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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황정은 객원기자
2015-01-27

"그럼에도, 실리콘은 가장 이상적인 물질" [인터뷰] 엄대진 KRISS 나노소재평가센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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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혁명의 상징으로 불리는 실리콘 웨이퍼. 이를 통해 현대 과학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최근에는 실리콘의 물리적 한계가 끝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연구자들도 적지 않다.

실리콘 반도체는 그것의 물리적, 재료적 한계로 인해 더 이상 속도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전반적이다. 반도체 특성은 좋지만 금속성이 부족해 소형화와 효율성에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하 KRISS) 나노소재평가센터 엄대진, 문창연, 구자용 박사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리콘은 가장 이상적인 물질' 이라는 신념을 갖고 연구를 진행, 실리콘의 새로운 물성을 찾아 연구성과를 도출했다. 실리콘 표면 원자의 두 가지 형상에 대한 구조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실리콘 웨이퍼에 열처리… 안정화 상태 만들어

엄대진 KRISS 나노소재평가센터 박사 ⓒ 황정은
엄대진 KRISS 나노소재평가센터 박사 ⓒ 황정은

엄대진 박사와 문창연 박사, 구자용 박사로 구성된 KRISS 나노소재평가센터 박사팀이 테라바이트(Tera Byte) 급 비휘발성 메모리를 제작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학술지인 '나노레터스(Nano Letters)' 지에 게재된 해당 연구 결과는 실리콘의 새로운 물성을 발견한 연구로 알려지면서 많은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는다.

비휘발성 메모리는 전원이 공급되지 않아도 저장된 정보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메모리 형태로 대표적인 것으로는 플래시메모리와 ROM, 자기저항메모리, 전기저항 메모리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기본적으로 메모리 구조가 간단해질수록 많은 디지털 정보 저장이 가능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현재는 이러한 메모리 제작이 실리콘 웨이퍼 위에 복잡한 설계와 공정을 거쳐 생산되고 있었다.

더불어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웨이퍼 위에 수직 구조로 층을 쌓아 메모리를 저장하는 낸드형 플래시 메모리가 널리 상용화 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는 단일면적당 집적도를 높였다고는 할 수 없다. 결국 여러 개의 단일 면적이 층층이 쌓아올려진 형태이기 때문이다.

엄대진 박사팀은 실리콘 웨이퍼 표면 위 원자에 각각 '0' 혹은 '1'의 이진정보를 쓰고 지울 수 있는, 초고집적 비휘발성 메모리 기술을 개발하고 동작원리를 밝혔다. 실리콘 웨이퍼 위에 직접 디지털 정보를 넣을 수 있는 테라바이트 급 비휘발성 메모리 제작의 가능성을 연 기술인 셈이다.

"저희 팀은 실리콘 웨이퍼 위에 일정량의 붕소(B)를 주입한 후 열처리를 통해 표면에 노출된 실리콘 원자들의 상호거리가 늘어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표면의 원자 하나하나는 외부 전기 자극에 의해 두 가지 안정된 상태로 변형됩니다."

실리콘 웨이퍼 위에 붕소를 많이 주입한 후 열처리를 시도하면 표면에 노출된 실리콘 원자들의 거리는 원래보다 약 루트 3배가 늘어나게 된다. 연구팀은 이렇게 만들어진 표면의 원자 하나하나는 외부 전기 자극에 의해 원래와는 또 다른 안정된 상태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발견했다.

안정된 각각의 상태는 외부의 전기 공급이 끊어져도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비휘발성 특성을 보였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웨이퍼 표면의 원자 하나하나가 디지털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비휘발성 메모리로 사용될 수 있다고 언급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주사터널링현미경(Scanning Tunneling Microscope)을 이용해 실리콘 표면 원자에 전기 자극을 주면 표면 원자의 높이가 높아진다"며 "이는 개별 표면원자에 이진(0,1) 정보를 성공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제일원리계산법을 이용하면 실리콘 표면 원자가 갖는 두 가지 안정된 형상의 원자 구조를 알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저장밀도 약 7000배 증가

