 최근에는 1995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파울 크루천(Paul Crutzen)이 생태학자 유진 스토머(Eugene Stoermer)와 함께 지난 2000년 학술지 ‘지권-생물권 국제연구(IGBP)’에 발표한 논문 ‘인간세(The Anthropocene)’가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지질학을 통해 연대기를 나눌 때는 수천만에서 수억 년에 이르는 단위로 시기를 구분한다. 가장 큰 구분은 ‘대(era)’라고 붙이고 그 다음은 ‘기(period)’, 더 작은 시기는 ‘세(epoch)’라 붙인다.

고생대는 5억 8000만 년 전부터 2억 2500만 년 전까지다.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데본기, 석탄기, 페름기 등 6개 시기로 나뉜다. 이때부터 6500만 년 전까지를 중생대라 하며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 등 3개로 구분한다.

이후 지금까지를 신생대라 부르며 고제3기, 신제3기, 제4기로 구분한다. 고제3기는 더 세분화해서 팔레오세, 에오세, 올리고세로 나누고, 신제3기는 마이오세, 플리오세로 쪼갤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속한 제4기는 258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의 홍적세 또는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와 그 이후의 충적세 또는 홀로세(Holocene)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크루천과 스토머는 홀로세 중에서도 인간 문명이 활발했던 시기를 ‘인류세(Anthropocene)’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인간의 활동이 지질, 기후, 생태 등 전 지구적 차원에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도 인류에게 책임이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류세는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구분법이다. 시작점과 증거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산업혁명 시기를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본다. 이 시기부터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오래 전 과거의 대기 상황을 알아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얼음 속을 들여다본다. 기온이 낮아져 눈이 내리면 대기 중의 먼지와 입자를 품고 땅으로 떨어져 쌓이기 때문이다. 특히 빙하처럼 수천 년 이상 쌓여온 두터운 얼음은 그 시간만큼의 대기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전 세계에 흩어진 빙하를 조사하면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의 대기 변화도 유추할 수 있다. 빙하에 구멍을 뚫어 ‘코어(core)’라 불리는 원기둥 모양의 얼음 샘플을 추출하면 시기별로 충적된 대기 중 성분을 찾아내기가 쉽다. 인류세의 증거를 찾기에 적합한 방법이다.

그런데 최근 남미에서 진행된 빙하 코어 분석에서 인류세의 출발점 설정에 도움이 될 만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산업혁명이 아닌 그보다 더 오래된 15세기로 밝혀졌다. 기존에 주장되던 시기를 240년이나 앞당기는 발견이다.

대기 중 납 오염원의 급증은 그린란드, 유럽, 티벳, 남미, 남극 등 지구 전역의 빙하에 증거로 남았다. ⓒ PNAS
대기 중 납 오염원의 급증은 그린란드, 유럽, 티벳, 남미, 남극 등 지구 전역의 빙하에 증거로 남았다. ⓒ PNAS

인간 활동 늘어날수록 대기오염도 급증

미국 버드 극지기후연구센터(Byrd Polar and Climate Research Center)의 키아라 울리에티(Chiara Uglietti) 연구원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와 예일대학교,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 연구진과 더불어 페루의 쿠엘카야(Quelccaya) 빙하에서 얼음 코어를 채취해 성분을 분석했다. 시기별로 대기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남미 산악지대의 빙하는 남극이나 북극에 비해 한참 뒤늦은 시기에 생겨났다. 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쿠엘카야 빙하도 서기 793년 즈음에 생긴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다른 자연요소에 비해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빙하는 변화가 거의 없이 축적되어왔기 때문에 얼음 층의 성분을 분석하면 시대별로 대기 상황을 알아낼 수 있다. 게다가 남반구는 대륙의 면적이 적어 빙하만큼 신뢰성 있는 지표를 찾기가 어렵다.

