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과 마케팅,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이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현명한 해답은 바로 ‘둘 다 중요하다’이다. 어느 한 분야를 깊숙하게 파고드는 연구개발이나, 시장의 흐름을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마케팅은 결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업무들이다.
이 같은 진리는 별을 관찰하는 천문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주를 관측하려면 연구개발 업무처럼 눈에 안 보이는 영역을 파헤쳐 이를 보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망원경이 필요하다. 바로 허블 우주망원경이 그런 망원경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한 번에 넓은 지역을 관측할 수 있는 마케팅 성격을 가진 망원경도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망원경이 부족했다. 그런데 최근 천문학 역사에 있어 가장 광범위한 천체를 담을 수 있는 강력한 우주망원경이 4년 이내에 개발될 예정이어서, 전 세계 천문학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한 번 관측으로 가장 많은 별들을 담을 수 있어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피스오알지(phys.org)는 관측 역사상 한 번에 가장 많은 별들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차세대 망원경의 건설 예산안이 승인되었다고 보도하면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획에만 머물렀던 프로젝트가 드디어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링크)
LSST(Large Synoptic Survey Telescope)라 명명된 이 광시야 천체망원경은 미국의 범국가적인 천체 프로젝트로 진행될 예정이다. 망원경 제작에는 국립과학재단(NSF)과 에너지부(DoE) 같은 정부기관은 물론 빌 게이츠 재단 등 민간단체 등도 참여하고 있다.
망원경은 미국에서 제작되지만, 설치되는 장소는 칠레의 고산지대 중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엘페논(El Penon) 인근이다. 지금까지의 계획대로라면 올해 말에 착공에 들어가 2019년에 첫 번째 관측을 하고, 2021년 까지 완전한 시스템을 갖출 계획이다.
LSST는 기존 천체 망원경들 보다 1000배 이상인 32억 픽셀의 고화소를 자랑한다. 따라서 넓은 지역을 촬영하는데 있어 최적의 성능을 갖추고 있다. 허블 우주 망원경의 경우는 멀리 있는 물체를 크게 확대해서 볼 수는 있지만, 반대로 한 번에 많은 지역을 관측할 수는 없다.
반면에 LSST 망원경은 초대형 전하결합소자(CCD)를 이용해서 단 한 번의 관측만으로도 엄청난 수의 별들과 은하의 사진을 담을 수 있다. NSF의 관계자는 “LSST 망원경이 남쪽 하늘 전체를 촬영하는 데는 3일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하며 “이 같은 작업을 만약에 허블 우주 망원경이 수행한다면 약 120년 정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천문학계는 LSST 망원경이 가진 놀라운 광시야 능력으로 한해에 약 25만개에 달하는 초신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LSST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LSST 코퍼레이션의 관계자는 “허블 우주 망원경이나 켁(Keck) 망원경 같은 관측 장비들이 천문학을 한 단계 발전시켰듯이, 이 차세대 망원경이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더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구글과의 협력을 통해 사이버 우주탐험 서비스 예정
인간이 볼 수 있는 범위의 우주 전체를 모두 관측할 수 있는 망원경인 만큼 LSST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카메라 부분의 크기만 해도 소형 차만하며, 무게는 3톤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렌즈의 규모는 이보다 더 엄청나다.
LSST 망원경이 32억 픽셀의 CCD 소자를 보유하기 위해, 한 개의 CCD 소자만을 사용하는 것은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연구진은 1600만 화소 CCD 소자 200개를 연결시켜, 마치 하나의 CCD가 사진을 찍는 것 같은 방식을 채택했다.
그리고 이 같은 규모를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LSST 망원경은 세 개의 거울이 마주보는 형태로 설계되었다. 첫 번째 거울은 8.4미터(m)이고, 이를 반사시키는 두 번째 거울은 3.4미터다. 마지막 세 번째 거울은 5미터 지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거울에 반사된 영상이 CCD 에 입력되어 관측이 이루어지게 된다.
천문학자들은 LSST 망원경이 초신성은 물론 암흑 물질 관측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은하계 지도 작성에 있어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다만 이 망원경의 구조상 한 가지 예상되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엄청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현재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LSST 코퍼레이션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망원경이 완성되었을 시, 천체를 촬영한 컬러 데이터가 매일 저녁 30테라바이트(TB) 이상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방대한 데이터를 칠레에서 미국으로 실시간 전송하여 이미지를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이 LSST 프로젝트의 1단계 목표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이를 구현할 마땅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LSST 코퍼레이션은 구글과 손을 잡았다. 구글은 LSST에서 보내지는 이미지를 처리해낼 수 있는 초강력 소프트웨어 개발을 목표로, 미국 내에 있는 19개 국립연구소의 컨소시엄과 총 3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구글의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 윌리엄 코프란(William Coughran)은 발표문을 통해 “세상의 정보를 모두 모아 보편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구글의 사명”이라고 전하며 “LSST 망원경의 데이터는 그 중에서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것으로 데이터를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천문우주 분야에서의 전산처리 환경은 1페타바이트 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향후 관측 데이터의 크기와 예상 사용량은 LSST 같은 대형 천체 망원경이 관측을 시작하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오는 2020년까지 저장되는 데이터를 감안하면 향후 60페타바이트 이상의 빅데이터 처리능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구글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구글어스(Google Earth)와 유사한 어플리케이션이 개발될 경우, 깔끔하게 다듬어진 3D 이미지의 소행성과 우주 영상을 컴퓨터 화면으로 검색할 수 있는 ‘사이버 우주탐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LSST 코퍼레이션의 이사이자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 교수인 토니 타이슨(Tony Tyson) 박사는 “LSST 천체 망원경은 우주와 그 구성요소, 그리고 작동 법칙을 이해하는 데 혁신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유치원생부터 우주 과학자까지 모두에게 망원경 이용법의 근본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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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1-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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