KRISS 엄대진, 문창연, 구자용 박사가 저온 주사터널링현미경 장비를 이용하여 실리콘 물질표면의 원자 및 전자 구조를 측정하고 있다. ⓒ KRISS
KRISS 엄대진, 문창연, 구자용 박사가 저온 주사터널링현미경 장비를 이용하여 실리콘 물질표면의 원자 및 전자 구조를 측정하고 있다. ⓒ KRISS

개발된 기술에 따르면 메모리의 실제 저장밀도는 현재보다 약 7000배 가량 증가하게 된다. 메모리의 정보 저장능력은 집적도에 따라 달라진다. KRISS 연구팀이 개발한 메모리의 단일면적 집적도는 현재 상용되고 있는 제품에 비해 200~300 배 정도 차이를 보인다. 여기에 현재 플래시 메모리처럼 24~32개 층이 적층된 구조로 만든다면 실제 저장밀도는 약 7000배 정도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즉, 현재 시판되고 있는 제품의 크기 정도를 유지하면서도 수천 배 큰 용량인 테라바이트급 비휘발성 메모리가 제작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는 용량 측면에서 보면 저장능력 확대가 핵심입니다. 사실 메모리 집적도를 어디까지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는 항상 의문입니다. 저희팀은 연구를 통해 이론적으로 한계선으로 언급된 분량, 그에 거의 근접한 집적도를 실험적으로 구현했습니다. 현재 사용되는 플래시 메모리에 비해서는 집적도가 월등히 높죠."

종전까지는 일부 연구팀에서 불규칙하게 분포하는 결함 구조나 인공구조물을 이용해 원자 스케일에서의 메모리 기능을 시연한 바 있다. 그러나 위치 제어 등의 어려움으로 응용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한계가 작용했다. 반면 KRISS 연구팀의 연구결과는 결함이나 인공 구조물이 아닌 정상적인 표면 원자를 이용해 실험을 성공시켰기 때문에 향후 상용화 하는데 제약이 크지 않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연구와 관련 엄대진 박사는 "웨이퍼가 갖는 새로운 물성을 찬은 것"이라며 "실리콘은 이미 잘 알려진 물성이 있다. 이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찾아냈다. 사람들이 한계라고 생각한 실리콘에 대한 지식을 갖고서도 새로운 개념의 디바이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인 실리콘이라고 하면 앞으로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 20년 전부터 이러한 이야기가 언급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리콘은 여전히 건재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가 지적되는 이유는 실리콘 웨이퍼의 근본적인 FET 구조 때문입니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면적이 있죠. 셀 사이즈가 어느 정도는 크기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보다 작게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저희팀은 실리콘 내에서 새로운 한 가지 방식을 찾았다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실리콘을 갖고도 새로운 방식의 메모리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것을 연구결과로 보이게 된 거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을 넘어 실리콘의 새로운 물성을 찾았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모두가 한계라고 이야기하는 실리콘을 소재로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 어려움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대진 박사팀은 실리콘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원소 중 철과 산소 다음으로 많은 것이 실리콘인데 왜 이것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 무엇보다 조달이 쉽다는 실리콘의 경제성은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초기 반도체 분야에서 게르마늄을 이용해 연구가 진행됐지만 결국 실리콘에 밀리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었죠. 저렴하다는 것은 시장에서 살아남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헌데, 실리콘은 저렴합니다. 그리고 지표상에서 가장 많은 물질이며 지표 환경에서 가장 안정적인 원소죠. 이처럼 지구 환경에서 가장 안정적인 원소로 제품을 만들어야 부작용도 덜 발생하고 사용이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구인한테는 실리콘만큼 좋은 게 없는 거죠.(웃음)"

해당 연구는 새로운 메모리의 구동 가능성을 확인한 것인 만큼, 이에 대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욱 심화된 연구가 필요하다. 실제 상용화 까지 가는 데도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엄대진 박사는 "실리콘 물질이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을 발견한 만큼 앞으로 이것이 더욱 많이 이용되기 위해서는 보호막 기술을 만드는 게 관건"이라며 "그런 가운데에도 연구의 전망이 긍정적이라고 내다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5-01-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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