눈이 내릴 때는 대기 중의 여러 성분을 끌어안고 떨어지기 때문에 땅 위에 쌓인 눈 중에 ‘순수하다’고 말할 만한 경우는 거의 없다. 쿠엘카야 빙하에서도 연도별로 서로 다른 성분이 검출되었고 특정 오염원의 농도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빙하 속 오염원 농도에 따라 페루 지역의 대기오염 시기를 구분하면 크게 셋으로 나뉜다. 첫째는 1438년 잉카 제국이 출발하기 전까지의 기간이다. 이 때는 얼음 코어 안에서 오염원이 그리 많이 발견되지 않아 자연 상태를 유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철, 알미늄, 망간, 티타늄이 검출되었지만 이 지역 토양에 흔한 성분들이다.

둘째는 잉카 제국 출범 이후부터 1532년 멸망까지의 기간이다. 잉카 제국은 무기를 제조할 때 비스무스 성분을 넣은 청동 합금을 사용했다. 광산 개발이 시작되면서 납, 구리, 비소 등 다양한 종류의 금속 성분들이 대기에 노출되었고 눈이 내리면서 땅으로 다시 쌓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대기오염은 셋째 기간인 1532년 이후에 시작되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스페인에서도 왕실의 지원을 받은 모험가와 군인들이 신대륙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주로 남미 대륙을 침략한 이들 정복자들을 ‘콘키스타도르(Conquistador)’라 부른다.

낯선 인종의 등장은 남미 원주민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말을 타고 새로운 무기를 휘두르는 정복자들의 폭력성은 호기심을 공포로 바꿔놓았다. 광물 매장량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식민지로서 막대한 양의 은을 수탈 당했다.

1532년 콘키스타도르에 의해 잉카 제국이 사실상 멸망하고 식민지 시대가 열렸다. 은 광산이 곳곳에서 활성화되면서 막대한 양의 중금속들이 대기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납을 이용해 용융시키는 제련 방식을 썼지만 수은을 통한 아말감화 방식이 도임되면서 공해가 심해졌다.

크롬, 몰리브덴, 안티몬 등의 중금속 농도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화산 폭발로 인해 비소, 카드뮴, 구리의 성분이 늘어나긴 했지만 바람 등의 자연현상으로 옮겨졌다고 보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1450년 이전에 비해 비소 농도는 1.6배, 비스무스는 2.2배, 납은 1.9배나 증가했다.

식민지 시대의 은 광산으로 인한 대기오염은 1700년대에 정점을 찍었다. 이후 19세기에 남미 전역에서 혁명과 독립운동이 벌어지면서 광산업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1830년 즈음부터 오염원 농도가 다시 낮아졌다.

빙하 속 오염원 농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세기 들어 1930년대부터 40년대까지 대규모 채굴 기술이 개발되면서 대부분의 금속 성분이 공기를 오염시켰고 1989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세기 이전의 식민지 시대에 비해 비소는 2.6배, 비스무스는 7.4배, 납은 2.3배나 늘어났다.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오염이 더욱 가중된 것이다. 빙하에 기록된 대기 상황은 1989년이 마지막이다.

지금까지 인간세의 출발점은 산업혁명 즈음으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남미에서는 그보다 240년 전인 잉카 시대에 이미 개발과 채굴로 인해 대기오염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스페인이 침략해 은 광산을 만들고 20세기에 대규모 채굴이 활발해지면서 오염원의 농도도 급증했다. 인간이 적극적으로 자연에 개입한 곳에서는 언제였든 어디였든 공해가 심해졌고 인간세의 증거들을 남겼다.

연구진은 남미의 빙하 분석 값을 그린란드, 유럽, 티벳, 남극 등의 사례와 비교했다. 그러자 산업혁명 이후에는 어느 대륙에서든 납 수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은 “이제 지구상에는 인간세로 인한 대기오염의 증거물을 품지 않은 빙하를 찾을 수 없을 지경”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임동욱 객원편집위원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5-03-11 ⓒ ScienceTimes

태그(Tag)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윤승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승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